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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Sun Jun 22. 2020

[19금] 항생제 드리려다 맞을 뻔했어요

Hi~ Hi~ 안녕하세요~

하양 약사 루나썬입니다.


항생제 안 드셔 본 분은 없을 거예요.

항생제는 우리 몸에 침입한 세균을 치료하는 약물이지만, 부작용이나 내성 등을 주의해야 하는 약이죠.

항생제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약을 주는 약사의 direction을 따르시는 거예요.

과거에 항생제 복약지도를 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요. 저는 '항생제, 이것만은 기억해주시길!' 하는 내용으로 쉽고 간단하게 쓰려 합니다.


제가 처음 취업한 약국에서 항생제 복약지도를 하다가 거의 맞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25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휴...

약국 현장에서 직업 특성상 '19금'을 다루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그중 한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해요. 혹시 마음이 어려우신 분은 살포시 '뒤로 가기'를 누르셔도 좋아요.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약대 졸업 후 대학원을 1년 다니고 나서 약국에 취업했습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꽤나 유명한 약국이었어요.

바쁘고 유명한 대형약국 위주로 근무했었는데요. 많은 사례들과 경영을 배울 목적이었습니다.

첫 약국에서 근무하면서 약국장님은 제게 틈나는 대로 교육을 시켜주었습니다.


"썬 약사님, 비뇨기과 약은 좀 아시나요?"

"아직 잘 모릅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우리 약국 위층에 있는 병원은 비뇨기과 진료를 보는데요. 특징적으로 하는 수술이 있어요. 혹시 고래잡이를 알까요?"

"고래요? 바다에 있는 그 고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음... 포경수술은 들어봤죠?"

"네에."

"남자아이들이 포경수술을 할 때 고래를 잡으러 간다고 표현하기도 하죠. 여기 비뇨기과에서는 그 수술을 많이 합니다. 특히 항생제 처방전 중 주민번호가 기재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 수술을 한 다음 내린 처방이라고 보시면 돼요. 재밌는 건 두 장씩 동시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엄마들이 친구들끼리 손잡고 수술받게 한다는 거죠."

"아~네."


남자 약국장님께 다소 민망한 주제의 교육을 받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비록 25살일지라도 전문가답게 당당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학교에서 배운 약물들이 현장에서 사례별로 적용되는 걸 알아가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Source: Pixabay, Alexas_Fotos님의 이미지


지금은 비급여 처방의 경우라도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해야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기재하지 않아도 허용되는 때였어요. 병원에서 기재하지 않은 주민등록번호를 약국에서 물어보는 일도 없었죠.

어느 날, 조제실에 처방전 2장이 들어왔습니다.

성함과 주민등록번호, 처방내역을 꼼꼼히 봤어요.

남자 이름에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이전과 동일하게 항생제 및 소염제를 처방받았네요.

아이 둘이 또 나란히 고래를 잡으러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익숙한 처방에 재빠르게 조제하고 나서 큰 일을 해낸 두 아이가 기특해 한 톤을 높여 이름을 불렀습니다.


"철수~ 영재~ 약 나왔다~"


그런데 웬걸요. 아이는 없고 건장한 남성 두 분이 제 앞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한 남성분은 얼굴이 울그락붉그락해서니 저에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내가 당신 친구야?"


저는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였어야 했는데 어른이었으니까요.

저는 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고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른은 너무나 화가 나서 어깨를 들썩이며 한 대 칠 거 같았습니다.

저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눈을 크게 뜨고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아이인 줄 알고 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다행인 건, 옆에 있는 친구가 화가 난 남성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제사 그 남성은 진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을 하루 세 번 드시고 술을 드시면 안된다는 복약지도를 할 수 있었죠.

아무 일 없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살았네 하고 있는데, 약국장님이 오라며 손짓을 했습니다.

저는 야단을 맞는 건가, 약간 쫄아진 마음으로 갔습니다.

약국장님이 하신 말씀을 순화해서 쓰겠습니다.


"썬 약사,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네에"

"비뇨기과에서 고래잡이 말고, 또 다른 수술을 하는 게 있어요."

"네"

"그게 말이죠. 비뇨기과적으로 남성성을 강화시켜주는 수술이 있거든요. 그럴 때도 고래잡이와 같은 항생제를 처방합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주시기도 했지만 이 정도만 쓰겠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는 약을 대할 때 추측하거나 매뉴얼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약이란 것이 다양한 적응증에 사용되고, 사람마다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기도 하더라고요.

약은 알면 알수록 어려웠습니다. 그만큼 재밌기도 했고요.




약국에서 복약지도할 때 상충하는 두 가지가 있어요.

"효과를 최적화시키는 복용법" vs "순응도를 높이는 복용법"

보통은 후자를 따릅니다. 환자가 약을 복용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항생제 복용에 대해 전자의 내용 플러스 꼭 지켜줬으면 하는 항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항생제는 일정한 간격으로 복용하는 것이 좋아요!


1일 3회 복용이라고 한다면 8시간 간격, 1일 2회 복용이라고 한다면 12시간 간격으로 항생제를 드신다면 혈액 속에서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겠죠.

세균을 공격하는 항생제의 혈중농도가 일정한 게 바람직합니다.

1~2시간 차이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서 시간 간격에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보통은 하루 세 번 식후에 약을 드시라는 말을 들으셨을 거예요.

약 복용을 잊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복약지도 기본입니다.

옛날엔 삼시세끼 밥은 꼭 챙겨 먹었으니까요.

오늘날에는 삼시 세 끼를 다 챙기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니 하루 세 번 일정한 시간에 드시는 게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한편, '클래리스로마이신'처럼 식사 직후에 드시면 효능이 더 좋은 약물도 있습니다.

'테트라사이클린'처럼 공복에 먹는 것이 효과적인 약도 있고요.

이런 특이적인 경우는 약국에서 처방받으실 때 약사님이 말씀해주실 거예요.


2. 특정 항생제의 보관법을 지켜 주세요!


대부분 의약품은 실온보관인데요. 특정한 약들은 냉장보관하기도 해요.

항생제의 경우 냉장보관이 필요한 약은 대부분 시럽제에 해당될 텐데요.

대표적인 성분으로는 '아목시실린+클라불란산칼륨'이 냉장보관 대상입니다.


그런데 냉장보관을 하면 안되는 시럽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던 '클래리스로마이신' 시럽인데요.

이 약은 본디 매우 쓴 맛을 내기 때문에 약 성분을 코팅한 시럽입니다.

그런데 냉장보관을 하면 이 코팅이 깨집니다.

그럼 결국 쓴 맛을 내겠죠? 아이는 먹기 싫다고 울 겁니다.


항생제 중 '아목시실린+클라불란산칼륨' 정제는 PTP(press through package) 포장이 되었을 건데요.

이 약은 약국에서 까서 포장해주시지는 않을 겁니다. 이유는 알약이 습기를 잘 먹고, 그러면 약효가 크게 반감되거든요.

PTP(press through package) 포장


3. 증상이 좋아져도 항생제는 의사가 처방한 기간만큼 끝까지 드세요.


항생제 부작용 중 가장 두려운 것이 내성입니다.

항생제가 든 감기약을 하루분 먹고 증상이 좋아져서 복용을 중단하시는 분도 있는데요.

말끔하게 방역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처방된 약을 다 드셔야 합니다.

증상이 좋아졌더라도 적은 양의 세균이 생존한 경우가 있습니다.

내 면역력이 다시 회복되어 세균이 번식하지 않고 죽을 수도 있지만, 일부 세균은 항생제를 기억하고 내성을 갖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균이 다시 번식할 때 동일한 항생제가 듣질 않게 돼요.


다른 항생제로 바꿀 수 있지만, 내 몸에 다양한 항생제 내성을 쌓아두면 100세 즈음 듣는 약이 없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00세가 아닐지라도 수술하게 될 때 보통 항생제가 듣질 않으면 난감한 경우가 발생합니다.

'다제내성균(MDR)', '슈퍼박테리아'가 이래서 큰 이슈가 되었죠.


4. 항생제 복용 기간에는 제발 술 드시지 마세요.


이러신 분들 꼭 있어요.

'약 드실 때는 술 드시면 안됩니다'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늘 회식인데 마시면 안될까요?'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예요.


가장 큰 이유는 간에 무리가 가기 때문입니다.

간이 항생제 등 약물이나 술을 대사하느라 과도한 일을 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데미지가 옵니다.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신체 컨디션이 안 좋은데 간독성을 굳이 유발할 필요는 없겠죠?!

술은 항생제(예. 독시사이클린)의 효과를 줄이기도 하고, 항생제(예. 메트로니다졸)가 알코올 대사물질을 증가시켜 구역, 위경련, 구토, 홍조, 두통 증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프실 땐 쉬어가는 타이밍이라 생각하시고 쉬면서 또 체력을 보강하세요.

직장생활하다 보면 술을 안 마실 수 없겠죠.

그래도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아플 땐 피해 가시길 바라요.

자이언티가 양화대교에서 한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정적인 이해는 갑니다.

못 마시지만, 맥주 한잔이 땡기는 밤이에요.

고된 하루를 감당하시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담에 또 건강한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B.2H. (Be healthy and happy!)

From Lunar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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