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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한 Apr 05. 2021

프로파일러 입직 (후) 법심리학 박사

저의 새로운 꿈도 이루어지겠죠?

대학만 가면 놀고먹을 줄 알았던 (전직)고등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원만 가면, 논문만 쓰면, 취직만 하면... 세상 한가득 꽃이 필 줄 알았다. 웬걸, 오래 꿈꾸던 목표를 달성하자 허무함이 진하게 찾아왔다. “나는 프로파일러다!!!” 이마에 써붙이고 다닐 것 같던 마음도 잠시였다.


업무에 얼추 적응하고 나자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 석사 공부를 할 때부터 박사를 하고 싶었다. 다만 경제적인 고려 끝에 취직을 먼저 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일이 바빠 최신 연구를 들여다볼 새가 없었고, 석사 때 공부했던 것들도 흐릿해졌다. 이제는 미뤄뒀던 공부를 시작해야 될 때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는 부산에 있는 학교들을 알아봤다. 그런데 부산에는 법심리/범죄심리 분야를 배울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석사 때 지도교수님을 따라 동국대에서 공부하기로 했다(교수님이 학교를 옮기셨다). 동국대에는 심리학 학부 과정이 없고, 경찰행정학과 대학원 세부 전공으로 법심리학이 있다. 오랜만에 학업계획서를 쓰고 면접을 보니 재미있었다. 요즘은 웬만한 일에는 긴장이 되지 않아서 좀 심심했는데.


교수님이 놀라셨다. “부산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다니려고?” 주 1회 정도는 연가를 내고 학교에 다닐 계획이었다. 하루에 수업 2개를 몰고 주말에 수업 하나를 들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생했다. 대학들은 ‘비대면 수업’이라는 초유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덕분에(?) 나는 부산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세 번째 학기에 접어들었지만 학교에 간 것은 손에 꼽는다. 집에서 듣는 것만도 힘들어서 눈물이 찔끔 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가서 수업을 들으려고 했다니. “합격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나이브한 마음에서 비롯된,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비대면 수업 찬양합니다.


공부는 재미있다. 법심리학은 실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현업에 큰 도움이 된다. 퇴근 후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게 힘들 때도 많지만 그에 상응하는 성취감이 있다. 박사 학위를 하면서 범죄분석 의뢰가 크게 증가했고, 보고서에 최신 연구 결과를 넣을 수 있어 수사팀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석사 입학할 때는 ‘여성과 범죄’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썼다. 박사 입학할 때는 ‘동물학대’를 연구하고 싶다고 썼다. 학위논문은 다른 주제로 쓰게 될 것 같지만... 동물학대를 비롯한 약자 폭력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새로운 꿈이다. 직업 덕분에 과분한 마이크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기왕 내 손에 마이크가 있다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소리 낼 의무도 함께 주어진 게 아닐까. 사회적 존재로서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프로파일러 입직기를 마치며-

프로파일러라는 단어 이면의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직업도 삶의 많은 정류장  하나일 뿐이더라고요. 꿈을 이루어가는 지난한 여정과, 직업을 매개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모습을 나누고 싶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의 새로운 꿈도 이루어지겠죠?


프로파일러 입직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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