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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한 Mar 17. 2021

범죄자와 마주 앉기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

“헉, 프로파일러라고요? 그럼 살인범도 직접 만나는 거예요? 무섭지 않아요?” 자주 듣는 질문들이다. 답하자면, 프로파일러로서 살인범을 직접 만나지만 무섭지는 않다. 담대하다거나 직업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생각처럼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에는 잔인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했겠지만 나와 면담하는 순간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범죄자는 없다. 말하자면, 그들의 모든 순간이 악으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은 범죄자에게도 복잡한 삶이 있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는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타인을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은 쉽고 직관적이다. 반면 타인의 삶을 켜켜이 이해하려는 시도는 많은 인지적 자원을 요한다. 


나 또한 실제로 범죄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들의 생애를 처음부터 훑어 나가는 일을 업으로 삼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그들의 삶 또한 한 권의 책과 같으며, 범행은 그 책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페이지를 앞뒤로 넘기면 그의 복잡다단한 면이 빼곡히 적혀 있다는 것을. 


범죄자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경찰 입직 전, 대학원생 때였다. 범죄심리사 자격 수련을 위해 소년범을 면담하고 재범 위험성을 평가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비정기적으로 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가면 되는 일인데, 우습게도 이십 대 중반의 나는 소년범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경찰서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소년범이 나를 만만하게 보면 어떡하지, 면담을 거부하면 어떡하지, 화를 내면 어떡하지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전화 걸기에 지친 경찰서에서 문자까지 보내는 지경에 이르자 더는 회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의자보다 연락이 안 되는 심리전문가라니(체포를 할 수도 없고),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서로서도 난감했겠다. 


결국 면담을 하러 경찰서에 가고야 말았다. 티 나지 않게 심호흡을 하고 마주한 그 소년범은, 어라, 아주 싹싹했다. 마주 앉아 한참 동안 얘기를 하며 범행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듣고 있자니 딱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내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고, 면담에 협조적이었고, 가끔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며칠의 불안이 머쓱해졌다. 무사히 면담을 마치고 그 소년범의 안타까운 사정을 고려해 재범 위험성을 낮게 평가한 보고서를 슈퍼바이저에게 전송했다. 보고서를 받아본 슈퍼바이저는, 재범 위험성을 낮게 평가한 이유를 내게 물었다. 
이 소년범은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하다가 스스로 깨달았다. 사정없는 범죄자가 어디 있겠는가? 범죄자를 일종의 괴물처럼 생각했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반작용으로 너무 선심을 써버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누군가를 몹시 나쁘거나 너무 불쌍하게 여기는, 전형적인 타자화의 기제를 내 안에서 발견하고 오랫동안 부끄러웠다. 그 뒤로도 마음속 무게추가 크게 흔들리는 경험을 몇 번 더 하고 나서야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지금의 나라면 그 소년범을 더 엄격하게 평가할 것이다.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믿는다. 나와 같은 복잡한 존재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책임의 무게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이나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 같은 말은 공허하다. 모든 사람은 대부분의 순간을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때로는 멋진 일을 해내고 때로는 욱하거나 지질하게 군다. 그 순간을 법적 언어로 재구성하고 해석하면 삶은 지워지고 범죄만 남기 쉽지만, 그런 단면적인 해석은 본질을 가린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을 건넨다. 


‘나쁜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이것뿐이다: 범죄자도 한 명의 복잡한 인간이다. 


덧.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는 선처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거나 피해자에 대한 무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범죄는 사회적 맥락과 개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범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범죄자들도 사회의 구성원이었으며 형기를 마치면 다시 사회로 복귀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개별적 사연보다는 사회적 맥락을 다룸으로써 사회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부산민예총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openart.or.kr/bbs/board.php?bo_table=column&wr_id=222&sfl=wr_subject&stx=%EC%9C%A4%EC%A0%95%EC%95%84&sop=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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