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새로운 꿈도 이루어지겠죠?
대학만 가면 놀고먹을 줄 알았던 (전직)고등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원만 가면, 논문만 쓰면, 취직만 하면... 세상 한가득 꽃이 필 줄 알았다. 웬걸, 오래 꿈꾸던 목표를 달성하자 허무함이 진하게 찾아왔다. “나는 프로파일러다!!!” 이마에 써붙이고 다닐 것 같던 마음도 잠시였다.
업무에 얼추 적응하고 나자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 석사 공부를 할 때부터 박사를 하고 싶었다. 다만 경제적인 고려 끝에 취직을 먼저 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일이 바빠 최신 연구를 들여다볼 새가 없었고, 석사 때 공부했던 것들도 흐릿해졌다. 이제는 미뤄뒀던 공부를 시작해야 될 때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는 부산에 있는 학교들을 알아봤다. 그런데 부산에는 법심리/범죄심리 분야를 배울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석사 때 지도교수님을 따라 동국대에서 공부하기로 했다(교수님이 학교를 옮기셨다). 동국대에는 심리학 학부 과정이 없고, 경찰행정학과 대학원 세부 전공으로 법심리학이 있다. 오랜만에 학업계획서를 쓰고 면접을 보니 재미있었다. 요즘은 웬만한 일에는 긴장이 되지 않아서 좀 심심했는데.
교수님이 놀라셨다. “부산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다니려고?” 주 1회 정도는 연가를 내고 학교에 다닐 계획이었다. 하루에 수업 2개를 몰고 주말에 수업 하나를 들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생했다. 대학들은 ‘비대면 수업’이라는 초유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덕분에(?) 나는 부산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세 번째 학기에 접어들었지만 학교에 간 것은 손에 꼽는다. 집에서 듣는 것만도 힘들어서 눈물이 찔끔 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가서 수업을 들으려고 했다니. “합격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나이브한 마음에서 비롯된,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비대면 수업 찬양합니다.
공부는 재미있다. 법심리학은 실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현업에 큰 도움이 된다. 퇴근 후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게 힘들 때도 많지만 그에 상응하는 성취감이 있다. 박사 학위를 하면서 범죄분석 의뢰가 크게 증가했고, 보고서에 최신 연구 결과를 넣을 수 있어 수사팀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석사 입학할 때는 ‘여성과 범죄’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썼다. 박사 입학할 때는 ‘동물학대’를 연구하고 싶다고 썼다. 학위논문은 다른 주제로 쓰게 될 것 같지만... 동물학대를 비롯한 약자 폭력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새로운 꿈이다. 직업 덕분에 과분한 마이크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기왕 내 손에 마이크가 있다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소리 낼 의무도 함께 주어진 게 아닐까. 사회적 존재로서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프로파일러 입직기를 마치며-
‘프로파일러’라는 단어 이면의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이 직업도 삶의 많은 정류장 중 하나일 뿐이더라고요. 꿈을 이루어가는 지난한 여정과, 직업을 매개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모습을 나누고 싶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의 새로운 꿈도 이루어지겠죠?
프로파일러 입직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