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민트 Apr 28. 2022

가끔 들리는 신음이 거슬린다

헬스장 탐구 소설

러닝 20분, 자전거 20분, 계단 오르기 10분, 스테퍼 10분.


누가 와도 꿀리지 않는 당당한 내가 되기 위한- 나의 첫 운동 루틴!

속도 및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는 하나, 전부 유산소 운동이다.


난 예전 사람이라 '우선 유산소로 살을 빼고, 이후 무산소로 근육을 붙이라'는 공식을 따랐다.

사용할 줄 아는 기구가 거의 없는 것도 한 몫했다.  


남자는 과거 다른 클럽에서 운동 경험이 있었고,

평소 내가 집에서 스트레칭이라도 할라치면 자꾸 '이렇게 해야 한다'면서 간섭했기에,

잘 알려줄 거라 기대했지만 왠지 미온적이다.


전문 트레이너들이 있으니 얕은 지식으로 나서기 부담되었을까.

본인도 적응하느라 가르쳐줄 정신이 없었겠지라고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가 자기 운동하느라 날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는 점은 분명하다.


차마 거기 있는 여자들 눈치 보느라 그랬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흥!



육아하고 살림하며 내일을 걱정하던 단순한 일상에 운동이 들어왔다.


몸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며 시작한 운동이지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생활 전반에 가히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레깅스를 샀다. 몸에 밀착되는 건 알지만 굳이 펑퍼짐한 옷을 입어 몸을 가릴 이유는 없었다. 운동복 고르려고 보니 얌전한 옷은 죄다 '팔뚝살 완전 커버, 뱃살 완벽 커버' 이런 문구로 홍보했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몸을 가려야 하나?'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살 좀 있으면 어때 싶었다.


스포츠 브라탑과 기능성 티셔츠도 샀다. 운동할 때 몸을 지지해주고 무엇보다 땀이 빨리 흡수되고 잘 마른단

다. 브라탑 입고 몸 자랑할 수 있겠지만, 정 더우면 브라탑만 입을 수도 있겠지만, 이마-목덜미-겨드랑이-팔로 땀이 줄줄 흐르는 게 싫다. 티셔츠를 입어 운동할 때 나오는 땀을 흡수하도록 했다.


등록할 때 안내를 받지 못했는데 ‘실외 신발을 신고 출입시 세 번 걸리면 강퇴’라는 경고 메시지를 라커룸에서 발견하고 부랴부랴 실내 운동화를 주문했다. 평소 잘 신지 않는 흰색으로. 검정색도 사서 번갈아 신고 싶다.   


그리고 거치적거리는 안경을 벗었다. 헬스장에서 굳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는 없다. 특히 남의 움직임과 시선.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꼽고 음악, 뉴스, 어학 파일을 들었다. 흐악흐악. 후후. 아아아악. 주위에서 간혹 들리는 신음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내 운동 외 신경 쓰일만한 모든 것을 끊고자 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니 지루하면 어쩌나 했지만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오히려 좋았다.


그 지리한 반복이, 규칙적으로 내 몸을 자극하는 게, 좋은 습관에 날 가두는 것이

내 몸이 아니 내 영혼이 원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운동할 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은 걱정하지 않고

오직 내 몸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게 좋았다.




그동안 난 내게 단련할 수 있는 근육이 있는 줄 몰랐다.

내 몸에 운동 능력이 있는 줄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운동은 내가 없었던 내게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매우 기분 좋은 활동이었다.

하루 한 시간, 내가 나를 돌보고 위로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레깅스 입은 요사시런 여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