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네'
예술을 업으로 하지 않거나
예술이 업이지만 밥벌이 시원찮은 이가
본인의 미적 감각을 만족하기 위해
본인이 설정한 예술적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몰두할 때
주위에서 비아냥대며 하는 말.
벌써 이십 년이 다 돼간다.
보조출연 아르바이트한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택시 타고 방송국에 도착해서 드라마명 팻말 달린 관광버스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때.
인기 드라마 아닌 단편 찍는 감독이
특정 장면에 집착하며 여러 번 찍고 다시 찍기를 거듭하면 여지없이
잔뼈 도톰한 거친 언니들이 톡 뱉었다 '예술하네'
글 쓸 때
난 예술하고 있다
문예 하는 것도 아니면서 혼자
엄청 예민하다
날파리 하나 얼씬하지 못할
살벌한 고요 속에
잡았다 놨다 단어 몇 개를 수없이 굴리며
엎치고 뒤치는 내적 싸움에 홀로 사로잡혀 있다
글이 안 풀릴 땐 더더욱 촉수가 곤두서
먼지 한점 손등에 앉는 것도 견디지 못한다.
긴장이 임계점을 넘으면 이내 붉은 두드러기가 온몸에 토독토독 번진다.
행여나 눈 뜨고 있다고
함부로 말 걸어서는 안된다
영문 모를 불벼락에 속눈썹 탈라
영감 씨는 길 어귀에서 올 듯 말 듯 살랑이다
다가가면 스스륵 어디론가 몸을 숨긴다
잠깐 눈앞에 아른거려
옷소매라도 잡아볼까 손을 뻗으면
정적을 깨부수는 소리-
'예술하고 있네'
집중할 땐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영감 씨를 놓치면 안 되는 건데
사방에서 훼방 놓고 꼬투리 잡고 당최 가만 두지 않는다
이래서 모든 아름다운 것은 산속에 있는 건가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비아냥대도 할 수 없다
그냥 방해만 하지 말라고
나 예술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