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월요일
주말이 되면 노래 가사에 나오는 계란 후라이처럼, 따뜻한 밥 위에 나른하게 풀어져서 손 하나 까딱 하기도 싫어진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주말이 순간 삭제되고 어김없이 월요일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일요일 저녁, 한껏 느슨해진 심신과 싸우며 월요일 퇴근 후 운동 용품들을 미리 챙겨 놓는다.
단백질 쉐이크, 필라테스 운동복, 세면도구들을 챙기며 게을러진 죄책감을 다시 팽팽하게 일으켜 세운다.
항상 새해가 되면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고, 작년에 세운 계획들은 얼마나 지켰는지 회고하는 걸 즐긴다.
2023년에 세운 계획들은 반은 지키고 반은 못 지킨 것 같다.
올해도 세우는 계획들이 거의 변함없이 비슷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목표치가 달라지거나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해가 지나갈수록 변하는 건 겸손해지는 목표량과 방대한 계획들에 비해 못 미치는 체력으로 손절 당해 단출해진 계획들이다.
매년 변하지 않는 목표 1순위는 다이어트였다면, 이제는 더 구체화된 목표들을 적어본다.
간식 줄이기, 주2회 이상 운동하기, 일찍 잠들기, 출퇴근길 걷기, 물 2L 마시기, 계단 오르기
5kg,10kg 감량 목표를 무심코 적었다가 감량은 무슨 더 건강해진 나의 모습을 보고 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체력을 올려서 더 활기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그만큼 달콤한 유혹을 외면하고 쓰디쓴 인터벌 유산소와 속 근육을 쥐어짜는 필라테스의 고통을 이겨내다 보면 하루가 말끔하게 마무리되어진다. 언제쯤 내가 원하는 몸무게와 몸매를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나만 느낄 수 있는 한 꼬집 정도 줄어든 아랫배 살을 느끼며 위안을 삼아본다.
나는 무엇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일 어려운 게 나 자신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델 한혜진의
“세상 어떤 것도 제 마음대로 안 된다. 일도 사랑도 제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 내 컨트롤 하에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게 몸이다.
몸 만드는 게 제일 쉽다"
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미래처럼, 자기 관리에 실패한 채 속세의 유혹을 못 이기고 허덕일 때가 훨씬 많다. 다음날 몸무게 숫자가 마치 빨갛게 변해 솟구치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오늘 하루 나에게 주는 보상은 어쩜 그리 후하고 달콤한지 매번 후회와 식탁 앞 행복의 줄다리기를 한다.
"다시 내일부터 시작하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작심삼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월요일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해본다. 각박한 세상 속 수많은 질타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요즘, 나를 너무 옥죄며 좌절하기 보다는 셀프 칭찬을 하며 나부터 스스로 돌봐주기로 결정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생각해보면, 나 포함 사람들은 무언가 절실하면 더 열심히 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시험을 코앞에 두고 코로나에 걸리면 시험장에서 겪을 불이익에 걱정하며 한 달 동안 일절 외출을 금지하고 시험공부를 할 때처럼 나에게 절실한 것이 없었다.
그만큼 더 절실하게 뭐든 계획하고 실천해보려고 자기암시를 해보지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올해의 1월 시작은 절실했던 시험 시기에 꾸준히 했던 미라클 모닝을 변형하여 갓생 살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만의 생활 패턴에 맞춰서 뭐든 꾸준히 해보려고 일단 일찍 일어나보면서 기상 습관을 만들고 있다.
아직까지 내 패턴에 맞는 게 뭔지 고군분투 중이고 매일이 무거운 눈꺼풀의 유혹으로 힘들다.
공복 운동이 체중감량에 도움도 되고 추천을 많이 하기에, 호기롭게 도전하며 연속 5일 운동을 했다가 지독한 코로나에 걸려 잠정 중단이 되기도 했다. 대체 나의 열정에 비례되는 내 체력은 얼마 만큼인가 자책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요가나 명상처럼 조용하면서 이완되는 차분한 아침을 맞이하는 일상 브이로그를 보고 반해 무턱대고 시작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기에 내 체력은 바닥이고, 명상을 하기에 침대에서 책상까지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일단 누워서 귀만 열고 몸을 이완시키는 5분 명상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명상을 하고 일어나서 침대자리를 정리하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준다. 차디찬 찬바람을 맞으며 잠도 깨고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은 푸르스름한 하늘을 보면서, 이 시간에 혼자 깨어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짝 우쭐대기도 한다.
이제 어렵게 잠을 깼으니, 일어난 게 아까워서 책상에 앉아서 뭐라도 하게 된다.
좋아하는 자스민차를 따끈하게 우려내서 속을 데워주며 나만의 시간을 차분하게 갖는 걸 즐기게 되었다. 다이어리를 정리하기도 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하기도 한다.
하루에 한 시간씩 꼭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압박감으로 아예 아무것도 못할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내 컨디션에 맞게 헬스장에 가는 것만으로 목표를 바꿨더니 짧게라도 자주 운동을 하게 되어서 더 좋았다.
거창하게 무엇을 해야 하고,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계획 보다, 부족하지만 소소하게 작은 것부터 이뤄내다 보면 어느새 예전보다 조금은 달라진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슬쩍 기대해보게 된다.
"최선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차선은 틀린 일을 하는 것이다.
최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작의 기술 '게리 비숍' -
무엇이라도 일단 시작해보고, 작은 성취감이 쌓여 성장할 수 있는 2024년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월요일, 다시 시작하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