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간호조무사 직업을 알게 되었다.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집 근처에 병원들이 많아서, 그 중에 내가 일 할 병원 하나 없을까 싶은 마음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코로나19로 온 세상은 멈춰버렸고, 남들이 멈춰 있을 때 나는 그 시간을 활용해 공부를 하겠다는 합리화를 하며 시작하게 되었다.
다시 시작하게 된새로운 분야의 공부는 모범생 같은 나의 성향에 잘 맞았고 공부한 만큼 알아가는 지식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비록 남들보다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취업의 문을 두드려야했지만,내가 노력한 만큼 공평하게 얻어 갈 수 있는 점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만 하면 합격할 수 있는 시험 난이도라고 해서 겁 없이 시작했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순식간에 자유로웠던 예체능계열의 사람이 전문적인 의료계열의 분야로 넘어 오다보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기초적인 지식조차 전혀 없었기에, 처음 한글을 떼는 아기처럼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애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나의 처지에서 오히려 0부터 시작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첫 번째 목표가 시험 합격 그리고 최종목표가 취업할 수 있다는 목표가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수험생의 마음으로 보내면서, 결국 시험 합격을 했다.
합격을 하자마자 나는 쉬지 않고 바로 집 근처의 병원에 순서대로 지원을 했다. 산부인과 안에 있는 검진센터 부서가 접근성이 쉬워 보여서 첫 번째로 지원을 했다. 그리고 지원을 하자마자 다음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검진센터는 이미 마감이 되어서, 산부인과 외래로 면접을 볼 생각이 있으면 오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물불 가릴 수 없는 시기였기에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어느 화요일 오후에 지하1층 간호부장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90도 인사를 드리면서 첫 외래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의 신상에 대해서 간단히 물어보고 디자인 경력을 쌓으면서 취득한 수십 개의 자격증을 보면서 디자인 쪽으로 일을 그만 하는 거 후회 안할 자신 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로 겪은 나의 방향성을 확신했기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후회 안할 자신이 있다고 말을 했다. 더 이상 열정 페이를 운운하며, 끝나지 않는 퇴근시간에 눈치 보며 일하기는 싫었다. 면접이 마무리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갑자기 이번에는 나이도 어린데 분만실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떠보기 시작했다.
출퇴근이 확실한 것 보고 지원한 나에게 갑자기 3교대를 권유하며 풍부한 경력을 인정받고 싶지 않냐고 또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대학병원에서 20년 경력을 쌓고 수쌤까지 하고 지금은 간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외래에서 일하는 거랑 분만실에서 일하는 거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할 시간을 하루 더 줄 테니 내일 다시 와서 분만실 면접을 보지 않겠냐고 마무리를 하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양해를 구하고 잠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번만큼은 귀 팔랑거리며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에 병원에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며 상담을 했고, 내가 원하는 건 확실한 출퇴근 시간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1차 면접에 합격했고 대표 원장 면접을 보러가자고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지하 1층에서 3층으로 가서 대표원장 2명에게 연달아 2차 면접을 보았고, 실무자들에게 3차 면접까지 , 무려 2시간의 대장정 면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속전속결로 합격하게 되었고, 그 길로 내 인생 2막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산부인과 특성상 외울 것이 많기에 미리 숙지하면 좋을 것 같다고 자그마한 노트를 받았다. 노트 가득 외울 것이 상당했고 처음 보는 의학용어와 산모 주수에 따라 해야 할 검사들, 수 십 가지들의 용어들을 보며 적잖이 당황을 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드디어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병원이라는 곳에서 처음 일을 하게 되었고, 병원을 자주 오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너무나 낯설었다.
원래 낯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서, 처음 오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산부인과는 특성상 의사 어시스트로 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나는 산과와 부인과 이렇게 나눠진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산부인과는 임신한 사람들만 오는 줄 알았던 나의 무지함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과연 이렇게 백지상태인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내가 선택을 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내가 질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들에 책임을 지기 싫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기도 전에 그만뒀다.
지금 생각해보면 포기하는게 가장 쉬웠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포기하고 쓰러지더라도 나는 이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지쳐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업무하면서 필기했던 내용, 자료들을 퇴근 후 매일 밤마다 복기하며 공부를 했다. 생소하던 단어들이 익숙해지고 조금씩 차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목표가 있고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그게 뭐가 됐든 시작하고 도전해 보는 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