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정말 어떤 일을 해야 내가 만족하며 생활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어딜 가도 과장급 이상의 나이였고 신입으로 들어가기에는 애매한 경력이었고, 경력자로 들어가기에는 나이만 많고 한참 모자란 경력이었다. 확실히 3년의 편의점 일로 인한 경력 단절이 매우 크게 작용을 했고, 어떤 회사에 지원해도 불러주는 데가 전혀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 했고, 0도 아닌 마이너스부터 시작을 하려니 앞이 캄캄하고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아침에 깨어나면 걱정과 생각을 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과하게 잠을 자며 일어나기를 거부하기도 하는 우울증 초기를 겪기도 했다.
몇 달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좁고 어두운 내 방안에 틀어 박혀서 잠을 자거나 생각을 했다.
가끔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기 보다, 한숨을 작게 쉬며 방문을 닫을때 나는 더 이불 속 으로 침전하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걱정만 할 수는 없었고, 세상을 스스로 박차고 나가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기로 했다.
내일 배움 카드를 등록하고, 상담을 하며 취업 준비를 했다. 내 담당 직업상담사는 내 디자인 자격증을 보고 디자인 쪽 관련 일을 하기를 권유했다. 나는 민간 자격증 포함,디자인 관련 자격증을 8개 정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실무에서는 자격증 보다는 업무의 경험과 능력이 중요했기에 자격증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업 상담사의 설득과 내 경력이 아쉬워서 계속 디자인을 놓지 못했다.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디자인 일을 알아보게 되었고, 부산에 수요가 많을 것 같은 웹디자이너를 알아보기로 했고 바로 웹디자인 자격증 반을 등록 했다. 내일 배움 카드 수업 중에 가장 고가의 수업이었고, 남들이 2개 수업을 들을 것을 하나밖에 듣지 못할 만큼 비용이 엄청났다. 선택 사항이 없었기에 등록을 하게 되었지만, 알고 보니 웹디자인 자격증 반은 없어질 위기에 처할 만큼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자격증을 요구하기보다 포토폴리오를 중시하는 시대가 되어서 웹디자인 자격증의 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는 것을 알고 현실을 더 직시하게 되었다.
수업을 듣는 시간은 회사 업무 시간 정도로 길었고, 기간도 길었다. 예전처럼 수업만 듣는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법이 없었기에 나는 더 마음이 불안해져갔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수시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원하는 회사는 없었고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니 매일이 흐림 가득이었고, 선명한 날이 없었다.
걱정은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져갔고, 내가 일할 자리는 아예 없을 거라는 불안함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매일 밤을 지새다보니 밤낮이 바뀌게 되었고 점점 피폐해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10여년을 전공만을 위해 살아왔고, 그 전공에 맞춰서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전공이 아닌 분야에 뛰어들려고 하니, 현실의 벽이 너무나 높고 험난해보였다.
취업 사이트에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신입 분야는 계속 찾아보게 되었고, 그 중 사무직, 웹디자이너, 패밀리레스토랑, 홍보마케팅, 카페, 식품 개발업체, 상담사까지 지원을 안 해본 분야가 없었다.
그 결과는 1차 서류에서 대부분 탈락이었다.
가뭄의 콩나듯 ,면접을 보러 가서도 내 나이가 가장 큰 문제점이었고, 미혼인 나의 현재 상황에 결혼과 출산이라는 큰 걸림돌까지 하이패스로 불합격을 안겨주었다.
나는 여태 주어진 환경에 맞춰서 쉽게 퇴사를 하거나, 입사 결정을 했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어떤 일을 원하는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돌아갈 수 있다면 딱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내 미래를 촘촘하게 설계하고 다시 계획하고 싶었다.
늦었지만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해야 보람을 느낄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패션 디자인 쪽 일은 했지만, 디자인 쪽 보다는 현장 일의 비중이 더 높았기에 만족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항상 일 외에 다른 취미 생활에서 일에서 찾을 수 없는 의미를 찾게 되었고, 점점 일과 취미생활이 주객전도가 되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기획하고, 원하는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보람도 있었기에 만족도가 굉장히 컸다. 그에 반면에 일에서는 퇴근시간이 불확실 하여서 저녁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불평이 엄청 큰 상태였다. 그리고 어떤 회사든 마찬가지겠지만 수동적인 틀에 맞쳐서 수직적으로 움직여야 했고, 내가 주체적으로 일에 임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과 삶의 균형이 있는, 워라벨이 삶의 1순위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워라벨을 추구하는 모습에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 하냐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꿈꾸는 요즘, 끊임 없이 계속 배우고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며 언젠가는 내가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잠재력을 찾고 싶다.
그게 중년이든 노년이 되어서 깨닫게 되더라고 계속 꿈꾸는 삶을 살며, 고집불통이지만 꿈꾸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일러스트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러스트 작가로 내 꿈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
취업의 문턱에서 나이와 경력 단절로 비난을 받았지만, 주체적으로 내가 꿈꿀 수 있는 세상은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확연하게 달라질 것을 알기에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하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사용해서 내 삶을 풍부하게 꾸려나갈지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