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사람이 있었어
붕대 아저씨와의 대화와 캐네디언 할머니의 초대 이후로, 나는 혼자 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많은 여행을 하였다. 나의 독립심을 길러주기 위해 초반 한 달을 혼자 다니도록 훈련시킨 언니는 한 달이 지나자 언니의 지인들과 나를 짝지어서 여행을 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언니와 둘이, 때로는 형부까지 함께 하여 여행하기도 했다. 그사이 나도 독립심이 많이 늘어 몬트리올까지 홀로 다녀오기도 했다.
캐나다의 자연 풍경은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들이 날아다니던 울창한 숲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휴양림은 나무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컸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나무는 애기나무처럼 느껴졌다. 큰 배를 타고 우비 입고 들어가던 나이아가라폭포도 생각난다. 아찔하게 높던 CN타워도,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처럼 건초더미 쌓인 들판을 끝없이 지나 나타나던 천섬도, 흐린 날의 수채화 같던 수도 오타와도, 또래친구들과 함께 수련회에 참석했던 몬트리올도,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이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잠시 슈퍼맨이 된 것 같았다. 뭐든지 부딪혀서 도전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 여행 전에 느꼈던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던 무력함에서 벗어나 진취적인 청년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가슴 한켠에 늘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파리라는 구체적인 여행지는 훗날 자기 계발서의 마법카드에서 보고 꿈꾸게 됐지만, 진짜 여행의 힘을 깨달은 건 이때부터였다.
고마운 언니, 그리고 형부. 시골에서 제한된 삶을 살아가던 내가 언니 덕분에 캐나다에서 혼자 길을 찾고, 캐네디언 할머니에게 초대도 받고, 혼자 타국에서 타 도시도 가고, 또래친구도 사귀고 했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언니부부는 내가 홀로 귀국하는 길에 로키산맥, 빙하, 빅토리아 관광 등이 포함된 패키지여행에 등록시켜 그 장관인 풍경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마 이때부터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패키지여행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 여행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웠으므로.
언니는 고작 20대였고, 형부도 겨우 30대 초반이었다. 중년이 되어 생각해 보니 그때의 언니와 형부는 너무도 어린 나이의 청년이었다. 그런 나이에 시골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동생을 위해 큰 사랑을 베풀어 준 언니, 형부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애써서 어릴 적 여행을 떠올리다 보니 캐나다를 다시 다녀온 느낌이 든다. 어떠한 기대도 원칙도 없이 흘러가는데 그냥 뒀던 첫 여행, 그리고 양말 코디까지 계획됐던 파리여행. 두 여행의 시작은 달랐지만 나의 모든 여정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은 내게 일상을 살아갈 힘을 주었다. 내가 그랬듯 나도 작은 친절을 베풂으로서 누군가가 치유받고 성장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며 파리와 캐나다 여행기를 끝마친다.
(늦깎이 순응거부자의 파리 그리고 캐나다 여행기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