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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토마토

토마토는 과일입니다만.

by 커피중독자의하루

그때 나는 주일학교에 다녔다. 8살이었는지, 9살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주일학교 가기 전, 엄마는 헌금을 하라고 100원, 200원 정도를 손에 쥐어 주셨다. 군것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 돈으로 슈퍼에 갈 생각조차 안 했다.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콩나물국에 헹군 김치일만큼, 나는 군것질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하지만 교회를 가기 전 늘 큰 고비가 있었으니, 바로 교회 갈 시간에 맞춰 방영하던 만화였다. 무슨 만화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나오는 만화였다는 거 말고는. 기억을 못 하는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였다. 재미없는 이유는 그 만화 속 유머를 이해하기 어려워서였다. 그럼에도 그 만화 때문에 교회를 못 갈뻔한 이유는 오빠 때문이다. 나보다 6살 많은 오빠는 그 만화를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그걸 지켜보던 나도 덩달아 만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유혹을 이겨내고 교회에 가면 요셉이야기도 듣고, 모세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주일학교에 의자는 없었다. 큰 공간에서 모두 바닥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전도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었다. 나는 주로 세희 옆에 앉았다. 아니 세희가 내 옆에 앉은 건지도 모른다. 그날 엄마는 내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주셨다.

세희가 말했다.

"ㅇㅇ이는 수수해"

세희의 눈빛을 자세히 봤다. 그게 무슨 눈빛인지 당시에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몹시 아련했다. 세희랑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왔다.


우리 가게 안에는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지만, 가게 안쪽 방은 어두웠다.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오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불안한 맘이 들었다. 그때 마침내 시야에 들어온 엄마. 엄마는 활짝 웃으며 나를 꽉 끌어안아주셨다.

"아이고, 울 애기"

화장기 없는 얼굴에, 녹색 옷을 입고 활짝 웃는 엄마는 싱그러웠다. 엄마의 등장으로 나의 불안은 모두 사라졌다. 나도 따라서 웃었다. 엄마는 옆에 있던 소쿠리에서 토마토를 꺼내셨다.

"울 애기, 이거 먹어." 한 입 베어문 토마토는 새콤하니 맛있었다.

"찰 토마토여, 맛있어." 엄마가 말씀하셨다. 기분이 좋았다. 토마토가 맛있어서도 좋았지만, 사실은 엄마가 활짝 웃으며 꽉 안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 연관 단어는 토마토 = 활짝 웃는 엄마 = 사랑이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무슨 과일 좋아하세요?' 물으면 학교에서 토마토는 채소라고 배웠는데도, 늘 '토마토'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내게 토마토는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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