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만난 친절한 청년

너무 룩소르 이야기만 쓴 걸까 봐....

by 달과 대추야자

이집트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에서 바로 가는 직항이 없다.


여행 성수기 때 한두 번 여행사에서

땡처리 형식으로 뜨는 항공권이 있다고 들었는데

일주일 정도의 기간 안에 돌아와야 하고

사실 나는 아직까지는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직항 필요해....



때문에 한국에서 중국을 거쳐(보통 동방항공)

이집트로 가거나

한국에서 두바이나 카타르 같은 다른 아랍국가에 내린 후,

이집트 항공(보통 이집트 에어)으로 갈아타는 머나먼 여정을 거친다.


직항도 피곤한데....

라는 생각도 들지만

경유하며 이곳저곳의 공항 구경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아무튼,

그중에서도 보통은 이집트 카이로나

알렉산드리아에 내리는 게 보통!


이집트 여행은 카이로에서 내린 후

크루즈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흐르며

룩소르, 아스완과 같이 유적지가 몰려있는 지역에 내려

관광 후 계속해 이동한다.




그런데 나는 이번 여행의 목적이 <룩소르> 였기 때문에

카이로 공항에 내려서도

한참을 룩소르행 비행기가 뜰 시간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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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공항에 내리자마자

모두 다 낯선 얼굴들이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자며 기합을 넣었다.



룩소르 경유 비행기와의 시간이 거의 반나절이라

카이로공항에서 대체 뭘 하고 있어야 할지도 고민됐다.


그러나 저러나, 아무리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도

일단은 타는 곳으로 가있자 싶어

제2터미널을 열심히 찾았다.



그런데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사람들이

이곳으로는 출입이 안 된다고만 하고

(뉘앙스상 출입문이 다른 곳이라는 것 같았음)....



땡볕이라 좌절....

나 어딘가에서 계속 헤매다가

이따 비행기 탈 수 있으려나... 하며

좌절 후

구석진 의자에 캐리어를 끌고 조용히 앉았다.



근데 옆자리 되게 잘생긴(중요하리만큼 기뻤음)

청년이 다가오더니,

어딜 가냐고 물었다.




... 이집트는 그 옛날 고대시절부터 무역과 상인의 나라...


당연히 말 붙이면 팁을 요구하겠지 싶었지만

그러나 그것조차도 받아들일 만큼

나라는 길치는 도움이 절실했다.


물론 커다란 눈에 잘생긴 얼굴이

나의 경계심을 바짝 누그러뜨린 것도 사실이긴 해..



"제2터미널에서 룩소르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어디인지 모르겠어."


그러니 그 청년은 제2터미널은

저 곳이라며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오, 나이스!



캐리어를 끌고 계단 쪽에서 끌어올리려 하자

갑자기 자기가 들겠다며 캐리어까지 들어줬다.



나라는 한국인은 여기서 또다시 경계심을 발동.



"아니야, 괜찮아! 내가 들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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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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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대학을 다니는 그 청년은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집도 카이로라는 듯.

(근데 왜 공항에?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뭔가 사정이 있겠지 라며 말았다....

호기심도 누를 만큼의 땡볕이었음)



"근데 네 비행기 시간이 언제야?"



나는 말없이

룩소르행 비행기 시간 캡쳐본을 보여주었다.



"와. 너 너무 일찍 왔는데?

여기서 자고 있다가 비행기 타도 되겠어!"



하. 하. 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근데 이 비행기밖에 없었단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낙타를 타고 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하하하하하. 너 말 진짜 웃겨."



둘이서 조금 수다를 떨다가,

그가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타벅스 있어.

저기서 기다려도 돼.

아니면 아까 내가 있던 곳 앞에도

카페가 있으니

거기서 기다려도 괜찮아."



오, 오오! 스타벅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응? 한국인이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지?

어떤 한국인들이 그렇게

스타벅스 좋아한다고 이집트까지

소문나게 다니셨습니까.



시간 여건상 카이로 시내를 나가

로컬 카페를 갈 수도 있었지만

혼자인 첫 여행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진 않기로 했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흥정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난 흥정의 여왕이었다는 거.


아무튼.





"진짜 고마워.

스타벅스로 갈래. (<역시 나도 한국인)

너도 내가 고마움의 의미로 커피 살 테니 같이 가!"



당연히 이제 사례를 해야겠지

하며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

커피까지 사주려고 했다.

너무나 고마웠으므로.




"아니야! 진짜 괜찮아.

너 비행기 시간 잘 체크하고,

수속 밟아야 하는 곳은 저쪽인데,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사람들에게 물어봐.


입구만 들어가면 그 안은 심플해.


그럼 안녕! 즐거운 여행돼!"





.... 그리고 밝게 손을 흔들며 가버린 친구.



심지어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나 민망하고 미안했다.



아무 의도 없이 다가와 선의로 나를 도와준 건데

색안경을 끼고 본 나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웠다.



물론 나의 경우가 되게 희소한 것이라고

다들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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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공항에서는 공항직원조차

팁을 주지 않으면 일처리를 늦게 해 주는데


이 착한 이집트 청년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타벅스>까지 알려주고

비행기 시간까지 꼼꼼히 체크해 준 뒤에,


가려다가도 다시 돌아와

출입문 루트 기억하지? 저기야! 나 진짜 이제 간다. 바이-


라고 하는 쿨하지만 친절한 학생이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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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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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카타르 공항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워낙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몇 번 팁을 주며 일처리 해주길 원하다 보니

이제 어떤 직원들은 동양인이 오면

계속 쳐다보며 짐검사를 굉장히,

아주 굉---장히 꼼꼼하게 한다.


뭐가 있는지 뻔히 보면서도

열어보라고 하고, 저건 뭐냐고 하고...



그건 팁을 요구하는 거라고 했다.




근데 나는 몰랐다.



나는 그냥

'와, 이 사람들은 정말

꼼꼼하게 일처리 하는 프로들이구나!'

라고 생각해


응 저건 로션이야,

읽을 책을 가져왔어,

이건 한국에서 가져온 펜이야,

나는 이집트에 가는 길이야,


라며 신나서 이야기했다.




... 그리고 그들은 나를 보내줬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때 나는 심각하리만큼

나는 눈치가 없었기에

그들을 당당히 물리쳤다.



짐검사가 오래 걸려도

비행기 시간이 되면

보내주겠지 뭐, 싶기도 했고..



짐 수색 절차를 거친 뒤

내 바로 뒤에서 기다렸던 중국인들이

카타르 공항직원들을 쳐다보는 눈빛도

상당히 매서웠다.


꽤나 흥미진진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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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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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에피소드는 사실 하나 더 있다.



카이로(카타르 아님!)의 <이집트 에어> 항공은

연착되기로 유명한데,


내가 룩소르행 이집트 에어를

기다리던 그날도 연착이 되었다.



하도 오지 않아 어떤 여행객이

카이로 공항 직원에게 묻자


"앉아서 기다리세요. 한 시간 연착돼요."


라고 말해주었다.



비행기가,

한 시간이나,

연착되기도 하는구나.



하긴 보통 이집트에어는 그런다고 블로그에서 봤어,

라며 난 속 편히 의자에 앉아 멍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1) 한 시간이나 연착되는 비행기와

2) 미안해하지 않는 공항직원들

3) 피곤한 여행객들의 속상한 마음이

복합적으로 반응했다.



물론 당연하다.

시간 많고 즐거운 마음으로만 가득했던 나야

아무 생각 없었지만,

보통 엄청나게 짜증 나는 상황이니까.




"무슨 비행기가 한 시간이나 연착되죠?"

"흠. 삼십 분 더 연착된다고 하네요.

한 시간 삼십 분 기다리셔야 합니다."



"뭐라고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사람들은 웅성웅성,

공항직원들과 여행객들과의 언쟁이 오고 갔다.



엄청난 외국어들의 향연....



그 속에서 한국어는

단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고


나는 문 옆 의자에

데코레이션으로 놓여있는

작은 화분의 바로 옆에서


나 또한 어느 작은 화분인 것처럼

조용히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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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공항에서 조금은 미안했는지

주스 한 박스와 물 한 박스를 주며

룩소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가져가라고 했다.




꼭 <룩소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

이어야만 했다.


다른 비행기 기다리는 사람들은 절대 안 됨!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긴 했음....


두 개도 가져가면 안 됐다.

부족하니까.




나는 망고주스처럼 보이는 걸

잽싸게 골라잡고

홀짝이며 다시 화분행세를 했다.




그래도 그날 밤,

비행기는 도착했고


무사히 룩소르로 떠났으며



대기시간보다도

더 짧게 비행해

<룩소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룩소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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