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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A Apr 22. 2022

꿈일기-내가 죽는 꿈2

업보와 괴물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원한이 너무 쌓인 탓인지도 몰랐다. 사람에게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자에 물려 죽은 가젤이 너무 많아서, 개구리에게 먹힌 파리가 너무 많은 탓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원한도 쌓인 탓이겠지. 


벌써 업보를 되돌려 받을 시간이 됐나.


곳곳에 괴물이 나타났다. 시골이든 도시든 어디에나 괴물이 있었다. 괴물들은 홀연히 나타나 도심 구석의 공터 같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흐느끼거나 통곡을 하면서 무엇이든 잡아먹었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꾸역꾸역 삼키고나면 괴물은 한동안 통곡을 그쳤다. 잠깐이나마 무언가를 잡아먹지도 않았다. 


의외로 사람들은 괴물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역사를 반복했다. 인신공양. 사람을 바쳤다. 


인권이 중요하다 주장하던 시민단체도 있었지만 이내 침묵했다. 괴물의 흐느낌은 너무 슬펐고 괴물의 외침은 왠지 타당하게 느껴졌다. "내가 업보가 많다. 내가 죄가 많다"며 괴물은 울었다. 먹히는 사람도 슬펐지만 먹는 괴물은 더 슬퍼보였다. "죄가 많은데, 사람을 먹는 죄를 왜 또 짓나요?"라는 물음에도 괴물은 "내가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울었다. 


인신공양 대상은 뇌사자나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 중에서 선택됐다. 다행스럽게도 괴물이 사람을 먹는 것은 그나마 깔끔했다. 큰 입을 벌려 한 번에 삼켰다. 영화와 달랐다. 영화처럼 입안이 시뻘겋고 끈적한 침을 뚝뚝 흘린다거나 끔찍한 이빨이 층층으로 쌓여 있지 않았다. 사람을 붕어빵 먹듯 잘라 먹지도 않았다.


괴물의 입은 오히려 우주로 향하는 통로 같았다. 아주 크고 아주 캄캄했다. 광신도 일부는 괴물의 입이 신에게 가는 길이라며 스스로 잡아먹혔다. 그가 입에서 신을 봤는지, 결국 신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 괴물을 찾아가 먹히는 광신도의 모습은 유튜브 라이브로 방송됐는데 기쁨에 차 있었다.  


괴물은 예비 자살자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극심한 고독에 괴로워한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거라는, 그 누구에게도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외로움과 무력감. 


괴물의 흐느낌은 그들을 위로했다. 괴물은 사람을 삼키면서도 울었다. 삼키고 나서 괴물이 잠잠해지는 것조차 예비 자살자에게는 위로가 됐다. '드디어, 마침내 내가 누군가에게 보탬이 됐구나' 하고.


물론 좋은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괴물은 눈앞에 주어진 사람을 흔적도 없이 삼켰기에 범죄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정부가 괴물이 있는 공터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며 확인했지만 소용없었다. 신체적 특징을 가린 채 공터에 어떻게든 던져 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괴물 주위를 순찰하도록 했지만 이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재수가 없어 괴물이 배고픈 순간 마주치면 먹힐테니까. 경찰이든 군인이든 구급대원이든 괴물 순찰업무만 맡기면 사직서를 내는 탓에 정부도 사실상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소용없기는 순찰로봇도 마찬가지다. 괴물은 어쩐지 순찰로봇도 삼켰다. 


괴물을 가두려고도 시도했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괴물은 마치 유령같았다. 두꺼운 콘크리트벽을 스르르 통과해 다시 주위를 맴돌며 울었다. 


인신공양을 끊으면 괴물은 습격을 했다. 버스나 자동차를 공격했다. 괴물의 공격을 막아낼 수단은 사실상 없었다. 괴물은 총도, 칼도, 수갑도 통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괴물의 몸을 맞출 수 없었다. 무엇이든 연기처럼 통과했다. 괴물은 공격할 수 있었지만 괴물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괴물의 덩치는 아주 컸다. 괴물의 키는 대부분 5층 높이의 꼬마빌딩과 맞먹었다. 코끼리나 하마이기도 했고 거대한 지느러미로 걸어다니는 고래 모양도 있었다. 모양은 천차만별이었지만 거대하다는 게 공통점이었다. 동물모양인데도 괴물이라 부르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데다 인간의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 괴물은 일상이었다. 주기적으로 사람을 먹여 관리해줘야 하는. 동물은 아무리 먹여도 괴물의 허기를 채우지 못했기에 사람만 먹는다는 게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괴물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기에 괴물의 죄는 알 수 없었다. 괴물의 업보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개가 멍멍 짖듯 괴물도 그렇게 짖는 것인지도 몰랐다. 길고양이처럼 괴물도 그렇게 있었다. 


오늘도 괴물이 일상인 하루였다. 엄마와 다투고나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도서관뿐이었다. 나는 모범생으로만 자랐기에 학생이 어디에 갈 수 있는지 몰랐다. 나는 왕따기에 머무를 친구집이 없었다. 나는 가난하게 자라기에 주머니에는 도서관에 오갈 수 있는 버스비뿐이었다. 


바람이 난 아버지,  고된 시집살이로 엄마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엄마의 광기에는 호르몬도 한몫했다. 50줄에 들어선 엄마는 가뜩이나 괴로운 갱년기를 아버지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웃다가 돌연 울었다. 울다가 돌연 화를 냈다. 화를 내다 돌연 자살기도를 했다. 자살기도는 늘 실패했고 그러면 엄마는 한동안 약에 절여져 잠만 잤다. 기운을 차리면 다시 술을 마시고 자식들에게 퍼부어댔다. 


도서관만이 합법적 피난처였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올게요"는 엄마를 멈춰세웠다. 더러 "사람이 덜 됐는데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냐"며 다시 퍼붓기도 했지만 대체로 효과가 좋았다. 내가 갈 곳도, 친구도, 돈도 없다는 걸 알기에 엄마는 도서관에 간다는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다. 아니다. 엄마가 믿는 건 괴물이다. 우리집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항상 엄마는 창가에 서서 내가 몇 번 버스를 타는지, 언제 버스를 타는지 지켜봤다. 


종점인 도서관까지 중간에 내릴 수 있는 곳은 없다. 원래는 종합운동장과 시청사 주차장, 시립도서관 주차장 등을 통과해서 갔지만 이제는 이 곳에 괴물이 살고 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자동차 위에 먼지가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중간에 내가 샐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이 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괴물에게 엄마를 주는 상상을 했다. 괴물의 입에서 엄마는 평화를 얻을까. 


버스는 만원이었다. 배차간격이 길었기에 이 버스를 놓치면 40분은 기다려야 할 터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억지로 사람들 사이로 몸을 구겨넣어 버스 입구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날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엄마의 시선을 문이 막아서는 순간 마음이 턱 놓였다. 이제, 잠깐은, 쉴 수 있어. 팔에 닿는 옆사람의 체온이 따뜻했다. 


따뜻한 체온과 함께 섬유유연제 향기가 풍겼다. 향이 좋아 슬쩍 올려다보니 그 사람이었다. 그는 키가 썩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몸이 다부졌다. 살짝 찢어진 눈과 여드름이 곳곳에 올라온 볼은 늘 장난스러워보였다.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선배든 후배든 스스럼없이 농담도 잘 걸었다. 집도 잘 산다고 했다. 


늘 패기가 넘쳤다. 특히 축구를 할 때 그랬다. 공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불도저같기도 했다. 그 패기가 같잖다고 뒷담화를 했지만 사실 멋있었다. 나도 저런 패기를 가지고 싶었다. 저렇게 당당한 사람이 날 사랑해줬으면 싶었다. 슬쩍 그의 몸에 맞닿은 팔에 힘을 주고 모르는 척 시선을 외면했다.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황량한 운동장. 콘크리트가 군데군데 허물어지기 시작한 주차장.


여느 때와 모든 게 같고 조금 더 좋은 상황이었지만 딱 한 가지가 달랐다. 


괴물이 달려오고 있었다.


괴물은 예전보다 훨씬 고통스러워보였다. 벌거벗은 상반신은 여자였고 하반신은 길다란 뱀이었다. 그런데 뱀의 몸통 중간이 잘려 있었다. 괴물은 벌거벗은 여자의 팔로 잘린 몸통을 끌어안고 온몸을 비틀면서 버스로 돌진했다. 검은 피가 먹처럼 주차장에 스몄다. 


버스도 달리고 있었지만 공기의 흐름은 멈췄다. 사람들의 눈빛이 물었다. 누구를 바칠 것인가. 눈빛은 다급했다. 누가 내릴 것인가. 


괴물과 거리가 좁혀졌다. 이제 괴물의 눈빛까지 보였다. 괴물의 동공은 까맣고 눈빛은 노랬다. 


버스 앞문이 열렸다. 그 순간 불도저같은 손이 나를 밀었다. 뒤로 내가 나뒹구는 찰나에 불도저같은 손은 억지로 버스 문을 닫았고 닫으면서 외쳤다. "계속 달려요". 장난스러운 눈에 장난기는 없었다. 그 눈은 단호하게 다시는 나를 향하지 않았다.


괴물과 거리는 불과 3m. 숨을 곳은 없었다. 저 멀리 먼지가 덩어리져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마치 사막같네. 저기에 숨을 수는 없겠지. 


이제 괴물은 내 앞에 섰다. 괴물은 검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잘린 몸통에서도 검은 피가 줄줄 흘렀다. 잘린 몸통을 안은 팔은 힘에 부쳐 보였다. 


괴물은 울었다. "내가 한이 많아서... 내가 업보가 많아서..." 


괴물이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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