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쓸모없는 교양수업 『21세기 진화론』 의 9장 <날개학>에선 인간에게 처음으로 날개가 돋아나게 된 A국가의 q의 사례를 이렇게 표현했다.
-현존하는 과학으로 개인날개를 만들어 비행하려던 시도가 발생하곤 했지만 육신만으로 하늘을 새처럼 비행하려 하던 실험들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은 날개를 만들어 감히 하늘을 욕심내었던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 일화처럼 날개에 대한 실험들은 인간에겐 현존하는 것보다 더한 욕심을 부리면 자멸할 수 있다는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인류의 진화와 함께 날개가 자라났다. 마침내 찾아온 인간의 승리일까. 신이 내리는 자만의 벌로 인간이 종멸할 패배의 기반일까.-
『21세기 진화론』 속 사례에서 희귀병으로 치부했었던 날개가 그 책을 읽고 있는 이들에겐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처음엔 몇 명, 그다음엔 몇십 명 그다음엔 몇 백 명. 전 세계에서 일어난 극소수의 해프닝으로 치부했을 당시엔 대다수의 사람들은 날개가 돋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점점 수가 늘어나며 미국에서 큐의 사례를 처음으로 보도했을 당시엔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 혹은 천사의 날개처럼 신의 가호를 받는 선택받은 자들이라니 말이 많았지만 소수에서 다수의 사례로 변화되며 천사의 날개,라는 호칭은 사라졌다.
날개는 더 이상 희귀한 것이 아니었고 신의 가호도 아니었으며 그저 또 하나의 진화수단처럼 여겨졌다. 왜라는 물음에 대해 여러 가설들이 괴담처럼 불분명한 출처 속에서 돌아다녀 혼란을 가져왔지만 인류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라는 가장 그럴싸한 가설이 공식발표로 이어지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수한 시간이 흘렀고 인류 전체의 등에 날개가 돋아있는 게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날개가 돋아나지 않는 이들이 이상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날갯죽지 위로 돋아난 사람의 날개는 다른 동물들의 그것과는 달리 쓸모없는 존재였다. 비행을 위한 수단도 아니었고 화려하고 큰 공작의 날개처럼 상대방에게 존재를 알리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위험할 때 몸을 보호할 수 있을 만한 방패 같은 역할도 아니었다. 쓸모없어도 이렇게 쓸모가 없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날개는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등에 돋은 날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다른 동물들에게 해당되는 날개의 모든 역할들은 인간에게선 모두 쓸모없는 기능이 되어버렸으니까. 이제 사람들에게 날개는 그냥 돋아나있기에 달고 다니는 것뿐 불필요한 존재에 불과했다.
날개에도 근육이 존재하긴 했지만 자유자재로 컨트롤이 가능한 신체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나마 운동군 쪽에 속한 이들은 날개의 근육을 미약하게라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사실상 그냥 큰 짐덩이에 불과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체감 무게는 평균 10kg 정도였으니까.
큐의 사례처럼 날개는 성장기를 거치면서 2차 성징과 함께 찾아오는 100일가량의 성장통 이후 돋아났다. 날갯죽지 쪽에서 느껴지는 뻐근함이 1차 증상이었고, 그 후 스물네 시간 이내에 근육 뒤틀림이 동반되면 거의 70% 가능성으로 엔젤윙 신드롬이 발현된다고 봐야 했다. 실제로 무리해서 근육이 놀랐을지도 모르기에 섣부른 가능성을 닫아두기로 했으나, 첫 통증 이후 일주일 정도 피부의 화끈거림과 근육이 파열되는 듯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수 회 찾아오면 100%라고 봐야 했다.
날개가 돋아나는 과정은 특정 종교를 믿더라도 신성한 것이라고 볼 순 없었다. 극심한 고통이 동반되었고, 그렇다고 그 고통을 감내한다고 한 들 경지에 오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해서, 자만의 벌로 받는 후손들의 고통이라는 종말론 학자들의 발언에 힘이 더 실렸다.
성년을 기점으로 제각각 완전한 날개의 크기나 색이 결정되었다. 대부분 날개가 자라면서 점점 본인의 피부톤과는 다른 색으로 변하였다. 멀리서 보면 그이의 등에 날개가 달렸음을 인식할 수 있을만한 정도의 톤 차이로 보였다. 그것이 자외선 때문인지, 멜라닌색소의 이상작용인지, 인류의 진화와 관련이 있는 건지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은 아무도 발견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날개는 쓸모가 없었으니까. 무겁기만 한 짐덩이에 사람들은 날개의 무게가 자신의 삶의 무게와도 같다며 농담을 하곤 했다. 자신의 삶에 책임감과 무게감이 정말로 느껴진다면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테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21세기 진화론』의 공동저자 한 명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류의 마지막 보루는 날개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감할 가치가 없는 말이라고 여겼다. 실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날개가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니. 거창하기만 한 번지르르한 말에 속는 이들이 없는 시대였기에 그 말은 시류에 휩쓸리지 못하고 그대로 떠밀려나 버렸다. 그렇기에 그는 역사엔 이름을 남기지 못한 학자가 되고 말았다.
날개. 그것은 이제 누구에게나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날개가 돋아난 초기엔 인류의 무엇을 위해 날개가 생긴 걸까,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날개는 왜, 어떻게, 어떤 기능을 하기에 등에서 돋아나게 된 걸까. 각국에서 모인 연구진들은 인류의 진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가설을 기반으로 연구를 시작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날개의 존재가 방사능으로 인한 돌연변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방사능 때문이라는 가설이 나오자마자 연구와 날개를 포기했다. 삶의 의욕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차피 돌연변이라면 개척해서 도움 될 게 없다는 결론엔 인류 모두가 동의했다. 『21세기 진화론』에서 다룬 방사능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 중 하나가 현실로 닥쳤음을 인정했기에 받아들인 우울한 결말.
인류 모두가 동의한 딱 하나의 의견은 “날개는 쓸모가 없다”였다. 이제는 방사능에도 면역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였지만 진화가 아니라 퇴화 쪽에 가까워진 날개의 존재이유는 인류에겐 치욕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