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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케lykke Sep 13. 2023

종합 우울증 세트

생각이 계속 멀리 나가게 되면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잊어버리고 혼자 내린 결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해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따라서 자기 생각의 흐름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훈련하고, 불필요한 생각을 끊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게 뭐라고 자꾸 신경 쓰일까 - 차희연 저] 중에서-


우울증은 왜 이리도 오래 가는지. 신혼 때 오는 남편과의 기 싸움 같은 것들이 스트레스였고 그것 때문에 날카로워진 내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 우울해졌다. 결혼이란 것만으로도 굉 장 히 큰 변 화 였 는 데 , 특 히 근 3 0 년 간 살 았 던 곳을 떠나(심지어 22년째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니 주거에 대한 변화가 굉장히 컸다) 전혀 연고도 없는 곳에서 적응하고 살아야 했기에, 나는 언제나 외로웠고 또 괴로웠다.


게다가 임신으로 오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는 나를 더욱 견디기 힘들게 했는데, 그것은 극심한 우울증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남편도 친구도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아니,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다 생각했다. 나는 누구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야 하는 것일까?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내 얘기는 그저 배부른 소리하는 아줌마의 하소연일 뿐이고,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삶의 변화에 적응하느라 이리저리 정신이 없었다. 나는 온전히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뱃속의 아이는 점점 자랐고 나는 이 아이를 온전히 잘 키울 수 있을까? 출산의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까? 매일같이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붙들고 살았다.


이렇게 산전 우울증을 견디며 힘들게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의 긴 출장으로 인해 꽤 오랫동안 혼자 아이를 키웠다. 요즘은 친정에서 도움을 많이 받는 모양이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내 연고가 없는, 친정과 2시간이 넘게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으므로 산후조리기간 이후부터 완전히 혼자 아이를 키웠다.


처음 아이를 키우면 엄마들은 늘 불안하다. 내가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지, 혹시 새벽에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걱정이다. 게다가 잠은 잠대로 못 잤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넘기 힘든 산이었는지. 신생아를 혼자 키우는 것은 하루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한 달 아니 기약 없이 일하는 기분이다.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어디 스트레스 풀 곳도 없었다. 그냥 아이를 보는 거. 그게 내 삶의 전부가 된다.


그렇게 집에만 처박혀 아이를 보다 보면 점점 더 우울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 내 밥 한 끼 마음 편히 먹기 힘들고 세수는커녕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조심스레 침대에 눕혀 놓고 살금살금 나와 화장실 변기에 앉았는데 “으앙-”, 부지기수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보면서 참으면 되지.”, “아이 얼굴만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니?” 라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 때문에 내가 지금 힘들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될 뿐이다. 이렇게 육아가 힘든 와중에 시댁과 문제가 생기고 남편과 자주 다투게 되면 파도가 덮친 모래성처럼 와르르, 금세 무너져버린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생을 달리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미쳤다.’고만 했었다. 그런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딱 내가 그렇게 죽고 싶었다. 아이를 놔두고 죽기엔 아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눈에 보여서 차라리 같이 죽어버릴까 생각하기도 했고, 나만 없어지면 이 모든 게 해결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날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하루하루 버티는 인생. 그러다 문득,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작고 가녀린 아이, 세상에서 ‘엄마’가 전부일 이 아이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 료 를 할 수 있 는 방 법 을 찾아보았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녀보려고도 했으나 어차피 처방받은 약을 먹을 때 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심리치료를 받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돈이 만만치 않게 들기도 하고, 한번 가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몇 개월씩 장기적으로 다녀야 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우울증에 관한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워 보려 노력했다. 책과 동영상강의로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이것저것 독학을 했다. 일본어, 홈 베이킹, 재봉틀 등등. 물론 이런 일들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진 않다. 그냥 아주 천천히 조금씩 괜찮아진다. 더 악화되지 않으려고 붙잡는 실 날 같은 동아줄이랄까. 병원치료도 두렵고 심리치료도 경제적 부담이 된다면 뭔가 새로운 걸 배우는 시도를 해보길 바란다. 물론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이것저것 돈이 들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평소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다. 그리고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친한 친구에게나 아니면 인터넷 카페에라도 글을 올려 누군가의 조언이라든지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햇빛이 쨍 하고 바람이 선선할 때 밖에서 걸어보는 것 또한 우울감을 해소하는데 좋다. 이것저것 다 해보자. 내 마음이 조금은 쉴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보자. 


이 끝없는 늪에서 절대 나를 쉬이 놓아버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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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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