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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케lykke Sep 17. 2023

앵거 매니지먼트를 하라고?

봉제 인형을 준비해서 마음껏 팬다! 고함을 지르면서 종이를 찢는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어떤가? 마음속에 쌓여있던 초조함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초조함을 다루는 것을 ‘앵거 매니지먼트’라고 한다.

- [여자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중에서-


어릴 때 '짱구는 못 말려'란 만화에서 이런 엄마를 본 적이 있다. 짱구 친구 유리의 엄마는 자신의 화를 주체 못 할 때마다 봉제 인형을 두들겨 패며 화를 풀었다. 물론 유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이 만화를 보면서 웃기는 엄마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유리 엄마는 현명한 사람이었구나!


내 아이가 2살 때쯤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내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차근차근 설명해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멋대로 하는 아이에게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그때 갑자기 이 현명했던(현명한 방법인 줄은 몰랐지만)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곰돌이 인형에게 주먹을 마구 날렸다. 잠깐 그러고 나니 속에 꽉 찼던 뜨거운 화가 내 몸에서 순식간에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후련했다. 이 방법은 화가 날 때 마음을 재빠르게 진정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매번 이 방법을 계속해서 쓸 필요는 없다. 나의 경험상, 가끔 이 방법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를 다스리는 능력이 높아지게 되고, 더는 봉제 인형에게 화풀이하지 않고 그저 방에 들어가 잠시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진다. 나는 최대한 아이에게 감정적인 화풀이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가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지금 너무 화가 나. 방으로 가서 잠시 있다 나올게." 아이가 어릴 때는 울면서 따라 들어와서 억지로 떼 놓았지만, 이제는 아이도 그런 나만의 시간을 받아들인다.


내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무서운 엄마였다. 굳이 그만큼 혼이 나지 않았어도 되는 상황인 것 같은데 나는 많이 혼이 났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나는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 그 시절엔 열쇠를 관리실에 맡기기도 했던 때라 열쇠에는 아파트 동 호수가 적혀 있었다. 그러니 열쇠를 찾은 사람이 집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 걱정된 엄마는 나에게 얼마나 불같은 화를 냈는지 모른다. 한참을 그렇게 혼이 나고 눈물을 쏙 빼고 난 후, 전날 입었던 내 옷을 정리하고 있는데 바지 속에 열쇠가 있는 게 아닌가! 맞을 거 다 맞고, 흘릴 눈물 다 흘리고 나서 찾은 열쇠는. 아... 생각만 해도 억울한 일이다. 물론 열쇠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잃어버렸다고 한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같이 제대로 찾아보고 어디 두고 온 것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무작정 아이를 잡는 것은 안 그래도 화나는 일이 있었는데 너까지 짜증 나게 만드냐는 마음으로 분풀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난다면 우선 심호흡하고 한 템포 늦게 반응해보자.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분노를 가라앉혀보자. 너무너무 화가 나서 이 상태로 아이를 대했다간 폭발하겠다 싶다면 잠시 자리를 피하자. '앵거 매니지먼트'를 해보자. 오늘도 엄마 이야기를 했다. 내 경험을 쓰려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엄마는 기억도 하지 못할 일을 20년이 더 지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아신다면 마음 아파하실 것 같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 후회하시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그랬다-고오?" 라고 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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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거매니지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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