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 오랜만에 훌훌 여행을 떠나던 날 , 공항 출국장에서 나는 한 가족을 보았다. 엄마는 7살쯤 되어 보이는 첫째 딸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힘주어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나, 너 싫어!”
아이는 주눅이 든 모습으로 엄마를 쳐다봤고, 남편은 둘째 아이가 눕혀진 유모차 옆에서 아내와 아이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 좋은 가족여행이었을 그들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내 아이는 아니지만, 마음이 아팠다. 아이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나는 말을 뱉었다. 그리고 그 말은 아이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을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렇게 툭 뱉은 말은 엄마의 부정적 감정의 해소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 아이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10년 뒤에 20년 뒤에, 나는 기억도 못할 그런 일들을 아이는 가슴속에 켜켜이 쌓아두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 친정엄마가 그랬다. 밖에서 일하고 들어와서 집이 엉망이면 처음엔 참는듯하다가 점점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나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 섞인 말들은 언제나 나에게 화살이 되어 가슴 속에 깊히 박혔다. 언제는 나를 한없이 사랑한다더니 또 언제는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 언제는 우리 집 공주라더니 또 언제는 네가 공주냐고 타박을 하던 엄마. 이랬다저랬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 점점 내 생각도 굳어지게 되었다.
‘아, 우리 엄마는 정말 나를 싫어하는구나.’
지금에 와서는 엄마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상처들을 치유하며 살지만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는 늘 엄마가 무서웠고 내가 엄마의 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최대한 상처 주는 말을 뱉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감정 해소는 결국 아이에겐 상처일 뿐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아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가끔은 나도 울컥, 툭. 말을 뱉어버릴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또 미안함, 죄책감. 하지만 내가 나의 엄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아이에게 사과한다는 것이다. 눈을 똑바로 맞추면서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왜 화를 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리고 그 말이 너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정말 정말 미안하다고. 물론 이런 사과도 반복되면 결국 사과가 아닌게 된다는 걸 앞서도 누차 말하지 않던가(반복의 힘!). 그러니 사과할 일(갑자기 소리치거나 상처 주는 말을 뱉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 아이가 상처받는 것이 기분 좋은 부모는 없다. 그러니 화를 내기 전에 무조건,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아이의 지금 행동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맞는 것인지 차근차근 말해주자. 그렇게 말하면 듣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다. 아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아이와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보며 진심으로 힘주어(목소리가 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해 보자. 한번, 두 번 언젠가는 아이도 엄마 아빠의 진심을 안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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