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의 치과 치료를 위해 대도시로 간다. 치과라는 곳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없애 주려고 어린이
치과를 찾아봤는데, 이 작은 도시엔 어린이 치과가 없기 때문(당시엔)이다. 집에서 대도시의 어린이 치과에 가려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2시간을 넘게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그런 불편함 정도는 괜찮다는 듯 불평 없이 따라 나선 아이는 치과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첫 치과진료를 받았고, 40분이 넘게 걸린 치료를 생각보다 잘 견뎌주었다. 오히려 치과는 재미있는 곳이라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작년 여름, 세심하고 꼼꼼한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면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앞니가 조금 불편하다는 아이를 데리고 별생각 없이 동네 치과에 갔다.
의사는 유치인 앞니는 어차피 곧 뽑아야 하는 거고 아이가 불편해하니 그냥 지금 뽑자고 말했다. 그때 나는 의사에게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많이 흔들리지 않는데 괜찮을까요?"
라든지
"지금 뽑아도 영구치가 곧 나오나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의사가 잘 알 거란 생각에(잘 알긴 하겠지)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그저 ‘네.’라 대답했다. 의사는 거의 흔들리지도 않는 앞니에 마취약을 앞쪽에만 소량 바른 후 곧바로 온 힘을 다해
강제적으로 뽑아버렸다. 한 번에 뽑히지 않아 여러 번 힘을 주면서까지 말이다. 순간 나도 아이도 너무 놀랐다. 아이는 엄청난 고통에 온몸이 경직되었고, 그 고통을 참으려 주먹을 있는 힘껏 꽉 쥐었다. 그리고는 다물지 못하는 작은 입을 벌린 채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고 그저 아이의 고통이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빌었다. 지옥 같던 그 시간을 아이는 지금도 이렇게 표현한다.
"온몸이 깨지는 것 같았어."
그 후로는 상당히 많이 흔들려 건드리기만 해도 빠질 유치를 뽑을 때도 예전에 다니던 치과로 간다. 물론 겁을
잔뜩 먹고 울어버리는 아이를 보는 것은 덤이다. 아이는 앞니는 이를 뽑은 후 1년이 지나서야 내려오기 시작했다. 앞니가 내려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원래의 치과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는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래서 내가 아이에게 어떤 고통을 줬는지, 괴로운 마음이 들어 한동안 힘들었다. 유치 빠지는 순서를 꼼꼼하게 잘 알고 있었다면, 귀찮아하지 말고 애초에 제대로 살펴 봐주는 병원을 갔더라면, 앞니가 어떻게 불편한지 아이에게 좀 더 자세히 물어봤더라면 그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어야 했는데. 물론 무턱대고 뽑아버린 의사의 잘못도 있겠지만 그건 어차피 따져봐야 별 소득도 없는 일이다. 의학적 소견 운운하면서 보호자 동의를 받았다고 말할 테니 말이다. 한참이나 빠져있는 아이의 비어있는 앞니 자리를 보고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칼슘이 부족한 거 아니니?"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병원을 찾았던 것이든, 진짜 칼슘이 부족한 것이든 어쨌든 내 탓이다. 무지한 내 탓. 무 지함의대가는 상당히 고통스럽고, 생각보다 오래간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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