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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Jan 05. 2024

룸바 레슨

댄스스포츠를 입문할 때 왈츠다음으로 배우는 춤이 룸바였다.  왈츠에서 모던댄스 5 종목이 시작되듯 라틴 5 종목 동작원리들이 룸바에 함축되어 있다. 무도회에서 왈츠만큼 많이 추는 룸바는 느린 차차차와 비슷해서 한 종목을 배우는 것으로도 두종목을 섭렵한 셈이다. 팬, 하키스틱, 알레마나, 힙트위스트, 언더암턴, 뉴욕, 스폿턴, 쿠카라차등이 공통 피겨이다. 무도회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명칭과 동작을 잘 기억해야 한다. 피겨이름에서 암시하는 의미와 연결동작까지 이해하는 것이 댄스기량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초보자는 브론즈라고 이름 붙인 통합루틴만 배워도 파티에서 춤을 즐길 수 있다. 넓은 공간을 요하지 않을뿐더러 모던종목처럼 홀딩할 일도 거의 없으므로 각자 자신의 동작에 충실하면 족하다. 물론 리드를 남성이 하지만 왈츠 탱고 슬로폭스 퀵스텝처럼 남녀의 컨택을 통한 리드와 플로어에서 LOD(line of dance) 방향의 운전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 라틴종목이 쉬워 보이기도 하지만 오래될수록 모던과 라틴은 다른 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라틴만 전문으로 하는 학원을 따로 다니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루틴대로 추면 획일적 이어서 지루할 수 있다. 난도 높은 동작들도 익혀, 남성의 리드에 맞출 정도면 라틴댄스의 독특한 맛을 즐기게 된다. 중상급 고난도의 피겨에 매혹되지만 조화로운 커플댄스는 일정 수준의 기량이 서로 필요하다. 음악을 잘 들을 수 있어 리듬을 타면 저절로 춤이 되고 펜듈럼과 로테이션까지 익숙해지면 제법 무드(Mood)를 표현할 수 있다.

 여성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리드하는 것이 남성의 몫이다. 동작을 익히는데 꽤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파티를 적당히 즐기게 된 이후에는 레슨과 연습도 게을리했다. 무도회 때 체인징파트너를 하더라도 고난도 피겨는 사용빈도도 적고 2,3분 이내에 춤곡이 끝난다. 여러 면에서 민감한 것이 춤인지라 자존심마저 상하고 싶지 않아 체인징하기를 기피하는 분도 왕왕 있다. 굳이 폼도 내기 어려운 라틴보다는 우아하지만 끝 모를 모던종목에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3년여 동안 파티도 중단되었다. 그나마 익숙했던 피겨들마저 잊었다. 

 다시 열린 파티에서 동작이 긴가민가하고 루틴은 다 잊었다. 공백기간을 메우려 레슨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황당한 죽음들을 보아서인가? 부부가 함께 배우는 댄스에도 마음이 넉넉해지고 건강을 위해서도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댄스는 파트너와 함께 기량이 발전해야 호흡이 잘 맞는다. 아내는 바른 체중이동과 360도 회전하는 스파이럴을 어려워한다. 4/4박자인데 3개의 동작을 하는 룸바에서 박자를 놓치기 일쑤다. 엇박자이기도 하고 현란한 손놀림은 쉽지 않다. 라틴종목을 그저 흥겨운 춤으로만 여기는 편이다. 반대로 여성은 곡선의 손놀림과 신체의 유연함을 표현하는 라틴종목을 선호하지 않을까? 아마 각자의 취향차이일 것 같다.

 부부가 함께 레슨 받기는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다. 춤은 남자만 잘 추면 된다는 오래된 믿음 때문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여성은 루틴을 모르는 편이 낫다고도 하지 않는가. 남성의 리드에 따르는 춤의 원리를 망각하게 하기도 해서 자연스러운 춤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여성이나마 제대로 동작의 원리를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동작의 이름조차 외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올바른 동작이라도 여성이 리드를 주도하려 하면 커플댄스는 망가지고 만다. 그런 오해와 박자를 못 듣는다고 힐난을 듣는 남성의 불쾌한 기분을 아마 여성들은 모르는 척할 뿐이다.

 연습 없는 일주일 사이 레슨의 기억은 희미해진다. 남성에게 파트너의 체념과 푸념을 견디는 일은 순교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개인레슨까지 받는 터에 아내와 다투기도 포기한 지 오래다. 클럽의 한 남성 분은 레슨은 받지 않겠노라고 선언한 이도 있다. 요구사항을 감수하며 리드하자니 강사 못지않게 정확해야 한다. 한 때 춤 연구위원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였으니 파트너의 춤을 도울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빠른 리더여야 한다.

 프로암이라는 방식으로 강사와 시범공연을 하는 경우들이 유행이다. 부부강사와 각각 프로암을 연습한 뒤에 부부가 같은 공연을 하는 방식도 보았다. 부부가 티격태격할 일이 없지 않은가 전문가들과 한 연습이니 군말이 필요 없다. 흠이라면 레슨비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거금의 레슨비는 다투지 않은 대가였다. 역으로 부부가 다투어가며 소기의 공연을 해낸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도 싶었다. 춤추며 다투기도 해봐야 한다. 고뇌 없이 춤을 추어서야 기억에 남을 애틋함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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