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한탄강으로 향한다. DMZ를 서에서 동으로 구간별로 해설을 맡은 일행분들과 워크숍을 하는 날이다. 생명 생태 평화를 기치로 기후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걷기 모임이다. 해설단 단장으로부터 인문해설의 전형을 보고 배운다. 수직절벽인 양안을 잇는 은하수교를 건너며 송대소를 내려다본다. 크고 맑은 여울이란 뜻을 가진 한탄강이다. 멀리 여울이 흰 거품을 보이는가 하더니 사행천 강물의 흐름이 약해져 멈춰버린 넓은 소(沼)를 만난다.
절벽아래쪽에 비를 피할 만큼의 동굴 같은 공간들이 하식동굴이다. 흑운모같이 풍화되기 쉬운 바위를 떨구어 낸 자리이다. 강원 산간에서도 철원평야는 드넓다. 낮은 곳을 흐르던 물은 강을 만들었고 강물의 침식이 일어난 곳에 40m 수직절벽이 되었다. 한탄강 중앙에 설치된 물윗길로 들어섰다. 물윗길은 강의 중앙에 플라스틱통을 촘촘히 묶어 통행할 수 있다. 주상절리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기에 물윗길이 제격이다.
수십만 년 전 용암이 대지를 두껍게 덮었다. 절벽의 가로로 만들어진 선은 54만 48만 12만 년 전 세 차례에 걸쳐 용암이 용출되거나 분화된 흔적을 간직하고있다. 해발 454m인 오리산에서 용암이 분출되었다. 점도가 낮은 용암은 물기 많은 곤죽으로 120km를 서쪽으로 내달렸다.
육각형 구조의 세로로 늘비한 주상절리의 현무암들이 침식으로 떨어져 나가며 깊은 협곡을 만들었다. 일단 시작된 용암은 표면과 바닥부터 식으면서 두툼한 주상을 만들고 그 사이의 용암은 뒤틀리거나 부채꼴 같은 다양한 형상을 만들었는데 그 과정이 한 세트로 이루어진다. 협곡을 수십만 년 흐르던 강물은 바닥에 있던 기반 화강암을 드러낼 만큼 세월을 깎아냈다. 그러고도 또 십수만 년에 새로 흐른 용암이 식고 깎여 가느다란 횡선의 층을 남겼다. 연필로 그은듯한 가로선 한 줄에 상상하기 힘든 축적의 시간이 있었다. 지구의 나이 46억 년에 비하면 짧은 순간이라지만 겁(劫) 세월을 유추하는 지질학자의 탐구정신이 놀랍다.
순담계곡부터 아래쪽 드르니센터까지 3.6km는 잔도길이 절벽 허리춤에 매달렸다.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 120도 방향으로 갈라진 주상절리의 흔적은 수십만 년 사이의 역사를 일순간 보여준다. 마그마가 식어 굳어버린 화강암이 화성암으로서 기반암이다. 깎여 바닥이 드러나기까지 기다린 위대한 자연은 비로소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큰 물의 흐름 속에서 화강암 바위덩이 위 작은 구멍이 패인 곳에 자갈이 들어와 회오리치며, 돌개구멍을 만들더니 움푹한 항아리바위도 만들었다. 영겁의 시간과 공간을 담은 유려한 곡선의 화강암은 예술 그 자체였다.
용암이 흘러 대지를 평평하게 덮은 철원평야는 한계를 넘은 수압을 못 이겼는지 표층을 뚫고 샘이 분출하는 곳이 많다. 샘통농장에서는 용출수로 고추냉이 재배와 송어양식에 활용하고 있었다. 현무암 사이로 용출되는 샘들이 고추냉이를 LED조명 아래 자라게 했고 맑은 물 송어로 최고의 식탁이 되었다. 두루미와 철새들이 자유롭게 비행하는 풍광을 바라보는 점심식사도 즐겁다.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해가 지기 전에 민통선 후방으로 철수하는 농장주는 일찌감치 스마트팜을 활용하고 있었다. 비무장지대임을 잠시 잊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고석정을 보고 현무암이 아닌 화강암인 줄을 안다. 구별할 수 있고 처음으로 바위를 이해할 수 있어 기뻤다.
16세기초 명종 재위기간에 의적 임꺽정이 머물던 고석정은 임진왜란의 전조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5백 년 전 역사를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바위처럼 고석(孤石)이 한탄강 가운데에서 강바닥을 깔고 누운 화강암들과 다르게 외롭게 섰다. 용암 대지에서 침식된 현무암들도 다 깎여 보낸 세월을 홀로 지키는 듯 기상이 우뚝했다. 화강암의 꼭대기에 소나무 몇 그루가 한겨울임에도 늘 푸른 모습으로 보기에도 의연했다.
한탄강은 주상절리의 명소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주상절리와 다르게 강에서 만나는 희귀한 지질학적 유산이다. 철원의 명소 한탄강의 지질 답사를 통해 DMZ해설단원으로서 아름다운 유산을 지켜야 할 사명을 가슴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