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해제 후 처음 열린 쿠킹클래스에 아내를 따라왔다. 세월이 취향을 바꾸게도 하는가. 예전처럼 점심 따로 먹겠다고 뻗대며 안 갈 일도 아니었다. 홀로서기도 되겠고 한두 가지 나만의 레시피를 갖고 싶던 터였다. 아내에게 한 가지 요리라도 배워보려 한 적도 있었지만, 부엌에서 가로거치기만 한다며 핀잔들은 일로 요리할 생각은 접고 속마음으로는 설거지만 맡기로 했다.
요리강습을 듣는 곳은 오래전 초음파세척기와 전기안마기를 구입했던 그 회사다. 두 기계 모두 사용하지 않는 과거의 일이지만, 섭섭할 일도 아니었다. 요리를 지도하는 분의 유머와 말솜씨가 일품이었다. 20여 명 식객의 마음부터 벌써 읽었다. "친구 따라 처음 오셨더라도 '친구가 회원이면 나도 회원'이라는 마음가지시라"라는 말머리가 13년간 운영된 요리교실의 비결이었다. 손님 중에는 다단계 또는 피라미드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면서, 둘러보고 마음에 들어 구입하면 자동 회원이 된다고 한다. 경상도 진주 사투리로 '제품을 사라 하면 우짜지? 그런 생각하면 밥 체한다고 웃기기도 했다. 제품 구입하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넉넉하고 호방함에 안도가 되었다.
철갑상어의 알인 캐비어를 넣어 만든 주먹밥은 검은깨가 박힌 것 같았다. 작은 캐비어 한 캔(can)에도 수백만 원씩 한다니 갓 지은 밥에 캐비어와 참기름을 섞는 데 검은색 금덩어리 밥으로 보였다. 철갑상어에 얽힌 이야기와 비싼 이유를 듣다 보면 캐비어로 만들었다는 화장품값은 비쌀 만도 했다.생새우는 밀가루가 조금 담긴 비닐봉지에 넣고 흔드니 바로 튀김옷이 입혀졌다. 숙달된 요리과정을 눈앞에서 보며 감탄하는 데 도우미들이 민첩하다. 방금 선보인 요리들을 차례로 서빙해 주었다. 대여섯 가지 요리와 디저트까지, 나누어 준 레시피대로 하면 최고의 요리를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느긋한 식사사이사이에 듣는 이야기까지 재미를 만끽한 고객은 지갑을 털려도 좋을 만큼 흐뭇해진 것일까? 라운지에서 바리스타의 커피까지 마시다 보면 구매까지 연결되는 데 이만한 전략이 따로 없었다. 잘 먹고 대접까지 받은 터에 어지간하면 구입하게 되나 보다. 사람들이 합리적인 구매패턴을 따르는 게 아니라고 하는 구매심리에 대한 논문을 안 읽어도 알만했다.
코로나19로 3년간 요리강습도 못 열던 엄혹한 때, 실험실에서는 화장품에캐비어를 넣었다. 주름 제거와 탄력 있는 리프팅 효과가 고급화 전략과 입소문으로 먹혔나 보다. '가히'라는 브랜드로 3천억 매출을 올렸다.아미노산을 함유한 사프란 오일은 식물성인데 피부 세포가 받아주는 효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캐비어 성분을 피부세포가 잘 받아들여 효과가 빠르고 가격이 센가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화장품을 홍보하려 만든 '캐비어 넣은 주먹밥'을 맛보는 즐거움이 컸다. 비싼 캐비어를 듬뿍 넣으라는 회장의 말도 전하면서 사이비 캐비어도 조심하란다. 가공하거나 염장한 생선의 알은 캐비어(caviar)니까 날치알 염색해서 캐비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한다. 주황색 연어의 알은 레드 캐비어(red caviar)이기도 했다.
영업전략 중 우선 고객을 배부르게 만들어놓고 물건을 파는 게 최고의 전략인 것 같다. 스웨덴의 DIY(Do it yourself) 가구업체 이케아의 핫도그에 대한 기억처럼, 요리강습을 겸한 식사초대 영업방식은 탁월했다. 하루 두 차례 강습시간을 가질 정도로 예약이 많아 스케줄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 제품 상담과 영업이 자연스러워 보이니 설립자겸 회장은 '영업의 신'으로 통할만했다.
레시피에 적힌 재료들과 순서를 읽다 보니 식사도 끝났다.캐비어의 맛은 잘 모르지만 음식에 금가루를 뿌리는 일처럼 이미지가 주는 상징적인 효과를 코스요리에 담아내는 것도 배웠다. 꼭 캐비어 주먹밥은 아니더라도 더 늦지 않게 나만의 레시피 하나는 만들어 선보이고 싶다. 간수를 뺀 귀한 천연 소금을 선물로 퍼담아주었다. 두부구이에 간장대신 소금을 써보라고도 했다. 얼마 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소금파동 때 진즉부터 준비해 왔던 천연소금은 얼마나 인기 있었을지 궁금해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였다. 우선 선물 받은 천연소금으로 두부구이를 만드는 것쯤은 당장 해낼 수 있다. 실행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