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녘 연필소리 Apr 01. 2024

<일인칭 단수>, 2021

이름의 힘에 대하여

[일인칭 단수-무라카미 하루키] 이름의 힘에 대하여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김춘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한창 심취하던 시절에 이 작품을 썼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소중한 이름을 내려 적었고, 그 중에 릴케의 이름도 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찼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하략)


-윤동주



언어가 갖는 힘은 그 이유를 나열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게, 매우 크다. 그 중에서도 이름은 파괴적일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어떤 방식으로 부르고, 어떤 마음을 담아 그렇게 부르느냐는 누군가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고, 관계가 나아갈 방향성과 지향점에 대한 소망을 내포한다. 그래서 발에 치일만큼 흔하디 흔한 평범한 이름도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를 갖는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엇이 되기도 하고, 잊지 못해 가슴이 아리게 하는 주문이 되기도 하며, 떠올리기만 해도 증오가 들끓어 오르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일인칭단수 시점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나'로 표현되어 누군가가 부르지 않는 이상 '나'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고, 따라서 '나'가 '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스스로가 스스로와 맺는 관계성의 양상은 드러나지 않지만, '나'가 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 혹은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있어 존재 의미가 있는 누군가와 어떤 감정 상태 아래 묶여 있는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명백하게 드러낸다. 인생은 나와 타인이 맺는 관계성과 타인이 나를 어떻게 부르고 기억하는지에 따라 의미를 부여 받기도 하고, 그 가치가 지배 당하거나 '상실'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아를 위해 관계와 시선에 맞서 싸우기도 해야 하는 과정이다. '나'가 맺는 관계와 관계를 둘러싼 사건들은 이런 투쟁의 과정을 거쳐 한낱 일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지향점이 아로새겨진 '인생'의 이름을 얻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수많은 일인칭 단수들이 그리고 있는 거대한 포물선들이 교차하고 모여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기묘한 일화가 진화한 결과다. 기묘한 일화의 주인공은 일인칭 단수, '나'다. 동시에 이 이상한 일화는 수많은 익명의 '나'가 겪는 보편적인 일상이다. 하루키의 기묘하고 난해한 짧은 단편들이 곱씹을수록 여러 번 읽을수록 위로가 되는 것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나'의 인생이 기이하고, 때로는 박복하지만 결국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들이고, 물론 그 방법이 늘 권장할 만한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랬듯이 결국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해낼 수 있다는 힌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나'는 창백한 얼굴로 옅은 시냇가 위를 떠내려가 버린 어린 시인 한스의 안타까운 인생과 사랑처럼, 굴러가는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버리고 말 수도 있다. 용기가 없어 '나'가 소중한 그대에게서 어떻게 불리웁고 싶은지 숨겨버릴 수도 있다. 내 인생이 그 관계 안에서 지배 당하고 상실되어도 숨죽여 운명에 복종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운명의 수레바퀴 너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용기 내어 소중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될 수도 있다. 포물선의 교차점 안에서 운명을 넘어 포물선이 함께 나아갈 방향을 향해 핸들을 꺾을 수도 있다.


숙명을 뛰어넘는 '선택'을 해내는 사람의 인생은 위대한 것일까. 아니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수많은 '나'의 기묘한 일화 중에 하나일까. 마음 속에 중심이 여러 개가 있고 둘레가 없는 원을 떠올린다. 의지가 있다면, 희망을 품고 있다면, 언젠가 그 원이 어떤 모양인지 깨달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크림을 얻을지도 모른다. '나'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이름을 잃지 않는다면, 언제가 한평생 되고팠던 꽃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꽃이 될 것이다.


2020. 11. 쓰고, 2024. 3. 다시 쓰다.


                    

이전 08화 <기사단장 죽이기>, 201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