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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Apr 02. 2023

익어가는 감사함

기차를 100만 년 만에 탔다

아침 일찍 기차역에 오니 공항과는 또 다른 설렘이 있었다

소란스러움

잘못 탈까 봐 몇 번이나 확인하고 타는 자리에 서 있는데

기차가 왔다

내 기차는 42분 차 왜 앞차가 안 가지? 하고 있는데

지인의 전화 "뭐 해? 빨리 타"

42분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출발이었던 것이다

기차를 놓칠 뻔했다

기차에 타서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처음 탄 것도 아닌데

눈앞에서 멍청히 기차를 보낼 뻔했다


늘 해왔고, 어려운 일이 아니고, 뉴얼을 다 알고 있음에도

엉뚱하게 손 안에서 놓칠 때가 있다

그 실수들이 내가 아닐 땐 크게 보이기도 하고

상대방을 다그치고 이해할 수 없었을 때도 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의 느긋함이 불편한 적도 있고

멀티 안 되는 파트너의 구멍들이 한심한 적도 있었으며

손발 안 맞는 사람과 함께하기 싫었던 적도 있었다

내 안에 여유가 없었고

타인의 이해가 없었고

가시 돋친 새의 바쁨만 있었다

내가 나이 들고, 내가 느긋해지고, 내가 실수를 하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기차 칸에 타서 나의 허술함에 웃고

약속시간에 헐레벌떡 뛰어오는 너를 안쓰럽게 보아주고

손발이 안 맞는 사람의 손발이 되어주고

나이 드신 분들의 느긋함이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누군가의 가시를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창밖에 벚꽃이 한없이 행복해지는

세월에 익어가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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