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는 건
20대 초반,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새해를 맞이하던 때였다. 그때 친구들 앞에서 "나 뭐 해 먹고살지" 하는 진지한 고민을 푸념하듯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늘어져만 가는 푸념을 친구들이 듣다 못해 "잘 될 거야"와 같은 긍정적인 말로 힘을 북돋아 주었고 그렇게 매년 조금씩 성장하며 21살, 22살 사회로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대학을 남들보다 3년 늦게 23살에 입학했다. 학과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다고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그러지만 우리는 뭐 그리 나이가 중요하다고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쩌나 조바심을 가지며 생활하는 것이 은연중에 몸에 배어있는 듯하다. 어딘가 모르게 항상 발전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전공을 공부하며 관련한 진로를 관심 있게 탐색하다가도, 취업 시즌이 오면 시장에 내가 발 디딜 자리는 있는 것인지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 끝에 허탈감이 있을지, 짜릿한 성취감이 있을지는 알 수는 없지만 결과를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력을 다하던 중 코로나라는 것이 강타를 때리며 2020년도에는 무기한 집단 격리가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이런 때도 있었구나 하며 되찾은 일상을 누리며 지난 때를 회상하는 정도이지만,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언제까지일지도 모르는 격리를 하며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이 여러모로 속이 타는 지경이었다. 간혹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어 편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두 푼이 아닌 등록금과 혼란 속에 흘러가는 시간은 정말이지 그때만큼 시간이 아깝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시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었지만, 온라인 수업은 내게는 정말 쥐약이었다. 관광학 전공인 나는 당시 어떤 수업에서 리포터가 되어 무언가를 소개하는 스토리텔링식 발표를 해야 했는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줌 화면 속에서 얼버무리다가 발표를 하지 못하겠다고 숨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뒤로 그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거기서 일련의 트라우마가 생겨버려 나는 급기야 잠수를 타고 말았고 대인기피증이 생겼는지 화면을 켜고 들어야 하는 수업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그렇게 F학점을 여러 개 받고 학기를 마무리했는데 정말 내 인생의 학교생활을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자퇴를 하겠다고는 학과 사무실에 찾아갔다가 교수님의 만류에 퇴짜를 맞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말을 못 해 안달복달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입은 떨어지지 않고, 행동거지는 점점 무기력해져만 갔다. 그 뒤로 어떤 자책들을 했는지에 대해서 속속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며 우울증이 왔다. 지난 시간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해야 할 말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스스로가 못났다고 느끼는 날들이 반복되고 그럴수록 땅굴만 파고 들어가는 감정 기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는 큰 질책 없이 내게 등록금을 주시며 다시 해보라는 권유를 하셨지만 그때만큼 부모님꼐 죄송했던 적이 없다. 아마 딸이 정신줄을 놓고 밥도 겨우 먹으며 비실비실해져 가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질책하는 아빠가 아무 말 없이 잘해보라는 응원의 말을 건네준 문자 한 통에 정신이 얼얼했던 기억이다. 결국 마음을 고쳐 먹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생활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