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정말 가을 이제 가을!
나는 ‘이참에’라는 말을 좋아한다. 한강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을 탄 이참에 작가님의 전 권을 다 읽어볼까.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참에 사진을 한번 배워볼까. 콜드 플레이가 내한한다니 이참에 앨범이나 사볼까. 이참에 인간들이 모이면 (분명 내 MBTI는 J임에도 불구하고) 나들이든 행사든 모임이든 모든 것이 산으로 간다.
얼마 전에는 이참에 인간들로 똘똘 뭉친 모임에서 파주 출사 나들이를 계획했다. 우리는 ‘출사’ 나들이를 분명히 ‘계획했고’ 헤이리 마을에서 셔터를 누르며 가을 풍경을 감상하겠다는 분명한 ‘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총 5명이었던 우리는 집이 가까운 사람끼리 차를 나누어 타고 헤이리 마을에서 만나기로 했다. 초보 운전이라고 걱정하던 친구는 내심 여유로운 주행 실력을 뽐내며 우리 일행을 안전하게 파주까지 태워다 주었다. 친구는 헤이리 마을 입구에서부터 ‘내가 사실 주행은 잘하는 데 주차를 못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딘가 현혹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친구는 멀쩡하던 엑셀과 브레이크를 월미도 디스코 팡팡처럼 밟아대며 악귀 들린 주차 실력을 뽐냈다. 함께 차에 타고 있던 나와 동거인은 짐짓 태연한 척 ‘이참에 오르막 주차해 보는 거지’하고 친구의 등을 두들긴 뒤 차에서 황급히 내렸다.
가을에 물든 마을의 풍경을 5분 정도 감상하던 우리는 ‘특구특구해 행사장 가는 길’이라는 팻말에 홀린 듯 행사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특구특구해’는 파주시를 관광 명소 활성화를 위해 파주의 ‘맛’과 ‘멋’을 홍보하는 행사라고 했다. 행사 초입의 푸드트럭에서는 튀르키예식 케밥과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어라?) 튀르키예 푸드트럭을 지나치자 ‘Pan Festival’이라는 큼지막한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부스에서는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여러 공방 체험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티켓을 나눠주는 중이었다. 이참에 인간들인 우리는 가볍게 눈을 마주친 뒤 ‘어떤 행사가 있나 들여다 보기만’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우르르 부스에 달라붙었다. 은반지 만들기, 매듭 배우기, 도자기 채색하기… 생각보다 다채롭고 재미있는 행사 내용에 우리는 마음을 빼앗겼고 우리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우리는 결국 전통 매듭 클래스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참에 매듭 한 번 배워볼까? 나 전통 매듭 원래부터 배우고 싶었어.”
“맞아, 나도. 이참에 배우는 거지 뭐.”
이제껏 대화를 나누며 매듭의 ‘매’자도 꺼내지 않았던 친구들은 어느새 전통 매듭 수제자를 꿈꾸던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전통 매듭을 배우기 전 우리는 허기를 달래러 전통된장을 담아 파는 맛집에 갔다. 이참에 두부 튀김! 온 김에 간장 수육! 먹는 김에 파전! 을 외치며 위장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졸음을 달래며 간 매듭 공방에서 우리는 한 시간 동안 펜던트와 팔찌를 만들었다. 매듭 장인 분은 짐짓 인자한 미소를 보이시며 매듭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공방을 구경하던 우리는 벽에 예쁘게 꽂힌 매듭을 발견했다.
“우와! 이거 키링으로 달고 다니면 진짜 예쁘겠다.”
그 순간 짧은 정적과 함께 매듭 장인 분의 눈에서 ‘파박’하고 불꽃이 튀었다. (정말 불꽃이 느껴졌다.) 매듭 장인분은 날쌘 몸놀림으로 카운터 뒤에서 부스럭부스럭 무언갈 꺼내시더니 우리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매듭 키링 프로그램 딱 5자리 남았는데 이참에 하실래요?”
이참에 인간들에게 취약한 ‘이참에’ 공격을 하시다니. 게다가 딱 5자리가 남았다니. 우리는 주섬주섬 자리에 다시 앉으며 다음 행선지로 정해두었던 콩치노 콘크리트의 영업시간을 서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근데 콩치노 콘크리트 언제까지 열지?”
“글쎄… 계속 열지 않을까? 내일도 열고… 모레도 열고…365일… 명절엔 쉬시고…”
“아무래도 그렇지? 다음에 갈까?”
우리는 결국 왼손엔 매듭 팔찌 오른손엔 매듭 키링을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공방을 나섰다. 연신 서로가 만든 것들의 색 배합과 솜씨를 칭찬하며. 즐거운 발걸음으로 우리는 지혜의 숲에 간 김에 책을 샀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우리는 지혜의 숲 안의 카페를 들렀다. 오늘 참 즐거웠지. 하하 호호 떠들던 우리는 갑자기 서로의 저녁 메뉴를 몹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근데 오늘 저녁으로 뭐 먹을 거야?”
“글쎄… 너 먹는 거…?”
파주 나들이 간 참에 친구들은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정말 즐거웠던 출사 나들이였다. 친구들이 가고 나서 사진첩을 보니 제대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10장 정도밖에 남지 않아 모자랄까 걱정했던 필름이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참에 필름 더 사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