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나 Oct 13. 2024

이참에 인간(2)

2024년 가을의 어느 날, 그런데 더움


‘이참에 인간’인 나와 가장 안 맞는 부류는 ‘이제 와서’ 인간과 ‘굳이’ 인간이다. ‘이제 와서’ 인간은 자조적인 태도로 이참에 인간들의 기를 빼앗는 디멘터 같은 존재들이다.  노벨 문학상 탔다고 이제 와서 한강 작가 책 사재기해서 뭐 하게. 이제 와서 사진 배워서 뭐 하게. 콜드플레이가 활동한 지 언젠데 이제 와서 앨범사서 뭐 하게. 이제 와서 인간들은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태도로 이참에 인간들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한다. ‘굳이’ 인간들은 보통 이참에 인간들이 눈을 반짝이며 무언 갈 하고 싶다고 할 때 등장한다. “우리 매듭 배워볼까?” “굳이?” ‘굳이’ 인간들은 ‘굳이’라는 한 마디로 인간들을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이제 와서’ 인간과 ‘굳이’ 인간들을 겪으며 나는 나름의 대처 방법을 익혔다. 


먼저 ‘이제 와서’ 인간들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에게는 ‘너 혼자 인생 부질없이 살아 나는 갈 거야’라는 마트에서 우는 아이 달래기 기법이 먹히는 경우가 많다.


“콜드 플레이 내한한데. 나 이참에 앨범이랑 굿즈 좀 살까 봐.”

“이제 와서 그런 거 사서 뭐 하게? 콜드 플레이 좋아하기 이미 늦은 거 아니야?’

“그래? 근데 그렇게 살면 진짜 재미없잖아. (묘하게 측은한 눈을 하며) 앞으로 백세 인생인데…”

“뭐야, 내가 인생 재미없게 산다는 거야?’

“(맞아)”


보통 이런 사람들의 트리거 포인트는 뭔가 아쉬운 듯한 말투와 딱한 눈빛인 경우가 많다. 두 번째 ‘굳이’ 인간의 경우 사실 가장 피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이다. 굳이 인간들은 이참에 인간들이 어떤 이를 시작하려고 할 때 초를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굳이 인간들에게는 꿋꿋하게 내 의견을 펼치는 이른바 ‘나의 소원은’ 기법이 먹혀들 때가 있다. 


“고흐 전시 보고 온 참에 책 한 권 사서 들어갈까?”

“굳이?”

“(이를 깍 깨물며)응! 굳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굳이 굳이 너에게 이야기했겠지?”

“근데 교보 문고 배송도 되는데 굳이 동네 서점에 가야 해?”

“응! 난 정말 지금 당장! 굳이! 동네 서점에 가고 싶어.”


사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처할 때는 매우 드문데, 이제 와서 인간이나 굳이 인간이 내가 아끼는 인간의 바운더리에 속하거나 사회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대처하는 일도 매우 낡고 지치는 일이라 마음속에서 나는 그들의 장례식을 치른다. ‘이제 와서 한강 작가 작품 사는 사람들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어머, 관 뚜껑을 연다.) ‘솔직히 평소에 책도 안 읽는 사람들이 굳이 서점 가서 책을 산다고.’ (관 뚜껑을 닫는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야지. 노벨상 탔다고 읽어봤자 무슨 소용이겠어요?’ (멀어지는 상여) ‘한강 작가가 노벨상 탔다고 그리고 왜 이렇게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지.’ (‘아이고오, 젊은 나이에… 안 됐네.’) ‘안 그래요, 유나 씨?’ (‘어라? 왜 죽은 사람이 말을 하지?’) 참으로 슬픈 사실은 회사에는 이제 와서 인간과 굳이 인간이 넘쳐나서 365일 상 중이라는 점이다. 이참에 인간인 나는 ‘너는 참 긍정적이다.’라는 말을 받으며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고 그들의 뼛가루를 뿌린다. 에너지 뱀파이어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심정으로. 


염세적으로 인생을 사는 일은 편해 보인다. 나도 한 때는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이거 해도 내 인생 안 바뀌어’ ‘이거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겠어?’ 자신만의 세계를 넓히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를 ‘젊은 꼰대’라던가 ‘냉소적인 인간’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 그렇게 사는 인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쩌면 그들처럼 인생을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렇게 사는 인생에 나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인생에서 계획대로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안전지대 안에만 자신을 가두는 것은 따분한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서 우연을 사랑하는 일이야 말로, 진짜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우연히 찍어 놓은 사진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되는 것처럼 우연이 운명이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참에 인간으로 태어난 참에 더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앞으로도 ‘이참에!’를 함께 외칠 수 있는 친구들과 ‘여기 온 김에, 먹는 김에, 배우는 김에’를 목청껏 외치며 백발의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렇게 말하겠지. “틀니 바꾼 참에 고기 먹을까?”


이미지 출처 : X(구 트위터)


이전 08화 이참에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