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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May 20. 2023

행복한 글 쓰기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수도승이 명상에 잠긴 것처럼 나를 잊는다.

나는 책 읽기도 좋아하고 음악 듣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그것을 양분 삼아 글로 내 생각을 정리할 때 행복하다.

내 이 못된(?) 버릇은 어릴 때 교회에 가면 과자와 선물을 준다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서 엄마 몰래 여름 성경 학교에 가면서 시작되었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모두 절에 다니셨기에 교회에 가면 혼이 난다. 하지만 과자의 유혹이 엄마에게 혼나는 두려움을 이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분이 다 절에 다니셨지만 엄마는 복을 빌러 갔고 아버지는 반대로 욕심을 버리러 가신 것 같다. 엄마가 복을 빌어오면 아버지는 비우고 그 고픔을 엄마는 또 벌어오고…이걸 찰떡궁합이라 할까 아니면 악연이라 할까?)

아무튼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은 우리에게 성경 내용을 설명하고 나서 그 감상을 쓰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이 1등을 먹어서 상을 엄청 많이 받았다. 어린 나는 글을 잘 쓰면 맛있는 먹을 게 생긴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 후로는 먹이에 홀린 강아지나 실험용 쥐처럼 학교에서 백일장이 있으면 무조건 나가서 상장과 부상을 타왔고 선생님들도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으레 나를 시켰다. 6학년 때는 매일 신문사 주최 재일 이산가족 찾기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아서 트로피를 들고 있는 내 사진이 신문에 크게 나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어느 선생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노제를 지내고 나에게 미리 준비한 조사를 읽게 한 적이 있었다. 분위기 탓이었겠지만 내 글을 들으며 우는 아이들도 있었고 사모님께서 나를 따로 불러서 감사와 사례를 한 적도 있었다. 나도 뿌듯했다.

그 맛에 나는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쓰기를 계속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정신없이 바쁘게 사느라고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캐나다에 와서 삶에 여유가 좀 생겨서 다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옛 가락이 나오는지 의외로 글이 잘 써지고 즐겁다. 어떤 날은 하루에 3편씩도 쓴다. 글을 쓰기 전에 개요와 주제 그리고 구성을 대략적으로 구상은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내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내 손가락과 생각을 끌고 가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을 마치고 보면 어떨 때는 내가 쓴 글이 아닌 것만 같을 때도 있다.

아무튼 세상에 아이들도 일도 아내도 세상사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데 글만은 유일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물고 뜯고 깨물고 고치고 빼고 넣고 지우고 마음에 안 들면 통째로 불 살라버려도 되니까 참 자유로와서 좋다.

그러나 최근에 한 번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싫어하고 경계하는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독자를 의식하고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조금 생겼다.

그래서 발표를 안 하거나 당분간 절필을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마침 내일부터 여름 관광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새벽부터 일을 나간다. 한동안 바빠서 아마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억지로 쓰는 글은 진실이 담긴 글이 아니라 가짜로 포장된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즐거운 글쓰기가 아니면 차라리 글을 아예 쓰지 않으려고 한다.

다행히 캐나다는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고

자연 속에서 산책과 명상을 할 수 있고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어서 나에게는 천국이다.

감사하며 내가 읽은 책들의 저자에게도 감사한다. 아울러 나도 어설프지만 나의 독자들과 교감하며 인류의 공통지성이라는 강물에 맑은 물 한 방울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에 만날 날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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