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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May 16. 2023

일복

코로나가 터지자  운명처럼 일복을 타고 난 나는  이 여유롭기가 그지없어서 999국 (1000국 - 굶어 죽을 자유 없음 1)이라는 캐나다에 까지 일을 몰고 왔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겠다며 노동시간 세계 1위의 위업을 달성한 한국의 경제부흥기에 노동가능 연령 인력군에 편입되어서 그것도 일 중독자들의 집합소인 삼성에 들어가 1년 365일 출근해서 하루 평균 13시간 (24시간  - 수면 7 - 먹고 싸고 씻기 2 - 출퇴근 2)을 일만 하다가 정시 출퇴근의 대명사인 은행, 그것도 선진국의 노동 복지 기준을 그대로 보장한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수출보국이라는 시대적 사명감 및 곧 승진시켜 주겠다는 과장님의 회유를 뿌리치고 점프한 외국은행에서도 나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외환 딜링 룸에서 걸핏하면 다람쥐 쳇바퀴처럼 24시간 돌아가는 홍콩 런던 뉴욕 도쿄 외환시장을 모니터로 체크하며 하얗게 밤을 새워야 했다.

얼마 후 마침내 어린 시절부터 소망했던 꿈의 철밥통, 교사가 되었건만 아뿔싸 이런 걸 Out of frying pan into the fire라고 해야 하나?... 고 3 담임이 되어서 아이들은 1년 하고도 죽겠다는 그 끔찍한 고3 생활을 또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하며 10년을 학교에서 살다시피 해야 했다.

그러다가 천국의 복음처럼 들려온 형의 캐나다 사업 제안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고 ‘운명아 잘 있거라’며 회심의 미소를 띠고 Vancouver 공항에 발을 디뎠지만 처음에 그 지루할 정도로 여유롭던 삶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고 질긴 일 귀신은 나를 잊지 않고 이 먼 이국 땅까지 찾아왔다.

코로나가 터지고 일자리를 잃은 불쌍....... 할 뻔.... 했던  사람들은 예상과는 달리 정부보조금을 받으면서 문자 그대로 '놀고먹으며' 띵까띵까 지내고 있는데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빈사상태에서 숨만 쉬고 살아가는 여행업에 종사하던 나는 떠나간 사람들의 빈자리를 홀로 채우기 위해 운전, 관광 가이드, 산악 가이드, 정비, 세무 회계, 일반 사무 등등을 도맡아,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되어 이곳저곳 엔진 룸 기름때부터 손님들의 화난 마음까지를 밤낮으로 보살피고 보듬어야 했다.

남들은 금수저나 은수저 하다못해 흙수저라도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데 나는 아마도 흙삽을 손에 들고 태어났나 보다. 기억은 안 나지만 첫돌 때 나는 아마 오래 살라고 상에 놓아둔 실을 들고 물레를 돌리거나 길쌈 틀에 가서 옷감을 짜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 엄마에게 확인해 봐야겠다.

내가 이런 푸념을 하고 있으면 평생 오진이라고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나의 마눌님은 코웃음을 치며

“일이 당신을 찾아오는 게 아니라

당신의 똥고집과 알량한 자존심이 일을 쫓아다니는 거야! “라며 냉정한 진단을 내려서 내 부아를 더 돋우곤 한다.

맞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팔자에 없던 여행 가이드도 하며 세계 각국 여행객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경험을 엄청나게 또 쌓게 되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듯이 단체 여행객들도 국적에 따라 응대 방법이 다 달라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들은 주요 관광지에 도착하여 가이드가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면 너도나도 질문을 해대는 통에 답변을 하다 보면 어느새 안내가 끝난다. 마치 선생님이 한 마디 하면 이 놈 저 놈 손을 들고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여기 학교의 수업시간을 보는 것 같다.

반면 동양 사람들은 거의 질문을 안 한다. 그래서 가이드가 필요한 일정과 관람 포인트를 알아서 미리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중국 관광객들에게는 길게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듣지 않고 시종일관 자기들끼리 떠들며 이야기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도 관광객에게는 일정조차 안내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차피 시간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 8시 출발인 일정에서 마지막 손님이 12시에 호텔을 나오는 걸 본 적도 있다. 참 신기한 것은 다른 손님들이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차내 취식 금지를 무시하고 맨 손으로 카레밥을 떠먹으며 잘도 기다렸고 나만 그날 그만큼 밤늦게 끝난 일정에 열불이 났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부터 내린 후까지 끊임없이 안내와 설명 그리고 우스개 소리 폭탄을 퍼부어 주어야 만족을 한다. 그래야 본전을 뽑는 줄 알고 가이드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직무태만을 한다는 무언의 눈빛 레이저가 뒤통수에 마구마구 꽂혀서 견딜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산악 가이드가 전공이고 꼴꼴한 자존심에 쇼핑강요도 안하기 때문에 일반 관광가이드처럼 그렇게 지나친 아부와 유흥을 제공할 의무나 필요성은 없다. 하지만 나는 마눌님의 무결점 무오진 기록을 깨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쉬지 않고 고객이 만족하고 감동할 때까지 최후의 한 손님이 지쳐서 잠이 들 때까지 버스에 서서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등산으로 지친 내 몸을 혹사한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고 여름철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갇혀 지냈던 답답함에 복수라도 하려는 듯 쏟아져 들어오실 고국 손님들을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 걱정 말고 많이 많이 어서어서 오시와요. 혹시 안 오시더라도 어차피 일 벌레인 나는 아마 그 와중에도 지금처럼 부지런히 글쓰기 노동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머리를 쥐어짜고 쥐어뜯고 또 뜯어도 영감이 안 나오는 글쓰기보다는 경치 좋은 산 속으로 관광객을 모시고 다니는 것이 훠얼씬 좋답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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