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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Feb 23. 2022

정원사

단편소설 1 

  



짝짝이로 처진 볼살 안쪽에 깊은 계곡이 고여 있었다. 갈색으로 패인 주름 선을 따라가다 보면 생기 잃은 두 동공이 보였다. 머리카락은 낡은 반짇고리에 놓인 기다란 흰색 실처럼 꼬여있었다. 도끼 빗으로 머리를 빗을 때면 연약한 실들이 마구 엉켜서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세월이 언제 이렇게 갔을까. 한숨을 내쉬니 뿌연 입김이 거울에 달라붙었다. 흐릿해진 반대편 노인을 무시한 채로 화장실을 나왔다.


  세월이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년의 청춘과 이토록 긴 노년이라니. 아직도 내 안의 젊음은 그대로인데 겉모습은 쭈글쭈글 노인네가 되어버렸다. 까마득했던 젊은 시절엔 모든 생애가 싱그러웠다. 가정에 충실했던 남편과 딸, 아들 하나씩 낳아놓고 살림을 이어갔다. 하고 싶었던 게 많았지만, 주부로 일하는 것도 곧 익숙해졌다. 3년 전, 뇌졸중으로 그이를 먼저 보내고, 아이들은 부모가 되어 저마다 가정을 꾸렸다. 대견스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각자의 살길을 알아서 가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식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았다. 그럼, 그게 부모의 도리지. 이젠 가야 할 날만 남았으니 많은 욕심 부리지 말자고. 혼잣말을 되풀이하며 서운한 그림자를 숨겼다. 


  몇 주 전부터 호흡이 가빠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렁거렸다. 애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영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얘 영훈아, 엄마 요즘에 몸이 안 좋다. 병원에 같이 가줄래. 영훈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엄마 주말에 모시고 갈게요. 설마 큰일일까. 나는 그동안 흔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병원에 도착했다. 


  “어르신 폐암 말기입니다. 통증과 호흡곤란이 꽤 있으셨을 텐데..” 


  지금 저 의사가 뭐라는 거냐 영훈아. 나는 의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들리지 않았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영훈에게 물었다. 엄마. 항암치료 안 받는 건 어떨까. 내 정신은 다시 아득해졌다. 아들이 치료를 받지 말란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치료가 고통스러우니깐 편안하게 가는 게 좋을 거란다. 미숙이도 쪼르르 달려와 말을 보탰다. 그래 엄마,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오빠 말 잘 생각해봐. 아이들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알았다. 생각해 보마.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변명의 말을 찾지 못하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 앞 정원에는 저마다의 꽃들이 색색으로 피어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노인들이 검버섯을 띈 얼굴로 벤치에 모여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내 처지가 우스워졌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 죽어야 한다. 요란한 메아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들려왔다. 억울한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다. 정원에 앉아 다시 영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느그들이 나한테 어떻게 이러니. 나는 더 살면 안 되니. 팔십 노인은 그러면 안 되냔 말이야! 전화기 너머로 한숨이 길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갔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아파트를 보니 현기증이 났다. 가슴이 갑갑해 공원 정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뭇결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쉬었다. 정자 아래엔 작디작은 풀잎과 꽃들이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 손등에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목을 빼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짙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부슬비가 작은 풀잎에 내려앉았다. 바람에 따라 몸을 유연하게 흔들었다. 그 작은 몸으로 쉴 새 없이 내리는 물방울을 품었다. 촉촉한 생명력이 내 동공에 담겼다. 저 아이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나는 이름 모를 풀에 경외심을 느꼈다. 그래 솔직해지자. 나는 이제 젊은 사람이 아니다. 벌써 팔순을 넘겼다…. 그리고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입 밖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비추자 벅찬 마음이 들었다. 

공원 옆에 붙어 있던 주민센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제1기 시민정원사 수강생 모집’. 정원사라니. 어릴 적 내가 살던 산골짜기에는 수백 개의 야생화가 널려있었다. 어느 날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화려한 꽃을 발견했었다. 붉은빛으로 선명하게 퍼지는 노을을 닮았을까. 건강한 화려함을 품은듯한 자연의 꽃. 이름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황홀한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교육을 신청하러 주민센터로 향했다.


  교육장에서 만난 수강생들은 모두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이곳에서 정원을 조성하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냥 꽃이며 풀이며 자연에 머무는 것들을 공부할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었구나 싶었다. 정원사가 된다고 하니 딸 아들이 크게 화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보다 찌릿한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게 느껴졌다. 치료도 안 받는데, 병실에 조용히 누워있으면 뭐 하나. 그게 죽은 사람이지. 정원을 조성하는 일은 많은 정성이 필요했다. 허허벌판의 땅에서 생명의 빛을 심는 일. 빨갛고, 노랗고, 하얀 꽃들을 적절하게 심고 물줄기를 톡톡 떨어트렸다. 새싹 같은 자그마한 풀잎도 총총 심었다. 황폐했던 죽은 땅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너네도 그리 살고 싶었겠구나. 죽은 것들을 살리는 정원사의 손길을 그토록 갈망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난 더욱 살고 싶어졌다. 아직 살아가야 할 것들이 이토록 많으니까. 주름 낀 손으로 흙을 매만지고, 생명을 가꾸는 일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동안 죽어있던 내 가냘픈 삶과 같았다. 


  혼자서 우뚝 서 있던 나에게, 같은 처지에 사람들이 다가왔다. 나처럼 저마다의 이유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시니어들이 교육장에 가득했다. 겉모습은 희끗희끗한 머리와 녹조 색을 닮은 피부를 가진 노인들이지만, 눈빛만은 청춘이었다. 또렷하고 야망 가득한 순수한 정열의 빛. 그 속에서 또 한 번 나는 살고 싶어졌다. 그때 다시 찌르르한 통증이 가슴을 에워쌌다. 손으로 연신 가슴을 두드려보았지만, 통증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살고 싶다…살고 싶다…이 정원처럼 다시 한번.


  마지막 수강 날. 6개월간의 시민정원사 교육이 막을 내리는 날이었다. 수료증이 적힌 상을 하나씩 손에 쥐고, 커다란 꽃다발에 얼굴을 품은 채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나는 꿈꾸던 정원사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시니어 정원사로 취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시민정원사’라고 새겨진 글자가 어찌나 뿌듯하던지. 꿈꾸던 삶이 시작될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실습 나갔던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 잔디에서 꽃들을 바라보았다. 숨이 점점 가빠오고 심장이 조여왔다. 바람결을 따라 구름 같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주름 낀 두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려고 애썼다. 낡은 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대견하게 느껴졌다. 잘 살아왔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나이테가 두 손에 가득했다. 바람 세기가 더 강해졌다. 몸이 비틀거려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다리가 풀려오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잔디 위에 털썩 몸이 감겼다. 얕은 비가 정수리 안으로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세월을 품은 몸에서 풋풋한 풀 내음이 풍겨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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