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3
‘우리는 전우야 엄마.’
딸 영미가 새벽 잠자리에 누워 나에게 속삭였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딸아이와 단둘이 살게 된 지 어언 7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살아가면서 쓸 눈물을 다 쏟아냈던 것 같다. 우리 착한 영미도 고생을 참 많이 했다. 모든 게 다 내 탓처럼 느껴졌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영미와 오랜만에 거실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새벽이었다. 그토록 어렸던 아이가 이제는 제법 손발이 크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의 작았던 아이를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해졌다. 영미야. 엄마 때문에 고생 많았지.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나는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모든 고생은 내 뒤로 숨긴 채 그렇게 덤덤히 말했다. 그런 나에게 너는 걱정 말라며, 모녀가 아니라 ‘전우’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딸에게 빚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잘 버텨서 우리 영미 행복하게 해 줘야지. 그날은 유독 달큰하고 시린 밤이었다. 영미와 나는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잠에 빠졌다.
그 밤에 나눴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왕왕 울렸다. 영미가 죽었다. 그것도 사흘 전에. 달력을 세어보지 않으면 오늘이 며칠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아침에 나갔던 영미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딸아이가 신호등을 건너다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에 부딪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미는 그렇게 사라졌다. 제대로도 사진 한 장 없어서, 딸 얘의 증명사진을 영정사진으로 골랐다. 사진 속 영미는 분홍빛 잇몸을 둥글게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세상이 불공평해도 살아가는 게 승자라며 총명하게 웃었던 그때의 밤이 흘러갔다. 석탄을 짊어진 듯 무겁고 갑갑한 상복을 껴입고 하얀 핀을 머리에 꽂았다. 차라리 반대의 상황이었더라면 흔하고 당연했던 장례식이 되었을까. 나보다 먼저 가버린 자식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사진에 묻힌 영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수 없었다. 그저 양옆으로 찢긴 입꼬리에 빠져들어 죽음을 잊고자 했다. 손발이 잘린 채 망망대해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왜 내가 아니라 딸을 데려갔는지 신에게 묻고 싶었다. 영미를 보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3일 동안 장례식을 겨우 치르고 집에 돌아왔을 땐, 영미의 방에서 환청이 들렸다. 그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쓰던 일기장을 수십 번 돌려봤다. 평소엔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자 건들지 않았던 물건이었다. 반듯한 글씨로 하루의 감정이 솔직하게 쓰여 있었다. 6월 5일 오늘도 힘든 하루였지만, 소소한 행복이 있었다. 옆집 강아지를 만나 인사를 했더니 꼬리를 흔들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엄마한테 강아지 한 마리 키우자고 해야지! 영미의 일기를 보다가 갑자기 밀려드는 사무침에 책을 덮었다. 영미가 죽은 뒤부터 나는 영미의 방에서 잠을 잤다. 현관문을 열고 언제라도 아이가 웃으며 들어올 것만 같았다.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 눌러 담았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나면 꿈에 늘 영미가 나왔다. 영미는 꿈속에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영미가 나를 지켜줬으니 나도 영미 곁에서 지켜줘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나는 포털사이트에 자살을 검색했다. 여러 기사 속에서 집에 연탄을 피워놓고 죽었다는 한 가족의 뉴스를 읽었다. 그때 인터넷 창을 덮은 이상한 광고가 떴다. 띵!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찾고 싶나요? 영혼종자연구소를 방문하세요. 평소 같았더라면 지나쳤을 광고에서 나는 한 풀의 희망을 느꼈다. 배너를 누르니 씨앗 종자를 파는 홈페이지가 나왔다. 죽은 이의 가루로 씨앗을 만드는 곳. 데이터베이스와 원재료를 바탕으로 AI 기술을 접목한 회사라고 쓰여 있었다. 죽은 사람의 유골 가루만 준비되어 있다면 된다는 말이 나를 이끌었다.
‘맞춤종자 키트’를 눌렀다. 색깔과 크기가 다양한 씨앗이 보였다. 판매 금액에는 ‘문의’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씨앗을 구매하고 싶은데요. 네 고객님, 견적 문의는 Q&A 게시판을 이용해 주세요. 이후 구매를 원하시면 전화를 주시면 됩니다. 업체의 매뉴얼 같은 통화를 마치고 나는 양식에 맞춰 문의를 넣었다. 죽은 지 사흘, 나이는 24살, 키는 160cm, 낮은 목소리 톤, 영미의 사진까지. 아주 세세하고 꼼꼼하게 영미의 신상을 적었다. 게시판에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답변이 달렸다. 고객님 문의 감사합니다. 업체 이용금액은 1천만 원입니다.
그날부터 나는 희망을 찾기 위해 몸을 던졌다. 다니던 공장에 잔업 시간을 늘렸다. 오후 업무를 마치고 야간 잔업 5시간을 더 하면 하루에 10만 원을 더 가져갈 수 있었다. 딸 이름으로 만든 청약 통장도 깼다. 200만 원. 달에 2만 원씩 꼬박 저축했으나 부족했다. 주 7일 동안 야간 공장에서 풀타임 잔업을 했고, 집에 돌아오면 부업을 했다. 영미를 떠올리면 힘들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나자 통장 잔액에 10,000,000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찍혀있었다. 나는 곧장 영혼종자연구소에 연락했다. 연결 신호음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영미를 만날 수 있다.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그런 불안감 속에서도 미소가 번져갔다.
영미의 데이터를 연구소에 넘기고 약 한 달 뒤 작은 씨앗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키트 봉투에는 씨앗, 모종삽, 화분, 고운 흙이 들어 있었다. 크라프트지로 감싸진 세피아 색의 작은 상자 속에 털이 솟은 씨앗이 담겨 있었다. 아보카도 껍질에 숨은 단단한 씨앗처럼 커 보였다. 색은 희한하게 옅은 회색이었다. 처음 보는 색과 털의 윤기에 낯선 감정이 들었다. 이게 우리 영미라고? 씨앗을 손에 쥐자 서글픔과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화분에 뽀얀 자갈을 깔고, 질 좋은 흙을 덮었다. 가운데 동그란 홈을 파서 씨앗을 세우듯 집어넣었다. 초콜릿색의 짙은 흙을 균일하게 덮고 물을 뿌렸다. 상자 속에 같이 딸려온 이름표에 ‘영미’라고 적었다. 완성된 화분을 바라보자, 정말 우리 영미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에는 영미가 꿈에 나오지 않았다.
씨앗에 연둣빛 싹이 텄다. 아주 작고 연한 몽우리였다. 생명의 결실이 너무 신비로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정성과 애정을 쏟은 걸 영미도 아는 걸까. 딸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적 가냘프게 떴던 얇은 눈이 떠올랐다. 햇빛이 피는 날엔 식물을 거실로 옮겨 광합성을 시켰다. 일주일에 두 번 물을 줬다. 새벽 밤마다 씨앗에게 애정을 속삭였다. 3주가 지나자 씨앗은 어엿한 식물의 모양새를 했다. 싹은 무럭무럭 자랐다. 잎사귀는 곡선을 따라 단단한 청록빛을 뿜었다. 크고 넓은 잎사귀를 자세히 보자 지문 같은 나이테가 새겨져 있었다. 평범한 식물처럼 보였지만, 밤이 되면 길고 진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 속에 영미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두 눈을 감고 잎사귀를 어루만지면 영미의 손, 그 손의 주름 하나하나가 느껴졌다.
설명서에는 형태가 나타나면 ‘입 모양 기호’를 누르라고 쓰여 있었다. 마침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영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미입니다.” 딸의 낮은 음성이 천장에 울려 퍼졌다. 어딘지 어색한 소리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떨리는 입술을 바로잡고 말했다. “사랑해.”, “영미야 안녕.” 딸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넸다.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하기 전에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영미가 나를 따라 말했다 “나도 사랑해요. 안녕하세요?” 영미의 손이 바람에 팔랑거렸다. 딸이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영미와 나는 베란다에 앉아 못다 한 사랑을 나눴다. 나를 경청하고 있는 영미의 웃음이 보였다. 창문 밖으로 노을이 흐르자 영미의 잎사귀도 붉게 물들었다. 우리는 서서히 찾아온 밤을 함께 맞이했다. 그때보다 더 시리고 달큰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