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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Aug 04. 2022

다꺼행_
16화. 친절한 오지랖 벨기에아저씨

특별한 계획 말고, 자연스러운 만남이 더 좋아 

하루하루 좋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화창해도 이렇게 화창할 수가 있을까..?!  봄을 맞이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계절이 반대인 뉴질랜드는 가을이라 그런지 하늘이 유난히 높고, 맑고, 예쁘다. 깨끗한 공기와 어우러져 우리를 매일같이 설레게 한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아름다운 자연이 일품이라 해도 아이들에게 재미도 필요한 법.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 다녀오기로 했다. 점심 도시락을 위해 아침부터 
유부초밥을 만들고, 음료와 과일을 준비해 아이스박스에 넣고 출발했다. 


역시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란 언제나 통했고, 틀림이 없었다. 게다가 도착하니 장난감 숍부터 시작이다. 녀석들이 혼이 나간 듯 정신없이 장난감 구경에 나섰다. 이 휴~ 핵심은 이게 아니라 박물관 전시를 보는 건데... 장난감 사고 싶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박물관을 먼저 보자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엄청난 양의 장난감과 피규어, 자동차들, 기차, 레고, 인형 등등등. 전시물들의 양에 비해 공간이 좁아서 좀 답답한 듯했지만, 입장료에 비하면 볼거리는 제법 많았다. 어떻게 이런 장난감들을 다 수집하고 이렇게 정성스레 모아두었을까? 주인장의 그 노력과 애착에 진심이 느껴졌다. 소방차들이나 자동차들, 오토바이와 비행기 등등의 탈것들의 모든 것이 모여있고 간간히 직접 타 볼 수 있으니 아이들은 더 즐거워했다. 

볼거리가 많았던 박물관                                  -                            아이들은 역시 장난감을 좋아한다.


박물관과 장난감 샵을 한참을 구경한 듯했다. 이제는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조금 입이 궁금해질 타이밍에,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남편은 맥주 테스팅을 했다. 테스팅이어도 맥주도 술은 술이니 해외까지 나와서 음주운전을 시킬 수는 없지. 

 

인생 첫 해외운전


드디어 나의 국제면허증도 쓸모가 있어지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박물관에서 와나카 호수까지 나는 난생처음으로 오른쪽 좌석에서 운전을 하게 되었다.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긴 했지만, 새로운 놀이기구를 타기 전처럼 조금 흥분되고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안전하게 다시 와나카 호수에 도착했다.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했던 도시락을 펼쳐 점심을 먹은 후에, 본격적으로 호수를 즐겨보기로 했다. 아이들을 수영복으로 갈아 입히고, 30대 중반의 아줌마도 미친척하고 준비해 온 비키니를 입어봤다. 햇볕에 피부가 잘 타는 편이라 평소에는 잘 즐기지 않는 햇볕을 온몸으로 한껏 받으며 광합성도 실컷 했다. 가을이라 제법 차가워진 물에 아이들은 차마 몸을 못 담그는데, 남편은 겁도 없이 수영을 했다. 난 감히 비키니 차림에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멀찌감치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안 쓸 텐데, 혼자서 괜히 민망했다. 생각해보면 참 별꼴이다. 


큰 아이는 자꾸 같이 놀아달라고 하는데, 작은 아이는 뭘 하는지 혼자서 잘도 놀았다. 충분히 모래장난을 했는데도 막상 숙소에 들어가자니 아직도 부족한지 싫다고 했다. 뭔가에 꽂히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을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고집이 쉽지 않은 녀석임을. 

비키니를 입고 뜨거운 햇살 아래 앉아 살을 태우며 이 모든 걸 한눈에 담아 보았다. 간직하고 싶은 순간.


어르고 달래서 놀이를 정리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외식을 잘 안 하기에, 장을 제법 자주 보아야 했다. 고기며, 과일이며, 채소며, 우유며, 빵이며... 양껏 먹고 골고루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장보기도 하루가 멀다 하고 하게 되는 것 같다. 덕분에 어른들도 잘 챙겨먹고 다닐 수 있어서 1석2조였으니 참 알뜰하면서도 풍족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숙소에 도착해 옥수수를 찌는 동안, 아이들은 놀이터와 트램펄린에서 놀겠다고 했다. 이미 백인 남자아이 둘이 트램펄린에서 놀고 있었고, 우리 아이들과 또래가 비슷해 보였다. 우리 집 작은 아이가 들어가니, 어떤 백인 남자가 와서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대충 들으니 작은 여자 아이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였다. 영어를 잘 모르는 우리 아이들은 조금 긴장한 듯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냥 잘 어우러져 놀고 있었다. 


매너가 좋은 그 남자는 벨기에 사람이었다. 아! 테아나우 숙소에 이어 또 벨기에인이다. 남섬을 여행 중이라는 남자는 호주인 여자 친구의 두 아들과 함께 캠퍼밴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두 아이들이 꽤나 익사이팅하다며, 작은 여자아이의 등장에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그 사소한 매너가 참 고마웠다. 


우리도 우리를 소개했다. 한국사람이고 뉴질랜드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녕하세요."라고 화답했다. 호주에 머무는 동안 
한국 친구가 있었고,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친구를 통해 한국을 제법 알고 있던 그는 우리에게 본인의 캠퍼밴도 구경시켜주고, 좋은 정보도 나눠 주는 우리에게 꽤나 호의적이인 사람이었다. 10살, 5살이라는 두 남자아이는 우리 큰 아이와 잡기 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각자의 저녁식사로 인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지나고보니 사진을 한 장도 찍어 놓지 않은 게 후회가 된다. 역시 사진은 참 소중한 기록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특별한 체험이나 이벤트 같은 순간도 소중하지만, 이런 평범한 만남과 대화 속에서 많은 여행 속 기쁨을 느낀다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꽤나 알차고 바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그렇게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잠든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이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 같아 고마워졌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꽃같이 아름다운 3월에 한 달간의 여행이 나에게 가능하기나 했을까? 아마 생각도 못했을 텐데... 


좋다!!!

내 인생에서 조금은 늦은 것 같아 아쉽다가도, 지금이라도 나의 나라보다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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