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로 가는 길
쿠바로 가는 길
꼬박 2박 4일이 걸렸다. 캐나다 밴쿠버와 토론토를 거처야만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더 빨리 갈 수 도 있었지만, 경비도 아끼고 캐나다를 수박 겉 핡기처럼 느낄 요량이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캐나다 두 도시를 거치면서 오랜 비행시간은 몸을 물에 불린 미역처럼 만들어버렸다.
쿠바행 게이트 앞에서 쿠바 국기가 그려진 운동복을 입은 청년들을 보고 나서야 쿠바로 가는 게 실감이 났다. 긴 시간 동안 한국말을 하지 못한 터라, 말벗을 찾고 싶어 게이트 앞에서 어슬렁거려 보았지만 한국인 뿐만 아니라 동양인은 흔적 조차 보이지 않았다. 토론토까지 와서 쿠바로 향하는 힘든 일정을 소화하는 아시아 여행자는 나 혼자였다. 헛웃음이 입 밖으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쿠바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국제 공항이라지만 시설은 남루했다. 흥겨운 남미 음악이 흘러나올 거라는 상상 대신 후덥지근한 공기만이 반기며 온몸 깊숙히 달려왔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자 누런 제복에 망사 스타킹을 한 경찰이 내가 새로운 세상에 왔음을 말하고 있었다. 시간이 늦은 터라 대부분 졸린 표정이 역력했다. 짐이 나오는 벨트는 두 세 곳 밖에 없었다. 하나 둘 짐을 찾고 떠났다. 배낭이 나올 때까지 혼자 덩그러니 서있었다. 그 많던 여행객 중에 홀로 여행객은 아주 아주 멀고 먼 동양에서 온 나 혼자였다. 초등학교 시절 수학 문제를 다 풀어야 집에 갈 수 있던, 홀로 낑낑 거리며 문제와 싸웠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빨리 숙소로 가고 싶었다. 하나 둘 떠나갈 때마다 택시 합승을 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용기를 낼 힘 조차 없어다. 커다란 검은색 배낭을 메고 낑낑 밖으로 나갔다.
공항 밖은 무거운 적막만이 가득했다. 잠이 들어 마지막 정류장에 내린 느낌이었다. 그 흔한 택시 기사의 호객행위도 없었다. 공항 직원 몇 만이 나를 쳐다볼 뿐. 저 멀리 검정 야자나무 실루엣만이 바람에 휘날리며 나를 반겼다.
간혹 여행은 돈만 두둑하면 세상 무서울 게 없다는 우리의 보편적 진리를 무색하게 만들고 여행자를 우주먼지 같은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쿠바가 그러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운전석 옆자리에 어떤 남자가 동승했다. 무슨 이유에 합승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납치라도 하려는 걸까?
숙소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전기 수요 탓인지 공항에서 벗어나자 가로등 불빛 조차 보기가 힘들었다. 어둠 속의 쿠바는 그냥 어둠이었다. 두 청년은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분명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불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 더욱 불안했다. 차에서 뛰어 내릴 때 어떻게 하면 멋지게 착지 할 수 있을지 머릿속에 그려 보았지만 난 그럴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겁을 주면 당연히 내 모든 걸 내놓을 생각이었다. 암요! 자동차가 뿌리는 빛을 응시하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다.
여행하면서 수도 없이 마주치게 되는 일. 낯선 공간에 홀로 놓인 불안함, 이 불안은 세상 어디를 가나 똑같았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떠나온 걸까? 이 멀고 먼 타지로. 그것도 혼자
그때 갑자기 택시 드라이버가 음악을 켰다. 살사와 디스코가 섞인 남미 음악이었다. 옆 청년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상하게도 음악소리에 불안했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고작 음악소리 하나에. 참 이상했다. 차는 하바나 도심 안으로 진입했고 고풍스러운 스페인식 건물들이 눈에 잡혔다. 불안은 갑자기 흥분으로 바뀌었다.
불안하니까 떠난다. 떠나도 불안하다.
불안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 중 하나다. 미지의 세상으로 떠난다는 설렘과 불안. 두 감정이 해류처럼 만나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생소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관습화 된 일상,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관성에서 느껴지는 불안과는 다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불안,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이 이니다.
여행은 본디, 그래서 떠나는거 아니던가. 관습에서 잠시 이별 하기위해. 사회 필요에 의해 길들여진 개인이 아니라 본연 자신의 모습을 잠시나마 마주하기 위해. 여정이 외롭고 불편할 걸 알면서도.
웃으면서 고개를 앞좌석까지 가져갔다. 두 청년은 나를 미친놈처럼 보았다. 무슨 상관이랴. 내가 쿠바에 도착했는데. 내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