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용 Oct 21. 2021

아빠가 주양육자가 됐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는 주로 엄마가, 둘째는 주로 내가 돌봤다. 아이가 둘이 있는 경우 갓난아기를 엄마가 보고 아빠가 큰 애를 돌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린 정 반대다. 우리 입장에서는 특별한 것도 없는 것이 내가 아기를 더 잘 보고 첫째는 엄마를 더 잘 따른다. 내가 아기를 잘 본다는 건 정확하게는 신생아를 말하는 건데 첫째가 태어나고 한동안 수면, 수유, 목욕 등을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아내보다는 내가 아이를 다루는 게 익숙하다. 그리고 첫째가 엄마를 잘 따르는 건 설명하자면 조금 긴 데 번거롭겠지만 "빛나는 조연"편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군요.


첫째 때도 그렇고 둘째 때도 그렇고 아기와 내가 시간을  보내는 건 절대적인 시간은 비슷했지만 아내와의 상대적인 시간을 생각하면 차이가 컸다. 첫째 때는 아내도 손이 남는 상황이다 보니 해결해야 될 것들(예를 들면 재우기라던가 수유라던가) 하는 이슈들을 내가 처리해 놓으면 나머지 시간 중 일부는 아내가 아이와 함께했는데 둘째는 그렇지 않았다. 첫째의 질투로부터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가능하면 아내가 첫째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둘째가 나와 보내는 시간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아졌다. 끼고 자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내가 둘째와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15~6시간이라고 하면 아내는 한 3~4시간 정도.(중간에 비는 시간은 혼자 자는 낮잠 시간 정도다.) 휴일처럼 첫째가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날이면 아내가 둘째를 채 한 시간도 못 안아주는 날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첫째도 가족 구성이 변화함에 따라 거기에 맞추고 양보를 해야 하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그렇게 변하고 있다. 다만 우리 가족은 나와 아내의 손이 비기에 굳이 빠르게 변화시킬 이유가 없어 조금 느긋하게 바꾸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주양육자가 됐다.

예전과는 다르게 아이들 할머니에게 맡기는 경우도 많아지고,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주양육자에 대한 정의를 그냥 애 많이 보는 사람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건 첫째 때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첫째와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살도 엄청 비볐는데 결국에 난 까였다.(빛나는 조연 편을 참고해주시길.) 주양육자는 유일무이한 사람이고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다. 주양육자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열이면 열 모두 똑같이 말하는 사실 있다. 주양육자는 자주 바뀌면 안 되고, 주양육자와 아이와의 애착은 아이의 정서발달이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육아 관련해서 이렇게 한 목소리만 들리는 경우가 별로 없는 걸 보면 꽤나 중요한 부분인가 보다. 내가 지금까지 맡았던 어떤 감투보다 마음에 든다. 엄마들이라면 보통 당연히 가져가는 자리지만 남자가 그 자리에 있는 걸 본 경우가 드물어서 인지 평일 낮에 아이를 데리고 둘이 밖에 나갈 때면 나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에어조던 1 OG 하이 시카고를 신고 걸으면 이러려나.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그리고 알아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나 혼자 뿌듯한 그런 느낌.


잠에서 깬 아이의 이런 불안한 눈빛을 지워주는 게 주양육자의 기본 의무


하지만 대부분 감투가 그렇듯 뒤따라오는 의무도 꽤나 큰 편이다. 주양육자의 가장 큰 의무는 옆에 있기와 받아주기다. 아기에게 주양육자는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서 조금씩 세상으로 나아갈 때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세상에 치일 때면 언제든 품에 들쳐 안고 위로해줘야 하는 존재다. 아이가 세상에 치일 일이 뭐가 있겠냐만은 백일이 조금 지난 멋주의 상황을 본다면... 치발기가 입에 잘 안 들어온다거나, 눈앞에 장난감이 손에 안 잡힌다던가 하는 등의 엄청난 좌절감을 전해주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 아이가 보호받고 사랑받는 느낌을 주는 게 주양육자의 의무이기에 개인 시간을 가지기 힘들긴 하다. 원래 집돌이 아니냐고 말하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아기 자는 시간 위주로 개인 일정을 맞추고 아기 씻기고 밤잠 재울 때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건 아주 간혹 불편하긴 하다. 요즘엔 야간 아니면 골프 예약이 어려워서... 물론 씻기고 밥 먹이고 재우는 것들 역시도 기본 업무에 들어가지면 상대적으로 이런 업무들은 보조 양육자에게 넘겨도 무방하다. (밤잠 재우기는 보조 양육자에게는 조금 난도가 높을 수도 있다.)


주양육자이기에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다. 둘째와 함께 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거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가 예쁘게 자는 순간이다. 아이가 웃고 노는 순간이라고?? 그건 잠깐잠깐 아이를 보는 사람들에게 1순위지 하루 종일 아이를 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할 말은 아니다. 한 2~3순위 정도 되려나. 나에게 아기가 자는 순간을 제외하고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을 꼽으라며 아이가 살짝 잠에서 깨어 칭얼거리다 내 목소리와 얼굴에 안심하고 스르르 다시 잠드는 순간이다. 거기에 배냇짓 한 스푼 섞이면 바보 미소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아이가 입이 짧은 편에 내 품에서 밥을 잘 먹기에 분유병이 비면 마지막에 들리는 기분 좋은 쉬익 쉬익 소리도 멋주가 다른 사람에는 잘 허락하지 않는 기쁨 중에 하나다. 


제 어린 시절은 포스터 속 저 시절까지는 아닙니다. 갤러그까지는 뭐...


보조 양육자들도 물론 이런 광경을 보고 함께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게임을 직접 하는 것과 게임 방송을 보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다. 난 게임에 흥미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돈 한 푼 없이도 동네 오락실에 가서 게임 좀 한다는 친구가 게임하는 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곤 했다. 게임을 좋아한다면 직접 게임을 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이 게임하는 걸 즐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시나 직접 게임을 할 때의 손맛을 따라오긴 쉽지 않다. 임요한이나 페이커의 슈퍼 플레이를 보고 나면 어떻게든 직접 비슷하게 흉내 보고 싶고 성공했을 때의 기쁨 같은 것 말이다. 어설프더라도 직접 하는 게 그냥 보는 것보다는 재밌는 경우가 많다.  게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먹방도 좋은 예다. 곱창과 대창을 맛있게 먹는 입 짧은 햇님을 보는 것도 즐거울 수 있지만 내 입으로 맛있는 음식이 들어오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난 먹방은 안 보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한다.)


내가 주양육자가 되고 나니 엄마가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을 발 동동 구르며 치켜보던 첫째 때와는 내가 직접 많은 것을 느끼고 첫째 때는 보지 못했던 아이의 모습들도 보게 됐다. 더욱이 다행인 건 첫째 때 아기가 힘들어하면 아내와 나 둘 다 발을 동동 구르곤 했지만 소위 "발로도 키운다"는 둘째는 비교적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져서 손맛을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짬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라고나 할까. 


육아라는 게 즐길거리인지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즐기는 사람이라면 즐기는 데로 또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처럼 이왕이면 적극적으로 들이대 보는 것도 좋다. 아빠가 됐던 할머니가 됐던 이모가 됐던 삼촌이 됐던 자기가 보조 양육자나 그보다 더 육아의 곁다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주양육자의 영역을 침범해보려고 노력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면 그동안 보지 못 했던 모습과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난 그 속에서 다른 어디서도 찾기 힘든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애착이라는 아이와 다 둘 사이의 감정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라면 애착이 강해진다는 건 한쪽에서만 다가오는 게 아니기에 내가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주는 게 아니다. 우리 둘이 서로 가까워지고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는 걸 말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이가 느끼는 온기를 나도 느끼겠지. 주양육자가 된다는 것과 애착이 강해진다는 건 그런 거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 애착을 강하고 끈끈하게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니 많이 안아주면 손 탄다는 말은 접어두고 오늘도 엄청 많이 안아주고 물고 빨고 할 거다.


아. 뭐 달달한 말들을 써놨긴 했지만 주양육자가 돼서 내가 가장 좋은 건 승리의 기쁨이다. 아내가 열심히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아기를 무슨 일 있냐는 듯 슬그머니 안았을 때 잠잠해지는 모습을 보는 그 기분! 온갖 고생을 해서 낳아놨더니 결국 아빠한테 가냐는 아내의 표정을 볼 때의 승리감! 그게 최고다.(조금 이상한가요...) 첫째 때 많이 시달린 엄마가 아빠가 주양육자가 되는 걸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걸 보면 약간 당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지는 거니까 역시나 만족이다.


혹시나 이쯤 돼서 어떻게 하면 주양육자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갓난아기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궁금하실 수 있는데 굉장히 간단합니다. 따뜻한 손길로 많이 안아주고 또 안아주고 또 안아주면 됩니다. 자세한 레퍼런스는 원숭이 애착 행동 실험을 참고해주세요.

이전 08화 빛나는 조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