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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10대 재즈클럽, Cafe Central

마드리드의 밤하늘을 수놓는 재즈 라이브의 정수

by 강명재

마드리드의 밤과 어울리는 음악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플라멩코 일 것이다. 어둑한 *타블라오(Tablao) 안이든 달빛 아래의 **파티오(Patio)이든 플라멩코는 밤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플라멩코는 남부 안달루시아가 본고장이긴 하지만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에서도 수준 높은 플라멩코를 즐길 수 있다. 또 혹자들은 현란한 클럽 음악을 생각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잠 안 자고 놀기로 유명한 스페인 사람인만큼 클럽문화도 발달해 있는데 마드리드에서는 7층 건물을 통째로 클럽으로 사용하는 캐피털(Kapital)이 유명하다.

* 플라멩코 공연장 ** 스페인어로 안뜰을 뜻함


그런데 마드리드에 밤이 찾아오면 듣기 좋은 음악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재즈이다. 마드리드와 재즈라니, 얼핏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마드리드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재즈 클럽이 있다. 마드리드 재즈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려 준 재즈 바의 이름은 바로 ‘카페 센트랄(Cafe Central)’이다. 미국의 저명한 재즈 잡지인 다운비트에서는 2002년 카페 센트랄을 세계 최고의 재즈 바 100개 중 하나로 올렸다. 2018년 기준으로는 209개의 리스트를 발표했는 데 그중에도 물론 카페 센트랄이 포함되어 있다. 209개 재즈 바 중 123개가 재즈의 고향인 미국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86개만 그 외 국가의 재즈바라는 것을 생각하면 카페 센트랄의 선전은 더욱 의미 있다. 2016년 영국 일간지 가디안에서는 카페 센트랄을 유럽 재즈클럽 Best 10에 꼽기도 했다.


<카페 센트랄 입구 >


이러한 전문가들의 평가도 놀랍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따로 있다. 카페 센트랄은 1982년 출범한 이래 매일 밤 라이브 공연을 펼쳐 2019년 기준 약 13,500회의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13,500회라니. 아무리 재미있는 것도 – 예를 들어 온라인 게임이나 넷플릭스 시청 등- 13,500일 동안 빠지지 않고 계속 하기는 힘들 것이다. 당신이 재즈를 듣고 싶은 날이라면 1년 중 언제라도 카페 센트랄에서 최고 수준의 재즈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상사에게 와장창 깨진 우울한 월요일이든 온 세상을 빨갛게 칠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금요일이든 상관없다. 카페 센트랄이 있는 한 마드리드의 재즈 선율은 멈추지 않는다.


카페 센트랄은 *타베르나(Taberna)가 많기로 유명한 산타 아나 광장 (Plaza de Santa Ana) 인근에 있다. 정확히는 앙헬 광장(Plaza del angel)에 있는데 두 광장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다. 산타 아나 광장은 마드리드에서도 알코올과 수다의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한 곳으로 카페 센트랄을 찾아가는 길에서 벌써 흥분을 느낄 수 있다.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미리 인터넷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www.cafecentralmadrid.com) 홈 페이지는 영어로도 안내되어 있어 예약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입장료는 1인당 20-25유로 사이이다.

* 타파와 주류를 판매하는 대중 주점


< 카페 센트랄 앞 테라스 >


카페 센트랄 안으로 들어서면 재즈 음악과 사람들의 수다로 소란스러운 분위기이다. 라이브가 시작되면 잡담은 줄어들긴 하지만 완전히 고요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재즈 바는 조금 소란스러운 것이 매력이다. 재즈란 음악이 묘하게 사람의 잡담이나 바에서 주문받는 소리, 컵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금 들어가는 것이 썩 어울린다. 클래식 공연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감상하는 것이 보통이고 락 공연은 바로 옆 사람이 소리쳐도 잘 애기가 들리지 않는 것에 비해 재즈클럽은 적당한 소음이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재즈는 콘서트 홀보다 바에서 연주하나 보다. 아예 재즈 바의 소음을 일부러 담아낸 “Jazz at the Pawnshop”이라는 명반도 있다.


< Jazz at the Pawnshop 음반 표지 >


재즈 바의 다른 매력으로는 재즈 음악 특유의 즉흥성에 있다. 보통 재즈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즉흥성을 꼽는다. 클래식에 비해 블루스, R&B 등의 흑인 음악은 즉흥성이 강한데 그중에서도 재즈의 즉흥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따라서 우리가 재즈 바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세상에 딱 하나뿐인 버전인 것이다. 어떤 아티스트의 마니아가 그 아티스트의 모든 음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날 밤, 그 장소에서 들은 버전은 알지 못한다. 재즈는 일생 한 번뿐인 인연을 소중히 한다는 ‘일기일회’라는 표현과 잘 어울린다.


재즈 바의 또 다른 매력은 연주자와 관객이 소통하기 쉽다는 것이다. 일단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가 멀지 않아 연주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재즈 라이브가 전해주는 터질 듯한 에너지를 느끼게 되면 이어폰으로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막간 휴식시간에는 연주자와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아 연주자와 얘기를 나눈 적 있는 데 음악에 대해 진솔하게 대답해주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공연 준비 중인 연주자들 >


재즈는 대중음악에 비해 팬이 많이 없으며 재즈에 대해 편견을 가진 분들도 많다. (반대로 재즈 팬도 대중음악에 대해 편견이 있다.) 재즈를 즐기기 위해 없애야 할 편견을 몇 가지만 애기해 보면 첫 째, 재즈는 무드음악이라는 것이다. 재즈는 우울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위스키를 마시며 듣는 음악, 혹은 연인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듣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음악도 있다. 보통 이스트코스트 계열이라 부르는 쿨 재즈가 그렇다. 우울한 날에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이라도 듣는다면 정말 헤어 나오기 힘든 심연에 빠져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재즈는 활기찬 곡들이 더 많다. 재즈의 역사를 보더라도 빅밴드, 비밥 등 흥겹고 격렬한 음악을 거쳐 쿨 재즈에 다다르게 된다. 그 이후에 이어진 퓨전, 에시드 등도 밝은 분위기의 곡이 많다.


다음으로 음악은 보컬이 중심이라는 편견이다. 대중음악에서 보컬의 존재감이 너무 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연주인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다. 재즈에서 가끔씩 나오는 대중적인 스타도 다이애나 크롤이나 제이미 컬럼 같은 보컬 들이다. (물론 이들도 연주를 한다.) 하지만 클래식이 성악보다 기악의 영역이 훨씬 크듯이 재즈도 보컬보다 연주인이 훨씬 많다. 어떤 분들은 가사 없이는 감정을 전달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악기를 잘 다루는 장인들은 악기로 ‘연주’를 하기보다 ‘노래’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언어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없으면 감정도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예 아무 대사도 없는 미술이나 무용은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지. 재즈를 감상하려면 연주음악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즈는 어렵다는 편견이다. 물론 재즈는 어려운 면이 있다. 대중음악에 잘 사용하지 않는 코드를 자주 사용하고 박자도 현란하다. 아방가르드 재즈는 현대 미술 이상으로 난해하여 멜로디나 박자를 종 잡을 수없다. 하지만 모든 재즈가 마냥 어려워서 보통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느냐고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한 라라 랜드를 보면 시종일관 재즈가 흘러나온다. 그 영화를 본 관객은 대부분 음악이 어렵다기보다 아름답다고 느꼈을 것이다. 재즈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낯 선 것일 수 있다. 재즈 바에서 공연을 즐기며 재즈와 좀 더 친숙해지면 어렵다는 편견은 날아갈 것이다.


< 색소폰 연주자 Daniel Juarez와 베이스 연주자 Ruben Carles >


“재즈가 죽어가고 있어.”라라 랜드에서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얘기한다. 세바스찬의 이 대사는 대중음악에 밀려나는 재즈의 현실을 안타까워한 의미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는 AI가 작곡까지 한다고 나서니 음악 자체가 죽어가면 어떻게 하나, 라는 염려도 된다. 다행히 카페 센트랄에서 라이브를 감상한 날, 조금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 센트랄을 가득 매운 관중을 보며 재즈의 예술성이 외면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울러 당분간은 AI가 재즈 라이브의 즉흥성, 연주인의 감성까지 완벽히 흉내 내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마드리드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 것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마드리드를 다시 방문했을 때, 카페 센트랄에서 여전히 라이브가 이어지고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Como Siempre, Para Siempre(꼬모 시엠쁘레, 빠라 시엠쁘레. 언제나처럼,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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