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캠 스토리] [스압 주의]
주말!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단어인가? 직장이란 걸 다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주말을 기다린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도,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도, 퇴근을 하면서도, 회식을 하는 중에도 주말 생각을 한다. 오매불망, 오로지 이 날을 위하여 견디고 또 견딘다.
'내게 주어진 공식적인 휴식일'
나라도, 회사도, 사람들도 인정하는 '일 하러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 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일 것이다. 일을 하러 특정한 장소로 출퇴근을 하는 일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이다. 그걸 하지 않는 날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지 느껴지는가? 그래서 주말엔 가지 않아도 되니 늦잠도 가능하다.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조금 슬슬해도 괜찮다. 주말의 여유가 여기서 생긴다.
하지만 주말이라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뭐한다고 결혼이 넘쳐난다. 어린아이들은 뭔가 놀거리가 필요하다. 큰 아이들과는 대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접대 등산, 접대 골프도 역시 봄 매주 일정이 잡힌다. 못 찾아뵌 부모님도 찾아봬야 한다. 1년에 몇 번 못 보는 친구들도 궁금하다. 남은 인생을 위해 뭔가를 배워야 할 것도 같다. 신도시와 임야를 보러 다녀야 한다. 가족과 함께 맛집도 가야 한다. 매일 일어나는 시간과 매일 가는 행선지만 아니지 뭔가를 해야 하는 요즘 주말이다.
특히나 혼자 뭘 한다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가족들도 주말을 기다린다. 그들을 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순 없다. 그건 가족적이지 않은 것이다. 가족적이지 않은 것은 비난받을 일이다. 비난받는 일은 괴롭다. 밖에서도 위로부터, 아래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포화 비난으로 자존감의 붕괴가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다. 더 이상 비난을 받을 수 없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더더욱.
이미 자신만의 취미 생활을 공고히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부럽다. 이제사 취미 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면 저항이 만만찮다. 가족의 만류와 내적 갈등이 심하다.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왜 저러나?' 싶기도 할 것 같다.
보통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사회생활을 20년쯤은 했을 것이다. 있는 휴가 다 쓰지도 못하고 20년을 이 회사, 저 회사에서 살아남느냐 일을 해왔을 것이다. 꼭 뭘 해야만 일이 아니다. 출퇴근만 해도 일이다. 거기에 쳇바퀴 돌 듯 분기마다, 반기마다, 연말연초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 왔을 것이다. 그랬으면서도 고용불안과 아이들 교육과 주거안정 때문에 한시도 편할 날이 없다. 곧 다가올 강제 은퇴 후의 삶도 불안하다. 불쌍하지 않나?
매 주는 아니어도, 혼자, 아무것도 안 할 시간도 필요하다. 뭔가를 하는 것을 멈추고 소소한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소소함에서 작은 행복들을 느껴야 한다. 굳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소소한 것들.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작고 평범한 행복을 통해서 쓸데없는 걱정과 생각들을 잊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취미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혼자! 힐링을 위한 솔캠을 떠났다. 시간을 허락해 준 가족들께 감사하다!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고 충만한 시간이었다. 함께하지 않았는데 충만했다고 서운 할 필요 없다. 우린 다양한 관계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마존강 어딘가 가족만 사는 부족은 아니지 않은가?
큰 도로를 지나 작은 산길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혼자임을 체감한다. 이제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 귀찮음 보단 당연함으로 상황이 맞닥뜨려진다. 누구의 배우자, 누구의 부모, 누구의 동료, 누구의 후배, 누구의 울트라을, 누구의 선배, 누구의 친구가 아닌 나. 이제부터 혼자만의 시간이다!
조용하다. 낮인데도 새소리가 요란하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화이트 노이즈인가? 낮기온은 이미 25도를 넘었다. 덥다. 경사가 꽤나 가파르다. 한 세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할 듯하다. 운동한다 생각하자!
비교적 상단의 사이트에 자리를 잡았다. 넓은 반면 몇 팀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떨어져 주는 게 에티켓이다. 얼굴이 타들어 가는 게 느껴졌지만 괜찮다. 뷰도 좋고, 주변의 방해도 없다. 이 정도면 아주 적절한 선정이고 결정이다. 화장실, 개수대, 놀이터 등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았다.
집 짓는 건 재밌는 놀이인데 날이 더우니 힘들다. 그런데 솔캠 집 짓기는 가족캠과는 다른 거 같다. 빨리 지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혼자 고생한다는 피해의식(?)도 없다. 그냥 슬슬 내가 하고픈데로 하니 맘이 편하다. 실수를 해도 탓할 사람이 없어 좋다.
집을 완성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멍을 때려 보자. 너무 조용하다. 인공적인 디지털 사운드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나도 동참한다. 음악 따위 굳이. 오후에 들려오는 애들 뛰어다니며 지르는 소리에 만족한다. 휴식 중이지만 더 휴식하고 싶다.
지친 목 구녕에 쓰디쓴 커피를 부어준다. 캬~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이 아니면 어떠랴! 하와이안 코나가 아니면 어떠랴! 예맨 모카 마타리가 아니면 어떠랴! 홀로 땀 흘리고 마시는 1,800원의 호사는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짐 나르고, 집 짓느냐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진했다. 나를 위한 요깃거리가 필요하다. 진한 황태 설렁탕으로 위장을 달래 본다. 그런데 '진한'은 지명인가? 내가 너무 찐한 맛을 상상했나?
배도 채웠겠다. 더 있으면 해가 질 테니 얼른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꽤나 올라왔으니 위로는 더 갈 곳이 길지 않다. 밑으로 내려가 펜션이 있는 쪽으로도 가본다. 전체적으로 크지 않지만 밥 먹고 슬슬 노닐기에는 나쁘지 않다. 한 바퀴 휘~돌아보고 사이트로 와 노트북을 켜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한다. 바람소리에 묻힐 만큼 작게 음악을 켜놓고 집중하며 즐긴다.
쑥이 사방에 지천이다. 파릇파릇한 새싹들도 많다. 저녁 메뉴가 된장국이니 쑥 된장국을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향긋한 쑥의 향이 배어 있는 쑥 된장국! 그래 바로 이거다. 어린 새순으로 쑥을 조금 채취했다. 물로 열심히 씻어서 된장국에 넣고 끓였다. 자 맛을 봐야지! 향긋한 쑥향이 밴 된장국 맛이 나겠지? 우와! 대박! 쑥이 이렇게도 쓰단 말인가? 순간 이건 쑥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재빨리 건져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쩌겠는가? 하하하하하~
혼자 하는 실수는 재밌다. 누굴 탓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다. 탓도 안 나오고, 화도 안 나온다.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으니 잘 적응한다. 그러면서 뭔가 재밌고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동그랑땡으로 쑥의 쓴맛을 잡자! 하지만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헛웃음 나는 저녁 식사를 했다. 휴지로 대충 닦아내고 개수대에서 물로 재차 씻었다. 뜨건 물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손이 시리기 전에 설거지를 마쳐야 한다. 낮에 아이스크림을 주신 분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답례로 동그랑땡을 드릴 수도 없고...
저녁을 먹으니 하루가 다 간 느낌이다. 멍 때리고, 산책하고, 쑥 뜯고, 음식 해 먹으면서 하루가 갔다. 소소한 일들을 혼자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평소 같으면 일이었을 일들이 나에게 행복을 주었다. 귀찮거나 재미없지 않았다. 혼자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분들은 힘들게 캠핑을 왜 다니냐고 한다. 캠핑을 힘들게 다닐 수도 있다. 엄청난 짐과 엄청난 준비물과 엄청난 인원을 위해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건 확실히 힘든 일이다. 물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즐거운 캠핑이 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하지만 솔캠은 힘들게 다니지 않을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소소한 일들을, 대충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솔캠은 즐겁다.
25도까지 올라갔던 낮기온이 해가 넘어가면서 뚝 떨어졌다. 석양 함 봐주고 짐 대충 정리하고 텐트로 들어간다. 스마트폰 음악을 벗 삼아 노트북에 하루를 정리한다. 쓸쓸할 틈 없이 하루가 갔다.
그래 잘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잘 보냈다. 일도, 돈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는 하루도 필요하다. 그렇게 나를 느끼는 하루가 필요하다. 이거 매일 하면 '자연인'이겠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너무 좋을 거 같다. 그래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이런저런 생각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펜션 이용객들의 술 먹는 소리와 아이스크림 주셨던 분들의 얘기 소리가 멈추면서 밤도 깊어졌다. 나의 아무렇지 않은 하루도 그렇게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