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밤과 밤

[Life] 서울의 밤 산책자

열기가 사라진 도시를 걷는 사람들

by maat


시원한 밤바람을 만끽하고 싶을 날엔 운동화를 신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요. 밤공기가 내려앉은 고요한 거리를 누비며 이름 모를 나무와 꽃을 구경하고, 산책 나온 강아지의 통통한 엉덩이를 보며 슬며시 미소 짓기도 합니다. 이렇게 목적지 없이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로 시끄러웠던 머릿속이 잠잠해지고 상쾌해지죠. 때때로 우리는 잊기 위해 걷는 것 같아요. “걷기는 자극과 휴식, 노력과 게으름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제공한다.”는 작가 에릭 와이너의 말처럼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우리 삶에 긍정과 환기를 가져다주는 산책. 선선한 가을밤, 나 홀로 산책을 즐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릴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에게 산책의 묘미와 의미를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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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부족한 산책자의 ‘생존 산책’


산책 준비물
휴대폰, 지갑, 에어팟, 필름 카메라, 츄르, 우산

산책 코스
홍제천 인공폭포 - 안산자락길


산책의 묘미

산책을 하다 보면 후끈한 여름의 열기가 선선한 가을바람으로 변하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솜털 같은 들풀들이나 알알이 달린 작은 열매들을 발견하면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꼭 사진을 남겨요. 그러다 운이 좋은 날에는 길냥이를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집사도 아닌 제가 츄르를 챙겨 다닌 보람을 느껴요!


나에게 산책이란

프리랜서로 일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요. 나 자신이 하나의 회사처럼 모든 역할을 해내려면 체력이 무척 중요한데, 시간을 규칙적으로 내기 어려워서 체력 관리를 꾸준히 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아요. 마감을 앞두고 낮이고 밤이고 엉덩이로 일하며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생존 산책’으로 되살아나곤 합니다. 잘 살아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을 기르기 위해 나가지만, 막상 나가보면 산책은 그 자체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오감으로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하경 영화∙영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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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나란히 달리는 산책자의 ‘매직 아워 산책’


산책 준비물
자전거, 헬멧, 고글, 자전거용 전조등과 후미등, 휴대폰, 카메라, 출근복을 담는 백팩

산책 코스
올림픽공원 - 잠실철교 - 뚝섬한강공원 - 잠수교 - 반포한강공원


산책의 묘미

‘오늘의 노을은 어떨까?’ 퇴근하기 10분 전부터 기대에 부풉니다. 해가 진 뒤 하늘이 붉게 물드는 ‘매직 아워’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단 20분 정도거든요. 가을엔 유독 매직 아워의 노을이 예쁜 날이 많습니다. 한강과 노을에 등 뒤에서 밀어주는 가을바람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그 신비로운 시간을 오롯이 만끽하지 못했지만, 가을에 자전거를 안 타면 유죄입니다. 유죄.


나에게 산책이란

출퇴근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퇴근길 잠실철교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지하철과 천천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내가 교차하는 순간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한강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고단했던 하루의 스트레스를 비우고 그 빈자리를 가을바람으로 채워 달립니다. 산책은 자연 앞에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작은지 느끼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은 일상에 감사하고, 작은 일은 웃어넘기는 여유를 만들어주는 ‘마법의 시간’ 같습니다.


정성운 공공기관 정책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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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 산책자의 ‘골목 산책’


산책 준비물
에어팟, 휴대폰, 카드 지갑

산책 코스
경복궁역 - 서촌 골목길 – 밥+(밥플러스) - 통인스윗


산책의 묘미

편한 신발과 음악만 있다면 발길 닿는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걷다 지치면 딱 이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쉴 수도 있죠. 비록 저는 꽃에 무지하지만 골목 곳곳에 피어 있는 들꽃도 눈에 담습니다. 해 질 무렵 산책을 즐기다 보면 출출해지는 때가 있는데, 서촌은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어 좋아요. 오늘은 집밥 같아서 자주 가는 곤드레밥을 파는 식당에 들렀다가 달콤한 에그타르트까지 포장해 왔어요. 걷고 보고 먹다 보면 삶을 환기하게 되는데 그게 산책의 묘미 같아요.


나에게 산책이란

저에게 산책은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을 때 하는 ‘일상적 행위’예요. 코로나19로 많은 제약이 생기면서 한동안 무기력했어요. 산책은 회사와 집을 오가는 지루한 일상에서 찾은 유일한 탈출구였죠. 늘 변화무쌍한 일상을 꿈꾸고 계획에 따르기보다 즉흥적인 편이라서 익숙한 곳보다는 낯선 곳을 향하고 목적지 없이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산책 도중에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는데 나중에 꺼내 보면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곱씹을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알고 있던 혹은 알지 못했던 나를 새삼 발견하는 느낌이랄까? 이제 산책은 나의 성향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는,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활동이 된 것 같아요.


이주연 퍼포먼스 마케터





Editor 노유리

Photographer 김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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