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내 영혼을 앗아가고, 지옥 같은 삶만 남겼어
너무 유명한 곡이라 굳이 설명이나 감상의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다 아는 사실도 또 얘기하면 새롭고 재미있는 법이라, 굳이 들고 왔다.
'One'은 메탈 안 좋아하는 사람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명곡이다. 지구의 음악을 외계인들에게 소개한다면 모짜르트 작품과 함께 ‘One’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곡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이 곡 얘기를 하려면 미안하지만 또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를 시전해야 한다. 라떼의 고등학교 시절, 음악 좀 듣는 고등학생들이라면 당연히 메탈을 들어야만 했고 메탈 이외 음악(팝이나 가요) 듣는 것들은 진정한 음악을 모르는 상거지 취급했다. 뮤직비디오를 대형 스크린에 틀어주면서 신청곡 받는 '음악감상실'에서 뉴키즈 노래 신청한 사람은 비웃음과 야유를 받는(진짜다) 그런 시절이었다.
아니 언제부터 여고생들이 메탈을 들었다고? 이렇게 된 데에는 사실, 당시 메탈 밴드들이 그동안 '우리는 음악 외길, 외모는 세수만, 머리는 안 감지만 일단은 헤드뱅잉 해야 하니 길러 길러 풀어헤쳐!' 모드에서 탈피해 만찢남 수준의 꽃미모 비주얼의 밴드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대략 이런 오빠들이 있다. 지금은 할배들인데 라떼는 오빠들이셔서 일단 호칭은 오빠로 하겠다.
● 액슬 로즈(Guns N' Roses) - 퇴폐적인 섹시함과 락스타의 광기가 합쳐진, 반항적이고 위험한 남자 스타일의 매력으로 인기 최고였다. 나는 아직도 우리 반 어느 도라이 같은 애가 비 오는 11월의 어느 날 창밖을 바라보며 "저것 좀 봐, November Rain이야... 흑흑흑..." 하며 눈물 흘리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 존 본조비(Bon Jovi) - 이 오빠는 원래도 잘 생겼었으나 머리 길 땐 미모를 못 살리다가 이발사인 아버지가 머리 한번 잘라주고 나서 본격적으로 비주얼계 탑으로 뛰어올랐다. 섹시에 로맨틱한 이미지로 인기 최고였으나 당시 나왔던 Keep the faith 같은 음반이 대중적인 팝 분위기를 추구하는 바람에 "얘네들은 락이 아니야!"라며 락팬들에게는 배척받기도 했다. 내 방에도 포스터 붙여놓고 동생들에게는 강제로 형부라고 부르라고 시켰으나 이 인간이 고교 동창이던 마누라랑 이혼을 안 하는 바람에 결국 미수로 그쳤다.
● 누노 베텐코트(Extreme) - 위에 두 놈과 달리 얜 기타리스트다. 포르투갈 출신의 검은 생머리에 깔끔하고 잘 생긴 애가 천재적인 기타 실력까지 갖췄다. 라이브 때 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담배 하나 꼬나물고 기타 치면 코피가 그냥 뿜어져 나왔다.(위아래 화려한 오빠들에 비하면 비주얼로 대표될 만한 애는 아닌데, 내가 좋아해서 그냥 넣었다 흥)
● 세바스티안 바흐(Skid Row) - 191의 장신에 조각 같은 얼굴, 퇴폐미 미쳤고 섹시함 도랐고 여학생들 중에 자칭 바흐 부인(바로크의 거장 그분 아님) 존많았다. 자칭 바흐 부인들을 보며 어른들이 "세상에 요새 학생들이 클래식을 그렇게 좋아해?" 했다는 라디오 사연도 있었다.
● 브렛 마이클(Poison) - 대표적인 글램 메탈의 주인공. 뮤비 보다 보면 음 얘는 잘생긴 게 아니라 예쁜데?라는 생각 들 정도로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비주얼. 화장도 꽤 이쁘게 한다...
자, 메탈리카로 돌아가 보자. 메탈리카는 위의 잘생긴 오빠들의 리스트에 끼지 못한다. 왜냐면... 못생겼으니까.
못생기기도 했지만, 애초에 비주얼로 승부하는 밴드도 아니었다. 《...And Justice for All》 시절의 메탈리카 멤버들(제임스 헤트필드, 라스 울리히, 커크 해밋, 제이슨 뉴스테드)은 꾸미지 않은 '노동자 스타일'의 아저씨들이었다. 동네 철물점 아저씨 같기도 하고 서부영화 보안관 같기도 한, 그러나 밤에 뒷골목에서 만나면 왠지 뒷걸음질 칠 것 같은 외모. 그러나 얘네들이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한 비주얼이 아니라 강렬한 음악과 진정성, 반전 메시지를 담은 음악적 깊이와 카리스마 같은 것들이다.
메탈리카의 네 번째 정규 스튜디오 앨범인 《...And Justice for All》에 수록된 'One'은 이 반전 메시지를 담은 대표곡이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는 1989년에 나왔는데, 1971년 영화인 《Johnny Got His Gun》의 흑백 클립들을 밴드의 연주 장면과 번갈아 내보낸다. 1939년 출판된 동명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배경으로 주인공 조 본햄(Joe Bonham)이 겪는 고통과 상실,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제임스 헤트필드가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가사를 썼고 나중에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원작자 측과 협의하여 영화 클립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소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조 본햄은 제1차 세계대전 참호에서 포탄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팔다리와 얼굴 하부가 완전히 날아가고 시각, 후각, 청각, 미각이 모두 상실된다. 의학의 힘으로 그는 생명을 건지지만 살아있는 채로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걷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자신의 육체 속에 갇힌' 상태가 된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의사전달은 머리를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뿐이다. 그는 머리를 침대에 두드려 모스 부호로 S.O.S를 표시한다. 이 끔찍한 몸에 고립된 자신을 구해달라고. 그의 S.O.S는 "날 이 몸에서 구해달라" 혹은 "날 죽여서 이 고통을 끝내 달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뮤비 내 영화 클립에서도 나온다. 머리를 침대에 두드리는 조를 둘러싼 사람들의 대화이다. "뭐라고 하는 거요?" "SOS요. 죽여 달래요(Kill me). 계속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One의 가사는 이 주인공의 시점으로 쓰였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영화 클립들과 함께 밴드 연주 장면들도 상징적으로 연출한다.
● 어둡고 텅 빈 창고에서의 연주: 주인공이 갇혀 있는 자신이라는 감옥(Body my holding cell)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 영화 클립 중 하나인, 소년이 아저씨에게 "민주주의가 뭐예요? What is democracy?"라고 묻는 장면은 아마도 메탈리카가 이 노래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인 것 같다. 아저씨(영화 안봐서 누군지는 모른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젊은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거랑 관련이 있을 거다. It’s got something to do with young men killing each other, I believe."
● 후반부에서 갑자기 속도를 올려 빠르고 격렬한 연주로 기관총 소리를 표현한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바로 기관총 소리를 상징하는 것이며, 잔잔하고 비극적인 기타 인트로와 함께 이 곡의 리프(Riff - 노래를 대표하는 짧고 반복적인 악절)이다. 광란의 질주와도 같은 극한의 속주와 묵직한 다운 피킹으로 기관총이 난사되는 듯한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주인공의 절규와도 같은 폭발적인 감정 그 자체다.
이제 뮤직비디오를 보기 전에 가사를 보고 가자. (처음에는 영어 가사 그대로 복붙했다가 그래도 한국인이 한국말로 읽는게 더 직격탄일 것 같아 번역해서 올린다)
영문 가사출처: Lyricfind Lyrics | Metallica | One
한국어 번역: 젬순(Gemini)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이게 진짜인지 꿈인지 모르겠어
내 깊은 곳에서 비명이 느껴져
이 끔찍한 침묵이 나를 멈추게 해
이제 전쟁은 나에게서 끝났어
눈을 뜨고 있지만, 볼 수가 없어
내게 남은 것은 거의 없어
이제 현실은 고통뿐이야
죽음을 바라며 숨을 참아
오 제발 신이시여, 날 깨워주세요
자궁 속으로 돌아간 듯 너무나 현실적이야
내가 느껴야만 하는 생명이 주입돼
하지만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어
내가 살아갈 시간을 찾아봐
내 몸에 꽂힌 튜브를 통해 먹여지고
마치 전쟁 시대의 신기한 물건처럼
나를 움직이게 하는 기계들에 묶여 있어
이 생명을 내게서 끊어내 줘
이제 세상은 사라졌고, 난 오직 하나 뿐이야
오 신이시여, 날 도와주세요
죽음을 바라며 숨을 참아
오 제발 신이시여, 날 도와주세요
어둠이
나를 가두고 있어
내가 보는 모든 것
절대적인 공포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어
내 안에 갇혔어
몸은 나를 가두는 감방
지뢰가
내 시력을 앗아갔고
내 말을 앗아갔고
내 청력을 앗아갔고
내 팔을 앗아갔고
내 다리를 앗아갔고
내 영혼을 앗아갔어
지옥 같은 삶만 내게 남겼어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포격으로 부상을 당하지만, One에서는 지뢰(Landmine)라고 한다. 그래서 레딧 같은 데서는 이 'One'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지뢰를 밟을 확률'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One in ten thousand - 실제 지뢰로 희생당할 확률은 지역, 전쟁 중인가 아닌가, 민간인인가 군인인가에 따라 달라지므로 정확하지 않다)에서의 'One', 몇천 분의 1이라는 확률에서 그 1이 바로 나, 즉 차가운 숫자의 통계로 표현되지만 그 일을 당한 당사자 한 사람에게는 하나뿐인 내 목숨, 내 인생, 내 생명이라는 의미의 One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제 오피셜 뮤직비디오를 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라이브 연주는 1999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버전인데 오케스트라의 장중함과 비장미와 합쳐져 예술 그 자체다.
...세상의 모든 전쟁이 사라지기를 기도하며 이 글을 씁니다.
* 천재작가 김탱고(김경훈)작가님의 오마주 글도 보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