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애애ㅐㄱ객
내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온 건 작년 4월이었다고 한다. 즉 작년 봄까지는 나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는 뜻이다. 근데 왜 나는 3년 전부터 안 갔다고 생각했지? 생각보다 세월이 늦게 가나? 보통은 그 반대다. 한 일 년 됐나요? 하고 물어보면 아니요, 삼 년인데요, 세월이 그렇게 빠르답니다! 하는 게 보통인데 여긴 어찌 된 건지 모르겠다. 정신과 병원의 시간은 인간계와 다른 건지도 모른다.
어제저녁에 와서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므로 오늘은 적당한 시간에 가면 되는데 그래도 빨리 가서 진료받고 다른 일 보기 위해 오픈런했다. 명품매장 오픈런은 안 해봤어도 정신과 오픈런은 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의사쌤이 흰머리 좀 늘어난 거 말고는 쌤도 병원도 그대로였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잘 가꾼 화분들(실내인데 어떻게 이렇게 키울까? 조화 아니고 다 생식물이다), 잔잔한 음악(하지만 의사는 자기 방에서 슬플 때마다 힙합을 춰). 시발 나 여기 왜 데려왔어라는 표정의 청소년들과 그 부모들.
내 차례다. 나는 대기 중인 환자들이 빼곡한 것을 보고 오늘도 오랜만에 만나는 의사 앞에서 랩을 하고 말았다. 의사쌤은 뭔가 감동적인 비유를 들거나 함으로써 위로를 해주지는 않는다. 담백하게 지금 내 상황이 왜 객관적으로 우울할 만한가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원인이 되는 것(글쓰기 혹은 투고)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우선 무기력부터 해결해 봅시다,라고 하셨다.
약을 받았다.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 아래층 옷가게에서 옷도 하나 샀다(사실 나 이 집 단골인데 글 쓰기 시작한 후 몸이 비대해져서 맞는 옷이 없어 안 갔었다). 이 집의 특징은 전위적인 옷을 판다는 건데 살 땐 기분 좋다는 장점과 실제로는 너무 요란해서 입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근데 동네 아줌마들이 좋아해서 장사가 잘된다. 동네 옷가게 중 삼 년을 버틴 데가 없는데 여긴 십 년째 하고 있다. 암튼 옷 하나 사고 약을 먹었는데 아…
기억났다. 내가 왜 이 약 먹기 싫어했는지.
메스꺼워ㅠㅠ
알고 있었다. 이 메스꺼움. 익숙한 구역질. 왜일까? 좀 먹다 보면 나아지긴 하는데 오늘따라 오랜만이라 그런가 구역질이 너무 심해진다. 당장 집에 와서 누웠다. 메스꺼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입덧이 이런 것일지도. 임신도 출산도 안 해본 나로서는 비교 불가지만 대충 이런 느낌 아닐까.
예전 회사 우리 부서 여직원은 입덧이 너무 심해 버스에서 내려 토하고 오느라 지각한 적도 있었다. 그때 팀장새끼가 “남편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던가 집에서 빨리 나와.”라고 했지. 그리고 아무것도 못 먹어 얼굴이 반쪽이 된 애한테 “야 넌 집에서 완전 공주대접받겠다?(남편이 외동아들인 집 며느리인데 임신했으니 대접받겠다고 하는 소리임)“ 이랬다.
인성이 그따위였으니 나한테도 어떻게 했을지 굳이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 새끼때매 전 직장 그만둔 거 한 점 후회도 없고 덕분에 내겐 스코틀랜드 여행과 지금 다니는 회사가 남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번아웃의 나를 조건 없이 받아준 현 회사(연봉은 천만 원 내려갔지만). 그러니 나도 잘해야 하는데 지금 이러고 있다. 쓰레기처럼. 일 하나도 안 하고. 쓸모없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상한 글 같은 거나 몰래 끄적이면서.
기침할 때 먹는 사탕을 빨며 겨우 구역질을 참고 있다. 매운 걸 먹으면 좀 나을까? 근데 매운 거 먹기 위해 일어날 수가 없다. 이따 세탁기도 다 돌 텐데. 이 역겨움 어쩌지. 내가 천재라고 믿었던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과도 같다. 이 약 먹으면 정말 좋아지는 거 맞아? 메스껍기만 하고 기분 엿같은 거 그대론데? 아놔. 좀 더 버텨보자. 기분 더럽게 날씨는 또 겁나 화창하다. 좋아도 불만, 흐려도 불만. 결국 문제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