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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Dec 23. 2024

<시작>퇴사후 첫 아침이 밝았다.

결정된 백수가 아닌 결정한 새로운 인생을 첫날 아침이 밝았다.

당분간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27년을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맞이하는 첫째 날이다. 이미 나 스스로 그동안의 보상 같은 것을 바라지는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솔직히 특별한 감정 같은 것을 들지 않았다. 어제 인천에서 대구로 내려오며 딸은 나에게 “당분간은 고생하셨는데 아침에 푹 잠부터 주무세요”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난 ‘고마워~’하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럴 수 없다. 아니 그러지 않을 것이다. 


정말 어렵게 만든 아침 기상 루틴(명상, 독서)을 이렇게 다른 이유를 대서 깨고 싶지 않았다. 늘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그 문장이 떠올랐다. ‘오늘 떠오르는 태양과 내일 떠오르는 태양은 사실 같은 것이다.’(물론 평소에 내가 했던 말의 의미와는 지금 나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같은 상황이며 같은 현실이다. 내 생각만 달라졌을 뿐이다.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고, 이제는 수입이 없다는 부담감이 있고, 그러나 그것도 아직은 큰 차이를 모르겠다. 그러니까 단지 오늘 아침이 어제와 달라진 것은 내 생각 말고는 현실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빨리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정말 많이 준비해왔다.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 정말 의미 없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런 의미 없는 행동들이 모여 내 인지력을 저하시키고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고 또 그런 지친 마음들이 모여 어렵게 만들어 놓은 습관과 루틴을 이전의 편안하다고 느끼는 무기력한 삶으로 나를 돌려놓을 것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정말 중요한 하루의 시작인 것이다.


명상을 마치고 독서를 시작했다. 지난주에 김장과 송별회 등을 참석하느라 독서를 제대로 하지 못했더니 영 마음이 불편하고 정말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묘한 감정으로 인해 사실 많이 불편했다.


새로 만들기 시작한 서재를 완벽히 내가 구상한 레이아웃대로 만들고 처음으로 맞는 새벽이다.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ㅎㅎ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는데 그동안 사무실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다름 아닌 책을 넘길 때마다 콧속으로 종이 냄새가 스며들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입한지 오래된 책이라 그런 것인가 하는 호기심에 얼마 전 구입한 책을 꺼내 맡아 보았더니 역시 종이 냄새가 어두운 방을 비추는 스탠드 조명과 함께 서재의 한편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유독 오늘만 책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왜 오늘은 이렇게 더 강하게 내 코를 자극할까? 하는 생각이 났지만 그에 대한 나 스스로의 답은 많은 고민 없이 내릴 수가 있었다. 바로 내 감정의 상태가 달라진 것이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을 때는 주위의 모든 것이 업무과 관련된 풍경들이고 직원들이 언제 출근할지 모르는 약간의 긴장감도 있었다. 


출근 시간 전까지만 읽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 같은 것도 작용했기 때문에 편한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는 직원들의 채취와 주변의 다양한 채취가 늘 같은 공간에 뒤섞여 있고 늘 익숙한 냄새만 맡아 오던 나의 후각이 책 냄새까지 알아챌 정도의 감정 상태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며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했다.


와이프가 출근 준비를 한다고 일어나 씻는다며 방문을 노크한다. 웃으며 잠시 나가 준비하는 와이프의 모습을 보니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비록 나는 현재 자의적인 실업을 해서 당장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와이프가 돈을 벌지만 오히려 혼자 직장에 다닐 정도로 좋아진 모습과 화장을 하며 앉아 있는 와이프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행복하다.


지난 주말 몸이 피곤했는지 감기 증상이 있는 듯 잔기침을 하는 와이프에게 약을 챙겨 먹이고 홍삼진액을 한 숟가락 입속에 넣어 주었다. 쓴 약을 잘 먹지 못하는 와이프가 평소 같으면 절대로 먹지 않을 홍삼을 아무 말 없이 받아 삼키는 모습을 보며 아프고 난 후에 건강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구나 하며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버스 오는 시간에 맞춰 나가는 와이프를 오늘 처음으로 꼭 안아주었다. 수고해~라며 말을 건넸다.


뜬금없는 포옹에 와이프가 기겁을 했지만 뿌리치지 않는 것을 보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커피 한 잔을 타서 책상에 다시 앉았는데 와이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버스를 놓쳤다고 한다… 이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가 20분 후에 오는데 그럼 지각이라고 태워달라는 전화였다. 


뭐 화나고 짜증 난다는 감정이 하나도 들지 않고 바로 내려가 와이프가 있는 곳으로 가서 픽업을 한 후 직장에 내려주고 돌아오며 이 상황도 내 감정 상태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좀 일찍 나가지 그랬냐고 짜증 섞인 말투로 대응했을 텐데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우리 부부는 웃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퇴직연금을 수령하기 위한 통장을 만들어야 해서 딸이 전세 대출 때 도움받았던 은행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해 놓아서 10시 30분에 나와 은행에서 상담을 했다. 생각보다 너무 나이가 젊으셔서 좀 놀랐다는 은행 직원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을 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퇴직을 하는 내 모습을 안타까워할 것이란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에 신경 쓰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젠 알기 때문에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현실도 내가 회사에 강제 퇴사 또는 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미래를 위해 자진 퇴사를 한 것을 저들은 모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쓸데없는 생각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은행 업무를 마치고 차로 돌아와 인근 주유소로 향했다. 주유를 하고 자동세차를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타던 벤츠였다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주요소에 있는 자동세차기에 줄을 서서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비록 중고차 지만 처음 하는 세차를 기계에 맡긴 다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내 경제적인 상황과 중고차라는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세차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간단한 저녁 찬거리를 샀다. 역시나 물가는 비싸다. 계란 한판에 이마트에서 8,000원이 적혀 있는 가격표를 보고 결국 카트에 담지 못하고 다른 김치찌개용 목살 두 팩, 밀키트 떡볶이 두 개, 냉동 만두 3 팩 만을 구매하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결국 계란은 집 앞 마트에서 30개에 7,200원에 구매를 해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사 온 짐을 정리하고 바로 청소를 시작했다. 빨래는 어제 했기 때문에 양이 적어 청소기를 돌리고 물 걸레로 마무리를 한 후 운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러닝머신을 했지만 오늘은 실내 자전거로 처음 하는 운동이었다. 훨씬 힘들고 같은 시간에 땀 배출량이 훨씬 많아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아리에 쥐가 나는 느낌이 날 정도로 30여 분 땀을 실컷 내고 운동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운동을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던 나 자신을 살짝 꾸짖고 또 그런 마음을 이겨내고 운동을 한 나 자신에게 칭찬을 했다. 자투리 시간에 독서를 하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얼른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다. 


6시 즈음 와이프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웃어주었더니 첫 질문이 ‘그래 첫날 보낸 소감이 어때?’하는 말이었다. 그냥 웃으며 그냥 하루 더 쉬는 연휴 같았어~하는 말로 웃으며 마무리했다. 어제 인천에서 가져온 순무김치, 거 무침, 그리고 잡채 등을 꺼내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하루의 일과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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