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20일째, 햇살이 유난히도 반갑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창문을 열고 들어온 바람에 아직 덜 깬 마음까지도 조용히 일으켜 세웠다.
제목: 꽃.3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명상을 마치고 나면 늘 그렇듯이 두 사람은 분주한 몸짓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나는 조용히 그들의 뒷모습을 배웅한 뒤 책상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오늘 오전에 완독했다. 곧 여름인데도 겨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계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시간이었고 마음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되었지만 지겹지 않은 이야기였다. 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더 선명한 메시지를 가진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게 느껴졌다.
운동을 시작하며 오늘의 영상은 내가 감명깊게 읽었던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를 선택했다. 요즘 그런 생각이라는 키워드의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예전 영상을 다시 보며 나만의 단어를 찾기도 하고 책도 다시 상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
그래서 오늘 찾은 키워드는 바로 “노동”이라는 단어였다. (내 글 내가 스포하게 되나?)
신기한 것은 키워드를 찾고 나서 책의 내용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책을 직접 읽었을 때는 이 노동이라는 단어에 집중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이 노동이라는 의미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노동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구조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움직이는 이 시간도 노동이자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마친 뒤 시험을 보고 일찍 돌아온 막내와 다시 대학 진학에 대한 상담을 나누었다. 당분간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하기로 했는데 막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어제 내가 꼰대 같은 말을 한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사과를 하고 싶었다. 물론 오늘은 단디 마음먹었다. 내 말이 아닌 막내의 말을 들어보기로.
어제 보다 진지한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더 편한 기분으로 막내와 정말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대학 선택은 너의 몫이고 결국 선택의 과정에서 부모는 조언만 해줄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선택의 책임이 따라온다는 것이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막내가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대화 같은 짧은 상담을 마치고 막내는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 문을 열고 점심 메뉴를 고르며 평소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낙천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실 나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은 막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아들은 아빠랑 이야기하고 나면 불편하지 않니?”
막내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빠가 틀린 말 하신 것도 아니고 불편할게 뭐있어요. 그리고 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려고 해요. 부정적이면 뭐해요. 나만 힘들지 ㅎㅎㅎ ”
그 한마디에 오늘 나 스스로 또 한번 큰 깨우침을 얻었다. 가르침과 배움은 나이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어린 줄 만 알았던 막내의 초 긍정의 메시지 덕분에 난 오늘도 반성과 함께 깨달음을 얻는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걸 부정과 걱정의 이름으로 가슴에 품고 지냈던날들이 잠시 떠올랐다.
결국 어제와 오늘의 대화에서 나만 혼자 걱정하며 보낸 이틀이었던 것이다. 수 많은 책을 보며 걱정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말을 눈과 머리에 새겼건만 결국 난 작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막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점심을 먹는다. 결국 저녀석은 어제도 콧노래를 부르며 잤을 것이다. 사실 난 잠을 조금 설쳤는데.... 오늘은 막내에게서 큰 깨달음을 배운 하루였다. 그리고 다시한번 걱정에 대한 나만의 주문을 외웠다.
"오늘 걱정은 내일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모레하자!"
오후에는 대구의 산불이 다시 발화됐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이미 진화된 줄 알았던 불길이 다시 번지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요즘이다.
소망하는 건 단 하나 모두가 무사히 일상을 지킬 수 있기를...
퇴근한 아내는 내일이 근로자의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편한 얼굴이었다.
덕분에 저녁은 막내가 좋아하는 치킨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무겁지 않은 대화 그리고 편안한 식사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나는 다시 책상으로 향해 오늘 완독한 책에 대한 서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용한 손끝의 움직임 속에서 하루가 천천히 정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