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일. 내가 만약 글을 쓴다면...

by 마부자

금주 128일째, 봄 햇살은 오늘도 어김없이 커튼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다.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줄기 에 눈이 먼저 반응했다. 순간 단지 아래 입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빌딩 숲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작은 새의 소리는 아침이라는 단어보다 ‘낯설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어버이날, 이제는 내가 그 감사를 받는 입장이 되었다. 아빠로서, 어버이로서, 무엇을 잘해왔는지 또 무엇을 놓치고 지나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문득 이 자리에 서 있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제목: 어린 봄

어리 봄은 나뭇가지 위에
새 울음 속에

더 어린 봄은
내 마음 위에

오늘도 나는 너를 바라보며
이렇게 울먹이고만 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아이 셋을 키우며 나는 오랜 시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속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삶의 자동차는 절대 멈추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엔진이 꺼질 리 없다고 고장날 틈도 없이 굴러갈 거라고 생각하며 달려만 갔다. 옆자리에 있는 또 다른 소중한 사람의 표정조차 살필 틈 없이...


하지만 어느 날 이유를 따질 시간도 없이, 삶의 정중앙에서 그 ‘우리’가 멈췄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돌아온 다음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면 이제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반백 년을 넘겨 살아본 뒤에야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의 호흡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를 결정하고 무작정 책을 집어 들었다. 뭔가를 계획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냥, 읽기 시작했다. 이제야 겨우 멈춘 속도 속에서 내가 누군지 조금씩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삶을 배워야 했다.


익숙했던 것들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삶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질문은 막연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전의 삶이 전력질주였다면, 지금은 멈춰 선 채 자신에게 되묻는 시간이었다. 그 질문과 함께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답이 금방 나오지 않아도 그 질문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다.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던 장면들이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혼시절, 아내와의 이야기를 가만히 적어 라디오에 사연으로 보냈던 기억. 때로는 당첨도 되고, 작지 않은 선물을 받기도 했던 그 소소한 기쁨들.


그리고 군 시절, 부대 연극을 준비하며 밤새워 시나리오를 쓰던 순간. 그리고 우승을 하여 포상휴가를 받아 군 생활내내 장기자랑을 하면 부대 전체 시나리오를 써줬던 기억들 까지.


그때는 단순한 재미였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그 장면을 꺼내보니,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단지 잊고 지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책을 좋아했던 건 오래전부터였지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동안 글을 쓰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했던 내가 문득 ‘내가 글을 쓴다면’이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고 아주 천천히 스스로에게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정말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래서 아주 먼 미래에 출간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주저 없이 정해져 있었다.


아내와 나, 철없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우리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내보고 싶었다.


아내와 나는 열아홉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만났다. 아내는 서빙을 했고, 나는 주방을 맡았다. 오프 시간이 될 때까지 함께 일하다 밤 12시에야 퇴근하던 나날들. 그렇게 자연스럽게 조용하게 연애가 시작되었다.


스물한 살, 군에 자원했다. 제발 그 곳만 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끝내 도착한 곳은 강원도 철원, 오지 중의 오지였다. 입대 전날, 아내는 끝까지 내 곁을 지켜주었다. 우리는 군화와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제 우리 사랑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결국 터져나온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강원도 철원에서 인천으로 닿을 수 있는 길은 삐삐와 공중전화뿐이었다.


결국 입대한 이후, 우리는 그렇게 손편지로 연애를 시작했다. 자대에 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주고받은 편지를 시작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아내가 보낸 편지들(난 정성껏 한장한장 넣어서 보관했는데...)

적게는 하루에 한 통, 많게는 세 통씩 아내는 편지를 보냈고, 나 역시 매일 저녁 손에 펜을 쥐었다. 글자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일주일에 다섯 통, 여섯 통씩 보냈다. 그렇게 쌓인 편지는 어느새 서로 1,000통이 넘었다.


뜨거웠던 첫사랑을 설명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단단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성은 소문이 되었고 어느 날 대대장님은 ‘배려 아닌 배려’라며 특별휴가를 내주기도 했다.


지금은 잊힌 MBC ‘우정의 무대’ 애인 상봉 코너에도 출연 허가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는 웃을지 몰라도 그 시절의 우리 사랑은 그렇게 전쟁처럼 진지하고 절절했다.


아내의 편지는 내가 제대하는 날까지 클리어 파일 열 권이 넘도록 모였다. 휴가 때마다 들고 나와 집에 고이 가져다 놓았고 그 중 마지막 두 권은 제대하는 날 들고 나오다가 헌병에게 적발되어 소실되었다. 그때의 허망함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마부자가 보낸 편지들(내 껀 재활용 봉투에 담겼다 ㅠㅠ)

그렇게 아내와 나의 손편지 2,000통이 30년의 세월을 장롱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몇 일전 편지들을 조용히 꺼내었다. 그 오랜 추억의 상자를 여는 일은 마치 시간의 봉인을 푸는 일처럼 조심스러웠다.


그 안에는 철없는 청춘이 있었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단단했던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그 오래된 편지들을 하나둘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다시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잊혔지만 글자는 잊지 않고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 속에서 급하게 쓴 흔적들 속에서 그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지금의 내가 다시 쓰고자 하는 글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써둔 이야기일는지도 모르겠다.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상자 속 우리들의 오래전 시간들이다. 그러나 지금 내 손끝을 통해 다시 써지는 글은 오래전 시간이 담긴 지금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우리가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고 얼마나 부지런히 서로를 기다렸는지 그리고 그 마음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기억을 다시 살아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편지는 그 시절의 우리를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기에 거기엔 어떤 허세도 과장도 없었다. 오직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티기 위해 서로를 붙잡기 위해 써내려간 문장들이었다. 때론 눈물 젖은 편지지도 있었고 때로는 네잎클로버가 들은 편지지도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로 남기고 싶다.

이제는 조금 느려진 손으로, 그러나 더 깊어진 마음으로.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살아 있는 말들로 남기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연애담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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