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오전 독서를 마친 후, 창밖에서 밀려든 잿빛 하늘과 방 안에 스며든 습한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밟기 시작했다.


비는 오후부터 조용히 내리기 시작했고, 창밖의 풍경은 고요하게 젖어갔다.

오늘도 롭 다이얼의 <행동은 불안을 이긴다> 영상으로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소파에 멍하니 누워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은 ‘행동’이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라
빈둥대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 선택도 당신의 자유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지금 편한 삶을 선택한 대신
나중에 더 힘든 삶을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행동.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저자는 다르게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행동이며, 그것 또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다시 말해, 인간은 존재하는 그 순간에도 이미 행동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는 선택도, 결국은 '하지 않음'이라는 행동으로 귀결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주 ‘쉬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 상태는 결국 우리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다른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지나친 하루들이 쌓여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삶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있곤 한다.


나는 지금 암흑의 존재를 몸속에 가지고 있고, 치료를 앞두고 있다. 병은 육체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사건 이후의 모든 반응은 내 선택의 문제였다.


두려움 앞에서 움츠러들 수도 있었고, 혹은 그것을 딛고 매일 한 걸음 나아갈 수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운동을 멈추지 않는 것, 책을 읽는 것, 나의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치료를 위한 행동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 삶을 살아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행동’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이 곧 행동이 된다. 문제는 그 행동이 의식적인가 무의식적인가의 차이다.


무의식적 행동은 종종 후회와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의식적인 행동은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그것이 나를 삶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세계에 내던져진 이상, 인간은 그가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있다.’ 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하고 실천하는 삶의 과정 속에 있다고 보았다. 행동은 단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는 태도다.


그렇게 보면, 소파에 누워 빈둥대는 것도, 그 순간 인생에 대한 책임을 잠시 유예한 결과일 수 있다. 책임을 유예한 삶은 반드시 그 대가를 나중에 치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게으름을 꾸짖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설계하고 있는지, 내 하루의 선택이 어떤 내일을 부르고 있는지를 돌아보자는 제안이다.


병이라는 낯선 사건이 내게 찾아왔을 때, 나는 그저 쉬고 싶었다. 세상이 정지되었고, 내 마음은 지쳐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고, 글을 쓰고, 독서를 하는 이 단순한 행위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행동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작고 느린 한 걸음일지라도, 내가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면 그건 나를 살리는 행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동은 곧 의지다. 의지란 고통을 버텨내는 힘이 아니라, 무너지는 순간에도 다시 한 번 일어나는 그 작은 의식의 깃발이다. 나는 지금 그 깃발을 매일 들고 있다.


나는 오늘 ‘행동’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행동은 내가 끊임없이 질문해온 삶에 대한 가장 명료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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