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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Jan 06. 2025

<일상>1월 5일 일요일의 상념

"소한"의 추위에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명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표를 쓰며 하루를 그려본다. 책을 읽고 감상을 적어보는 시간은 내 안에 조용히 쌓여가는 지식을 확인하는 과정 같다. 그리고 타인과 연결되는 공감의 순간, 댓글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작은 의식이 뒤따른다. 이 모든 루틴은 마치 나를 위한 예비 운동 같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 작업처럼.


어제 읽었던 책, <어떤 비밀>, 그 이야기가 내 안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짧은 영상을 제작하며 책의 내용을 곱씹었다. 한 장면, 한 문장 속에 담긴 뜻을 떠올리는 동안 책이 내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마치 작은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느낌. 이야기를 단순히 읽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나의 해석을 덧붙이고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은 나를 더 깊이 성찰하게 한다.


이렇게 루틴을 마치고 나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 시간을 쌓아가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대답은 없지만, 그 질문만으로도 하루의 시작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가족, 일, 사랑, 그리고 작가로서의 자기 확신과 관점을 기록했던 그녀의 20년간의 일기. 그것이 에세이로 남아 그녀를 성장시키는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니, 오늘의 일기는 평소와 다르게 마음가짐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마치 내가 써 내려가는 이 글이 언젠가 내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의 글을 통해 깨달았다. 일기는 단순히 오늘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증명하는 고백서이자 내 삶을 고증하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다. 꾸밈없는 사실 위에 진솔한 감정을 얹어 써 내려가는 매 순간, 나의 역사는 그렇게 한 줄씩 쓰이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내 생각과 일상을 있는 그대로 적으려 한다. 편집되지 않은 말투와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까지 모두 기록하려고 한다. 언젠가 이 기록이 다시금 꺼내어질 날이 온다면, 그것은 단순한 추억의 복원이 아닌 내 진짜 모습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존중이다. 나는 지금 내가 쌓아올리는 이 기록들이 미래의 나를 어떤 모습으로 증명해 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기록 속에서 내 현재는 분명하게 살아 숨 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일기를 쓰는 오늘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매일의 행적을 기록하는 일이다. 하루 동안 내가 걸었던 길, 느꼈던 감정, 그리고 떠올랐던 생각들이 일기의 재료가 된다. 그것은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글쓰기가 아니다. 오늘의 나를 사실로써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나 자신을 직면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런 진실한 기록의 순간에도 가끔씩 유혹이 찾아온다. 일기를 쓰려 할 때면 어딘가에서 기웃거리는 달콤한 충동이 나를 덮친다. '조금 더 멋진 이야기를 적어볼까?' '어쩌면 이렇게 쓰면 더 근사하게 보이지 않을까?' 진솔한 나의 삶을 기록하겠다는 다짐을 잠시 잊게 만드는 유혹. 그 유혹은 과거의 나를 포장하거나, 오늘의 나를 약간 과장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런 유혹을 받아들인 순간, 내 기록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닌 허구가 되어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일기를 쓰는 것이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그 유혹은 내가 얼마나 진솔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작은 시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일기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어야 한다고. 날 것 그대로의 내 삶이, 어쩌면 별것 없어 보이는 내 하루가 언젠가 무언가의 의미로 다가올 수 있도록. 그렇게 꾸밈없이 내 하루를 기록하는 순간, 비로소 나는 내 삶의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유혹의 순간이 내게 다시 한번 진정한 기록의 의미를 떠올리게 해준다. 결국 나는 오늘도 진솔함을 선택하며 일기장을 펼친다.


내가 세운 계획을 지키지 못한 날, 일기를 쓰려면 어김없이 유혹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잖아, 그냥 했다고 적으면 어때?" 작은 속임수처럼 들리지만, 그 속삭임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다. 더 놀라운 건, 그 순간 유혹에 넘어가 "했다"고 적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마치 그 일을 진짜로 했다는 착각이 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성취감마저 따라온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믿게 되는, 이 기묘한 현상은 나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운 심리적 역설을 만들어낸다.


이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른다. 내가 지키지 못한 계획과 나의 신념, 즉 '나는 계획을 지키는 사람이다'라는 믿음 사이에서 불일치가 생길 때, 그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행동하지 않았어도 행동했다고 믿어버리고, 그 믿음을 통해 심리적 평형을 찾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내 삶에 대해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데 있다. 결국, 나의 기록은 사실에서 멀어지고 허구의 산물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나는 일기를 쓰는 목적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일기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고 허구를 기록한다면, 그 기록은 나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아닌 왜곡된 판타지가 되고 만다. 그 허구 속에서는 나의 실수도, 나의 나약함도, 내 실패도 사라진다. 그렇게 감춰진 현실 속에서 내가 성장할 여지도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상상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힘이다. 하지만 상상이란 내 현실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한 도구이지, 현실을 왜곡하거나 감추기 위한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상상과 허구는 다르다. 상상은 나의 현실 위에서 펼쳐지는 확장된 가능성이지만, 허구는 내 현실을 부정한 채 만들어진 또 다른 가면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비록 어떤 날은 실패로 가득하고, 어떤 날은 계획을 지키지 못해 실망스러울지라도, 그 날의 진실을 그대로 마주하겠다고. 그것이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고,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마치 작은 실패와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그것이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처럼.


진실을 적는 일기는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진실 속에서 나는 나의 내면을 발견하고, 다음 날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일기만이 내 삶의 다큐멘터리가 될 자격이 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허구, 즉 나를 속이는 거짓된 기록이 얼마나 치명적인 함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나 자신에게 경고하기 위함이다. 허구의 일기를 쓰면 순간적으로 기분은 좋아질지 모르지만, 그 만족감은 나의 행동을 멈추게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실행력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그 허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내가 움직이는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문제는 이런 기록이 반복될수록 허구의 일상은 습관이 되고, 결국 나를 발전시키기는커녕 변화하고 있다는 착각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쌓아 올린 기록이 성장의 증거가 아닌, 공허한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허상이 깨진 뒤 남는 것은 나를 성찰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빈 손과 한편의 불완전한 소설뿐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단순한 흥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 소설이라 할지라도 허구의 이야기가 진실처럼 꾸며지는 경우는 없다. 역사적 사실과 그 관계를 고증하고, 작가의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독자와 공감하고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좋은 책은 그렇게 탄생한다. 진정성 없는 허구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니 진실된 일기를 쓰는 것은 단지 기록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작업이고, 나의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날것 그대로의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꾸준히 적어 내려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진실된 일기를 쓰기로 다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진실된 기록은 단순히 하루의 행적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내면과 마주하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어떤 날은 부끄러운 실패로 가득할지도 모르고, 어떤 날은 평범한 이야기만 채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날들조차 모이고 쌓여, 결국 나를 이루는 역사가 된다.


그래서 나는 허구의 달콤함에 유혹되지 않기로 한다. 꾸준히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적어 나가겠다는 이 다짐이야말로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그렇게 쌓아 올린 기록이 결국에는 나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1월 5일, 오늘은 24절기 중 소한이다. 절기로 보면 대한이라는 마지막 겨울 절기가 남아있지만, 실질적으로 소한이 가장 추운 날로 여겨진다. 입춘이 다가오는 시점에 겨울은 마지막으로 차가운 숨을 몰아쉬는 듯하다. 대한이라는 이름이 더 큰 추위를 암시하긴 하지만, 최근에는 이상하게도 소한이 대한보다 매섭게 추운 날이 많다. 어쩌면 자연의 규칙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는 수도권에 함박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화면 속 도시의 풍경은 마치 겨울의 동화를 그린 것처럼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차갑게 빛나는 눈길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이어지고, 나무들은 잔뜩 웅크린 채 눈꽃을 피우고 있었다. 눈은 어쩐지 사람을 멈춰 서게 만든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창밖을 바라보게 하고, 그 속에서 겨울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소한의 추위 속에서도 계절은 앞으로 나아간다. 차가운 공기 속에선 아직 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지만, 입춘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한결 따뜻해진다. 이런 날에는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사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문득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여전히 직장을 다녔다면, 이 소한의 시기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지난주에는 본사에서 열렸던 시무식에 참석했을 것이다. 시무식을 마치고 동료들과 술 한 잔을 나누며 새해의 안부를 주고받고, 오늘쯤이면 대구로 내려와 있었다. 그리고 내일, 월요일에는 직원들을 불러모아 회사의 새로운 지침과 목표를 전하는 미팅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다음은 언제나 그랬듯이 반복되는 업무의 연속이다. 연간, 월간, 주간 계획을 차례대로 세우고, 직원들의 인사평가서를 작성하며, 개인별·팀별·부서별 매출 목표를 기준으로 한 활동 계획을 수립한다. 이런 루틴은 이미 27년간 몸에 밴 습관이었다. 아마 올해가 28년째였다면 여전히 똑같은 흐름 속에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생활을 돌아보며, 내가 그 일상을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27년을 채워준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매년 소한 즈음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던 시무식의 풍경, 직원들과 나누었던 대화들, 그리고 계획서를 쓰며 머리를 싸맸던 기억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형성한 토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그런 삶은 나름의 규칙과 안정 속에 있었지만, 동시에 매년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반복이기도 했다. 그 반복이 주는 안도감과 익숙함이 때로는 나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붙잡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직장을 다녔던 과거의 나는 바쁘고 치열했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여유롭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선택한 새로운 삶의 방향임을 안다.


소한의 날, 문득 지난 27년간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느낀 것은, 그 시간 역시 소중하고 의미 있었다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는 나의 역할을 다했고, 그 역할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겠지만, 그 과거의 나를 부정하지 않기에, 오늘의 내가 더 단단히 설 수 있는 것 같다.

소한의 추위 속에서도 따뜻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내 마음 한 켠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27년간의 되풀이되던 일상을 열심히 살아왔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년 초, 소한 즈음에 시작되던 시무식과 이어지는 계획의 연속, 마감의 압박,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분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 순간 나를 단단히 만들어주었고, 책임감을 배우게 했으며, 내게 성취감이라는 귀한 감정을 선물해주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 도돌이표 같은 일상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익숙함은 때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도돌이표 같은 삶은 어쩌면 나에게 안전한 울타리였을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은 안정감을 주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 살아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 울타리 너머의 세상은 보지 못했다. 반복 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갈증을, 그리고 어딘가 더 먼 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도돌이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반복을 거부한다고 해서 과거의 내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들은 내가 새로운 길로 나아갈 힘을 주었고,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그 27년의 반복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새로운 선율을 찾아 나섰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여전히 낯설고 두렵지만, 동시에 설렌다. 도돌이표를 벗어나는 것은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겠다는 선언이다.


이제 나는 매일이 새롭다. 어제와 같지 않은 오늘, 그리고 어쩌면 조금 더 나아진 내일을 꿈꾼다. 도돌이표를 반복하던 과거의 삶도,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지금의 삶도 모두 나의 것이기에, 나는 두 삶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에도 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입춘이 오려면 추운 겨울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 겨울의 절정은 바로 지금, 소한의 시기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가장 추운 1월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7년간 매월 10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월급, 그것은 때로 당연한 듯 느껴졌고, 때로 나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반이었다. 그런데 이번 달부터는 그 월급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첫 번째 달이다.



작년에 읽었던 심은숙 작가의 <뉴업의 발견> 속 한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월급에 기대어 살지 마라.”

이 문장은 당시 내게 비수처럼 꽂혔다.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이 문장을 읽으며 등골이 서늘해지고, 마음 한구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던 기억이 선명하다. 월급에 기대어 살았던 내가 언젠가는 그 기대를 내려놓아야 할 날이 올 거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날이 왔다. 월급이 없는 첫 번째 달. 앞으로 5일 후면 늘 그렇듯이 카드사들이 나의 통장에 달려들어 하이에나 처럼 몰려들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겨울지 뻔히 예상되지만, 나는 준비할 수 있는 만큼은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마쳤다 한들, 이런 현실은 마치 소한의 추위처럼 날카롭고 냉정하게 다가온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내가 소한의 계절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날. 그러나 추위 속에서도 나는 봄을 꿈꾼다. 소한이 아무리 차갑고 매서운 계절이라 해도, 그것은 입춘을 예고하는 신호다. 지금 내가 맞이하고 있는 이 추운 시기도 결국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일 것이다.


월급이 없는 첫 번째 달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결심을 다진다. 과거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기로 한 그 선택을 스스로 믿어보기로 한다. 비록 지금은 추위가 마음을 얼리고 손발을 곱게 만들지만, 이 겨울을 지나면 내게도 분명 따뜻한 햇살이 비출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의 이 소한은 내게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내가 이 겨울을 잘 견딘다면, 입춘이 왔을 때 나는 또 다른 나로 거듭날 것이다. 그 봄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내년의 "소한"은, 어쩌면 오늘보다 더 강한 추위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년의 내가 올해보다 더 단단히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올해 이 추위를 견디며 배운 것들, 내가 내린 결심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다져진 내 의지가 내년의 나를 지킬 것이다. 어떤 강추위가 몰아쳐도 움츠러들지 않고, 소한에서 대한을 지나 입춘으로, 그리고 따뜻한 봄을 넘어 입추까지 나아갈 것이다.


나는 이 겨울을 견디는 동안 단순히 추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음을 느낀다. 얼어붙은 현실 앞에서 멈추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계절은 지나갈 것이다.’ 추위는 영원하지 않다. 봄은 오고, 여름은 반드시 따스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2026년의 소한, 나는 이 일기를 다시 꺼내어 읽을 것이다. 오늘의 내가 겪고 있는 이 추위와 두려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려는 나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큰 자신감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오늘의 이 일기를 자랑스럽게 읽으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잘 견뎠고, 잘 해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성장했다.”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내가 싸우는 이 추위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추위 속에서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믿고 버텼는지, 얼마나 더 나아지고자 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추위는 내가 내면적으로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증명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겨울은 춥지만, 그 속에서 뿌린 씨앗은 더 강하게 자란다. 내년의 소한,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소한들은 내가 얼마나 단단해졌는지를 보여줄 또 다른 증거가 될 것이다. 지금은 아직 추위 속에 있지만, 나는 이미 다가올 따스한 봄의 기운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겨울을, 그리고 이 일기를 자랑스러워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늦은 점심을 마치고 볼링장으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소한"답게 날씨는 매섭고 바람은 옷깃을 파고들었다. 요 며칠의 비교적 온화했던 날씨가 무색할 만큼 차가운 공기가 사방에 가득했다. 하늘은 묵직한 회색빛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곧 무언가 쏟아질 듯한 공기 밀도가 느껴졌다. 이런 날씨는 어쩐지 사람의 마음까지도 잔뜩 웅크리게 만든다.


볼링장에 도착하니 최근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 다시금 밀려왔다. 동호회 사람들이 이제는 주말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일곱 번씩 볼링장에 오던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는데, 그 열정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한때는 빛났던 그 순간들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걸 목격하는 건 쓸쓸한 일이다. "그저 즐기기만 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예상보다 일찍 볼링을 마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말 볼링이 끝나고 늘 이어지던 동호회 사람들과의 저녁 약속도 없는 요즘, 아내는 조금 허전한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저녁 외식을 제안한다. 메뉴는 고기.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은근히 반주를 원하는 마음이 스며있음을 나는 눈치챘다. 평소 같으면 아내는 맥주 한두 잔, 나는 소주 두 병을 비우고, 집에 와서 맥주로 혼술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금주를 결심한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술 없이 고기 괜찮겠어?"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진짜로 술 안 마시려고?"


당연히 이제 술은 마시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하자, 아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메뉴를 바꿔 뼈해장국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그래도 오늘은 한 잔 괜찮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설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유혹을 이겨냈다. 술 대신 따뜻한 해장국으로 속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사실에 기반한 일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난 의지가 있다. 난 이겼다. 난 할 수 있다."


얼마 전 들었던 이 문장이 오늘 나를 이끌었다. 오늘의 이 작은 승리는 나의 의지를 증명하는 한 걸음이다. 소한의 추위는 여전히 매섭지만, 나는 그 추위를 이겨내며 마음속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있다. 지금은 단지 한 번의 선택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런 작은 순간들이 쌓여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오늘은 내가 나를 믿고, 나를 지켜낸 날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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