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공을 위해 평생 잊지 말아야 할 신념을 팔에 새겼다.
하루의 문을 여는 루틴은 내게 작은 의식과도 같다. 명상을 하며 마음의 고요를 찾고, 목표를 적으며 하루를 향한 의지를 다진다. 글을 읽고, 공감과 댓글로 누군가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이 일련의 과정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루틴을 마치며 생각했다. 이제 새로운 책을 펼칠 차례인가? 하지만 잠시 멈췄다. 오전에는 딸과 중요한 약속이 있었고, 책을 읽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오후로 미뤄졌다.
애매하게 남은 시간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전 9시 30분까지의 짧은 여유는 차라리 집중하기 좋은 틈새 같았다. 나는 현재 브런치에 연재 중인 글을 다시 열어, 다음 주에 올릴 사연의 초고를 정리하고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안 떠오른 문장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어제와 같은 글이면서도 새로운 감정이 얹혀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오랜 시간 꽁꽁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용기로 열어보니, 그 안에는 내가 찍어 두었던 다큐멘터리가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오래된 필름처럼 희미할 줄 알았던 그 시절의 감정과 느낌, 심지어 아내의 한마디 한마디까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한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그 순간 나는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해야만 했다.
아픈 역사는 오랜 시간 기억 속에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픔을 넘어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 된다. 역사를 잊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말이 이렇게 가슴 속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요즘 나는 아내의 병상일기를 다시 읽으며 그 말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
그 일기 속의 기록은 아내의 고통이었고, 나의 무력함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함께 싸웠던 흔적이자, 그 시간을 이겨낸 나와 아내의 삶의 증거였다. 잊고 싶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들, 그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은 삶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과 사랑의 의미였다. 그 아픔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나는 지금의 나를 다잡는다. 과거의 다큐멘터리를 가슴에 품고, 오늘도 나는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내려간다.
날이 밝고 해가 창가의 상단을 비춰갈 때 즈음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자기야, 배고파.”
그 말은 언제나 한결같다. 마치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처럼, 내가 글을 쓰고 있든, 생각에 잠겨 있든, 그녀는 꼭 그렇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오늘 그 말은 조금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 내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다큐멘터리가 재생되고 있었다. 아내는 병상에서 죽음과 싸우던 모습 그대로였고, 나는 오로지 그녀가 회복되기만을 바라던 절박한 순간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그 다큐멘터리를 깨끗이 지우는 한 마디. “배고파.”
아내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끌어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그녀는 어제와 다름없는, 건강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과거의 무거운 기억에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짜증도, 귀찮음도 아닌, 따스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잠시만 기다려. 아침 줄게.”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볍고도 묘하게 행복했다. 스스로 놀랐다. 왜 이렇게 사소한 순간에 행복을 느낄까? 그저 아내가 나를 부르고, 아침을 준비하라는 말 한마디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분명했다. 불과 1년 전, 나는 아내가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병상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아내를 보며 그저 그녀가 살아남아 주기를 기도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평범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특별히 좋은 일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아내가 곁에 있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그렇게 나는 오늘, 너무나 평범하고 특별한 아침을 맞이했다.
아내는 입맛이 조금 까다롭다. 아니, 까다롭다기보다는 아이 같은 단순함을 가진 입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그녀가 삼시 세끼를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사골국이다. 소 뼈를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고와 낸 뽀얀 국물은 그 자체로 구수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떠올리면 머리가 아찔하다. 몇 시간씩 불을 지켜야 하고, 한 번 끓이고 난 뒤에도 기름을 걷어내고, 다시 끓이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어머니는 이 일을 마치 일상처럼 해내시지만, 나는 아직 그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홈쇼핑이었다. 요즘은 겨울이라 그런지 TV 화면에는 갈비탕, 곰탕, 도가니탕, 심지어 수육탕까지 온갖 국물 요리가 넘쳐난다. 얼마 전, 도가니탕 한 세트를 주문해 보았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생각보다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물론, 어머니가 직접 끓여 주셨던 사골국물에 비하면 부족하다. 어머니의 사골국에는 시간이 만들어 낸 깊은 맛과 손길의 온기가 담겨 있다. 이 국물 팩은 편리함을 주지만, 정성의 깊이는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만족했다. 아니, 기뻤다. 아내가 맛있게 먹고,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렇게 작은 타협이 주는 행복도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식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곳에 담긴 국물이 정성에서 나온 것이든, 홈쇼핑에서 온 것이든, 아내의 미소와 함께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따뜻하고 소중하다.
나는 오늘도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작은 팩 안에 담긴 따뜻함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아내를 부른다. “자기야, 밥 먹자.”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서며 서둘러 지하철에 올랐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나와 딸이 함께 타투를 하기로 예약해 둔 날이기 때문이다. 타투. 그것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소망이자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타투라는 단어는 내게 늘 묘한 끌림을 주었다. 몸에 새겨진 하나의 그림이 지나온 시간과 기억을 대변하고, 또 앞으로의 삶을 상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 소망은 늘 주변의 시선과 나 자신의 망설임에 가로막혀 있었다.
“나이 먹고 몸에 무슨 문신이냐.”
“영업사원인데, 몸에 타투는 이미지에 맞지 않잖아.”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돌았다. 문신이라는 것이 여전히 어디선가 반항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동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나 역시 그런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싹튼 이 작은 소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타투에 대한 갈망은 마치 손끝에 닿지 않는 무언가처럼 계속해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벽을 넘는 날이다. 딸과 함께 예약한 이 시간이 나를 설레게 했다. 문신이라는 것이 단순히 몸에 새기는 그림을 넘어서, 나 자신을 표현하고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타투가 더 이상 금기나 충동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선물하는 용기의 한 조각처럼 느껴진다.
나는 딸과 함께 그 타투샵에 앉아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 지었다. 내 몸 어딘가에 새겨질 작은 그림은 그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용기 내어 내 삶을 기록하고, 나 자신을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간 흔적이 될 것이다.
퇴사 후, 책을 읽고 동기부여 영상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실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자신을 가둔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하고 싶었던 것을 참고, 결국 용기 내지 못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어 낸 벽 때문이었다.
타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것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타투가 주는 특별한 의미를 알면서도, 나 스스로 그 벽을 허물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퇴사를 하면서 조금씩 나를 가두던 경계를 깨뜨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딸과 일정을 맞추어 오늘 이 순간을 만들었다.
나는 “문장”을, 딸은 “호랑이”를 하기로 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몸에 새기기 위해 타투샵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샵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생각보다 마음이 흔들렸다. 이게 맞는 걸까? 그냥 딸만 하게 두고 나는 빠지면 어떨까?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민이었다. 선택의 기로에 선 기분, 그 낯선 두려움이 나를 다시 붙잡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 이 순간을 넘기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아마 나는 또다시 남의 시선을 핑계 삼아 주저할 것이 분명했다. 오늘 아니면 결코 이 결심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새해에는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세운 작은 목표라도 반드시 완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내 팔을 맡겼다.
타투 아티스트가 시작하는 순간, 나는 묘한 평온함을 느꼈다. 그저 아프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떨쳐내는 해방감에 가까웠다. 딸이 옆에서 호랑이 문양을 새기고 있는 동안, 나는 내 몸에 문장을 새기며 생각했다. 이것은 단순한 문신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 준 약속이며, 내 삶에 남기는 흔적이다.
타투는 생각보다 아팠다. 솔직히 말해, 단순히 따끔거리는 정도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예상과 달랐다. 바늘이 피부 위를 지나갈 때의 감각은 짜릿하면서도 묘하게 깊은 통증이었다. 지금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조차 약간은 머뭇거리게 된다. 아프긴 했지만, 고통마저도 내가 이 결정을 실행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시술이 끝나고 난 뒤, 거울 속에서 내 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다. 이 문장은 내게 너무도 잘 어울렸다. 아니, 잘 어울린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은 멋지고, 강렬했고, 무엇보다 나다웠다. 내 왼쪽 팔에 선명히 새겨진 문장은 내 신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표식이었다. 문장을 읽을 때마다 묘한 흥분과 자부심이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2025년. 올해는 내게 변화의 해가 되어야 한다.
지난 51년 동안 나는 익숙한 삶의 우물 속에서 살았다. 좁고 안전한 공간 안에서 나름대로의 규칙과 평화에 안주하며 지냈다. 하지만 그 우물은 더 이상 나를 품어줄 수 없었다.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이제 우물 밖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구리가 되었다.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생존.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잡아먹히는 선택지뿐이다. 그렇다고 다시 우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거기로 돌아간다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망설이는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무조건 달려야 한다. 내 목표를 향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사실, 내가 원하는 제2의 삶은 이미 명확하다.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얼마나 큰 부를 쌓고 싶은지, 어떤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은지, 이 모든 목표는 작년 12월 31일에 이미 결정했다. 그날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고, 어떤 길로 나아갈지 다짐하며 나는 결코 잊지 않을 나만의 신념을 정리했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무엇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지 명확히 해야 했다. 불필요한 것들은 잊고, 나를 방해하는 요소는 잘라내야 한다. 올해는 그 과정의 첫걸음이다. 그 신념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 내 팔에 문장을 새겼다.
“if you do nothing, nothing will happen.”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문장은 내 피와 함께 내 팔에 새겨졌다.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내 다짐이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진리다. 우물 밖 세상에서 나는 이제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 단순히 살아남는 것 이상이다. 나는 뛰어나야 하고, 강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제2의 삶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거울에 비친 내 팔의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단순한 글자들이지만 그 속엔 피와 고통, 그리고 결의가 담겨 있다. 이 문장은 내가 2025년을 살아내는 방식이 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시작한다. 우물 밖에서의 첫 발걸음을.
이 문장은 내 평생의 신념 중 하나였다. 너무나 간단한 말 같지만, 내게는 한없이 깊은 울림을 주는 말이다. 나는 그동안 많은 결정을 주저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고 싶은 일들을 두려움이나 핑계로 미루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들. 그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그 시간들과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타투라는 작은 도전이지만, 이 문장은 내 삶에서 앞으로 더 많은 도전과 결정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내가 이 문장을 몸에 새긴 것은 단순히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매일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내 왼팔에 새겨진 이 문장은 이제 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번에 타투를 결심한 이유는 단순히 문장을 새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바로 금주. 타투를 하면 최소 2주 동안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기간이야말로 내가 술을 끊기 위한 첫 번째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술을 끊는다는 건 내게 있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술은 내 삶의 일부였다. 심지어 한때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조차도 "오랫동안 술을 마시기 위해서" 라는 신념에 기반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술을 끊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거의 혁명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결심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타투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강력한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지금은 타투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다"고 말하면, 그 어떤 핑계보다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었다. 2주라는 짧은 시간 같지만, 애주가인 나에게는 거의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술 없이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서 본 말이 문득 떠올랐다. "술은 조금씩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결심하면 한 번에 끊어야 한다." 그 말은 단순하지만 강렬했다. 애매하게 시도하는 대신, 단칼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오늘부터 술을 끊기로 했다.
타투로 시작된 금주의 여정은 단순히 2주 동안의 실험이 아니다. 이것은 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위한 첫 발걸음이다. 금주는 타투처럼 내 삶에 새겨질 또 하나의 다짐이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매일 밤 찾아오는 유혹도, 주변의 권유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조금씩 키우고 싶다.
오늘, 술 없는 첫날을 맞이하며 나는 생각한다. 타투로 내 팔에 새긴 문장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술을 끊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부터 달라질 것이다.
딸은 오른쪽 어깨 뒤에 작고도 멋스러운 호랑이를 새겼다. 날렵한 선과 강렬한 눈빛을 지닌 그 호랑이는 딸의 당당한 성격과 잘 어울렸다. 딸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참 대견했다. 그렇게 우리 부녀는 서로의 몸에 새겨진 문장과 그림을 바라보며 은근한 자부심을 느꼈다. 어쩌면 이날은 단순히 문신을 새긴 날을 넘어, 우리 두 사람이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타투샵을 나온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대구 중심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딸은 이미 어떤 식당을 갈지 알아두었다고 했다. 그사이 아내도 지하철을 타고 합류했다. 정말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대구 중심가를 함께 걸었다.
대구 중심가는 언제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활기가 넘치는 거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가게마다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나를 잠시 멈춰 서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한 가지 깨달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 나 정말 꼰대가 되었구나.
거리에서 젊은이들을 보며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다름 아닌, “세상 불경기라고 하더니 애들에게는 그런 게 없나 보네.” 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나 스스로도 어이없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젊은 세대의 삶과 에너지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활기는 분명 내가 한때 느꼈던 열정을 떠올리게 했다. 조금 낯설지만 그리운 기분이었다.
그렇게 묘한 감정을 뒤로하고 딸이 알아둔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딸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안내했고, 아내는 늘 그렇듯 우리가 먹게 될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아침에는 딸과 타투샵에 있었고, 지금은 아내와 딸과 함께 대구의 북적이는 거리를 걸으며 점심 식사를 기다리는 이 순간. 이것이 나의 삶, 나의 하루라는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우리 셋은 각각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렇게 또 한자리에 모였다. 딸의 어깨 뒤 호랑이처럼, 나의 팔에 새겨진 문장처럼, 오늘의 우리는 각자의 의미를 새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의 점심은 딸이 추천한 베트남 음식 전문점이었다. 나와 아내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세계였다. 사실, 베트남 음식 자체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쌀국수조차도 말이다. 처음 가보는 음식점이니 만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특히 기본 웨이팅 시간이 1시간이라고 해서 긴장을 하고 갔는데, 운 좋게도 우리 앞에 대기 인원이 거의 없어서 10분 정도만 기다린 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딸이 주도적으로 주문을 했다. 족발덮밥, 쌀국수, 그리고 분짜. 처음 접하는 음식들 앞에서 우리는 약간의 긴장과 호기심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첫 입을 맛보는 순간, 낯섦은 사라지고 새로운 즐거움이 찾아왔다. 음식들은 생각보다 깔끔했고, 향신료 냄새도 강하지 않아 무척 먹기 좋았다.
특히 아내는 “생각보다 한국스러운 맛이 나네!”라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녀의 접시가 순식간에 비워지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맛있게 먹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나 역시 처음엔 조심스럽게 한 입씩 맛보았지만, 어느새 그 신선한 풍미에 빠져들어 있었다. 딸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며 맛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와 와플을 주문한 뒤, 창가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 해의 시작을 이렇게 세 식구가 함께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젊은이들의 감성이 가득한 거리에서, 베트남 음식을 처음 경험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로 마무리된 오늘의 나들이는 단순히 외출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공유한 하나의 새로운 추억이자, 올해가 잘 풀릴 것이라는 작은 희망의 신호 같았다.
딸이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탄 뒤, 나와 아내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늘 오전은 나를 위한 시간이었으니, 오후는 아내를 위한 시간으로 채우기로 했다. 도착한 곳은 볼링장이었다. 주말 오후임에도 생각보다 한산한 볼링장에서 아내는 공을 굴리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진지한 표정과 굳게 잡은 볼링공을 보니 올해 안에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박수를 치며 그녀를 응원했다.
아내는 볼링을 연습할 때만큼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오로지 공과 핀, 그리고 자신의 자세에만 집중한다. 그녀의 이런 열정은 늘 나를 감탄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나도 내 삶의 목표를 이렇게 집요하게 추구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된다.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저녁 5시 30분이었다. 아침 9시 30분에 집을 나섰으니, 오늘은 오랜만에 하루를 온전히 외부에서 보낸 날이었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정신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지만, 추운 바람을 하루 종일 막아 낸 내 몸은 피곤함을 느끼는 듯했다. 집 안으로 들어와 따뜻한 공기가 몸을 감싸는 순간, 피곤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른 저녁을 간단히 먹고 나니 아내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 결국 그녀는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오늘의 일기를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 하루는 바깥에서 보낸 시간이 주는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딸과의 타투 경험, 가족과의 점심 식사, 그리고 아내의 열정적인 볼링 연습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우며 나는 생각했다. 이런 평범하지만 따뜻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내일도 오늘처럼 의미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