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직장생활에서 난 프로답지 못한 리더라는 걸 퇴사하고 깨달았다.
6일간의 금주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아침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맑아지니 아침의 루틴도 더욱 충실히 이어졌다.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내 목표를 읽고 쓰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소통과 공감의 시간을 가지며 댓글로 짧은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기분 좋은 온기가 번졌다.
“6일간의 금주가 언제였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어렴풋한 기억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낯설고도 힘들다. 특히 그것이 내 가장 어두운 순간들과 맞닿아 있다면 더더욱.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그 기억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년간의 중국 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돌아왔을 때 나는 주말부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주중에는 끝없는 업무와 마주했고, 주말에는 텅 빈 집에서 홀로 저녁을 먹으며 외로움과 불면증에 사로잡혔다. 어딘가에서 들리는 "이 정도 스트레스는 술로 풀어도 괜찮다"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며 술잔을 채우는 것이 나날의 습관이 되었다. 술은 어느새 내 삶의 한 축이자, 나를 잠재우는 유일한 약이었다.
어느 주말 밤, 평소처럼 혼자 저녁과 함께 반주를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가볍게 한 잔이었다. 술잔을 들고 무심히 텔레비전을 켜두었지만, 화면 속의 장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텅 빈 소주 병이 하나둘 늘어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직 괜찮아.”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병을 또 따고, 잔을 또 채웠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테이블 위에는 소주 세 병과 1.8리터의 맥주병이 쓰러져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더 꺼내 들고 돌아서는 내 모습이 그제야 낯설게 느껴졌다. 취했어야 할 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머리는 여전히 멀쩡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아직 덜 취했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불현듯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맥주병이 식탁 위로 떨어졌고, 마침내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로 흘러내리는 술을 닦으려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거울 앞에 선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혼탁하고 초점을 잃은 동공, 핏기 없는 얼굴, 그리고 여기저기 붉게 피어오른 반점들. 그 모습은 내가 아는 나 자신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이는 폐인에 가까웠다.
붉은 반점 아래로 내려다보니 불룩하게 튀어나온 뱃살이 눈에 들어왔다. 바지는 내려가 팬티 허리 밴드가 드러나 있었다. 그 몰골은 차마 오래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흉했다. 거울 앞에 선 내내, 나는 두려움과 경악에 휩싸였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끝장이 날지도 몰라.”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소주 세 병과 맥주 한 병이 더 남아 있었다.나는 이 술들을 모두 마시려고 했던 걸까? 어제 산 술인지, 아니면 이미 있던 술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제야 내가 술을 얼마나 당연하게 소비하고 있었는지 깨 달았다. 그 충격은 내 머릿속으로 퍼져 모든 것을 마비시켰고, 마셨던 술이 역류하듯 위로 올라왔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소파에 쓰러졌다.
다음 날, 숙취로 하루를 침대에서 보냈다. 자책과 후회는 끊임없이 밀려왔고, 나는 나 자신을 미워하기에 바빴다. 월요일 아침,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연차를 내고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상담 끝에 돌아온 진단은 “스트레스성 우울증으로 인한 알코올 중독 초기”라는 말이었다.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더 이상의 음주는 당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소파에 앉아 가득 쌓인 약봉지를 내려다보며,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이렇게 끝내도 괜찮은 걸까?’
그러나 그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는 작은 불꽃이 남아 있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게는 아직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있었다. 내가 무너지면 그들의 삶도 함께 흔들릴 것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술을 끊자. 그리고 운동을 시작하자.”
이후 나는 한동안 술을 끊고 운동화를 꺼냈다. 그렇게 내 삶은 조금씩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약 한 달간의 금주와 꾸준한 운동, 그리고 병원 치료는 내게 서서히 변화를 가져왔다. 불면증과 이명은 점차 완화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약 없이도 잠들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그 과정은 길고 지치기도 했지만, 이전의 나를 떠올릴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다짐이 나를 버티게 했다.
나는 이후에도 작은 목표들을 정해나갔다. 주중 5일 동안은 금주를 유지하고, 주말에는 가벼운 음주를 허용하며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신, 운동과 산책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이제는 기적처럼 깊은 휴식으로 변했다.
이제는 술도, 약도 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스트레스가 밀려오는 날도 있고, 한때 나를 삼켰던 두려움이 아지랑이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2018년의 그날, 거울 속에서 나를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삶은 완벽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나아졌다. 이제 나는 무너지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이 확신이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6일간 금주는 6년 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한 달간 금주를 했던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때는 생존이 걸린 절박함 속에서 술을 끊었지만, 이번 6일은 다른 의미였다. 내가 의지를 발휘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오늘 아침, 스스로에게 대단한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주중 5일 금주를 유지하며 균형을 맞추던 내가 이번에는 하루를 더 늘려 6일을 해냈다. 숫자 하나가 늘어났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것이 큰 변화를 의미했다. “나는 기존의 나를 넘어설 수 있다.” 이 사실이야말로 그 어떤 성취보다 값지고 기쁜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이 아침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보상을 줄까, 고민도 했다. (물론, 예전 같았으면 저녁에 맥주 한 잔을 떠올리며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하고 나 자신을 설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지나간 농담일 뿐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완전한 금주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 내 삶을 온전하게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나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오늘 아침, 나는 거울 앞에 선다. 나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속삭인다.
“잘하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해낼 거야.”
새로운 책을 펼쳤다. 얼마 전 유튜브 하와이 대저택”에서 얼 나이팅게일의 <성공은 이미 내 안에 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미 유튜브를 통해 그 책의 주요 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 스치는 그 문구와 메시지가 내게는 묘하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어떤 책이든,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단지 한 가지, 그 책을 눈을 통해 머릿속에 담는 일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도 주저 없이 선택했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외부에서 찾아오는 어떤 거창한 일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존재하며 내가 그것을 깨닫고 끌어내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스며들었다.
맑은 정신으로 아침 루틴을 마치고, 약 3시간 동안 책에 몰입했다. 책 속의 문장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며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충만감이 일었다. 책을 덮은 뒤에는 마치 자동처럼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에 올랐다. 그 순간, 문득 팔뚝에 새겨진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맞다. 타투를 새기고 난 후 약 일주일간은 운동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몸에 각인된 루틴이 내 행동에 자동으로 몸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페달을 밟은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을 떠올렸고, 오늘은 간단히 웨이트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어깨를 풀고, 팔굽혀펴기로 가볍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10분 동안 약 150개(23, 23, 20, 20, 20, 15, 15, 15)를 1분 30초 간격으로 거뜬히 해냈다. 꾸준한 연습 덕분에 익숙한 루틴이었지만, 약 두 달간 어깨 통증으로 운동을 쉬었던 결과는 냉정했다. 오늘은 겨우 50개를 하고 나서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팔과 어깨는 마치 처음 운동을 시작한 사람처럼 굳어 있었고, 근육의 반응은 느리고 무거웠다.
땀이 나면 안 되는 상황에다 오랜만에 재개한 운동이라 오늘은 워밍업이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내 몸이 보내온 신호는 분명했다. “꾸준함만이 운동의 정답이다.” 나는 그 사실을 오늘 또 한 번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운동을 멈추면 몸은 쉬이 굳어지고, 과거의 성취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은 언제나 예상보다 어렵다. 하지만 오늘의 부진이 내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한, 몸은 다시 기억하고 반응하기 마련이다.
오늘의 운동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다시 시작했다는 것.’ 결국, 꾸준함으로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오늘처럼 작은 발걸음에서 비롯된다. 나는 오늘의 경험을 그렇게 내 안에 기록한다. 내일은 조금 더 나아갈 것이고, 그다음 날은 더 그럴 것이다.
작은 움직임이 결국 커다란 변화를 만든다.
책과 운동으로 아침을 알차게 보낸 뒤, 청소와 빨래 같은 집안일에 나섰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동안에도 이틀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청소를 해왔던 터라 오늘도 어김없이 손이 움직였다. 그런데 그 시각, 방학이라 늦잠을 자던 막내가 부스스한 머리로 거실로 나왔다.
막내는 내 모습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청소도 하세요?”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고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헐! 이놈아, 한 달 내내 이틀에 한 번씩 했는데!”
그제야 녀석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쩐지 집이 깨끗하더라고요. ㅎㅎㅎ”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내가 열심히 한 청소가 티가 나지 않았던 걸까? 궁금증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속으로는 저 녀석을 붙잡아 취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대체 너의 눈에는 내가 그동안 했던 청소가 안 보였던 거냐?” 하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웃으며 넘기기로 했다. 가족과의 이런 소소한 대화 속에서도 나는 어쩐지 큰 재미와 기쁨을 느낀다.
청소라는 게 참 그렇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일, 그렇지만 안 하면 금방 티가 나는 일이 바로 이 청소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막내가 알아채지 못할 만큼 집이 항상 깨끗했다는 건 어쩌면 내가 꽤 잘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취조는 필요 없겠다.
나는 다음번에도 녀석이 깨닫지 못할 만큼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나만의 작은 성취를 떠올리며 밀대를 다시 들었다. 어쨌든 오늘도 청소는 성공적이었다.
청소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잠시 여유를 즐기던 중,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다니던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생산부장이었다. 이제는 선배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는 새해 인사를 건네며 안부 전화를 했다고 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명절이나 연초, 연말이 되면 늘 먼저 연락을 드리곤 했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상사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언제나 먼저 축하나 안부를 건네는 것이 나름의 규칙이자 예의였다.
그런데 올해는 퇴사 후 처음 맞이하는 새해였다. 그래서였을까? 한 번도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누군가의 상사로서, 혹은 직장 동료로서 내가 해왔던 일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이 아닌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는 내가 퇴사 후 겪게 된 작은 변화 중 하나였다. 관계와 의례 속에서 항상 먼저 움직이던 내 모습이, 이제는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이런 변화가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책임감이나 의무감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관계만 남겨두는 과정이 시작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낯설다. 하지만 나도 천천히, 나의 새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 이 작은 전화를 통해 나는 또 하나의 변화를 배운다. "내 삶은, 이렇게 조금씩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화를 건 선배는 영업과 생산, 각자의 책임자로서 업무 때문에 숱하게 부딪혔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함께 일할 때 우리는 종종 의견 충돌로 언쟁을 벌이곤 했다. 서로의 입장이 달랐고, 때로는 그 차이를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날카로운 순간들은 이제 희미한 추억으로 남았다.
퇴사 후 처음 받는 그의 전화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너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더라.” 마치 달콤한 거짓말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과거에 나눈 수많은 대화와 갈등 뒤에 서로의 진심이 남아 있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했다.
나는 먼저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앞으로는 자주 연락해요.”
그 약속이 쉽게 지켜질 것 같지는 않다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었지만, 순간만큼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전화기 너머로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먼 길을 돌아와 다시 마주한 동료와의 짧은 인사가 주는 따뜻함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우리가 과거에 나눈 수많은 마찰과 갈등이 결국은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퇴사 후에도 이렇게 연락을 건네는 관계로 이어졌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 시절의 모든 순간들이 우리 사이에 남긴 흔적일 것이다.
퇴사는 나를 직장의 일원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사람 사이의 연결은 여전히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연결은 때로 달콤한 거짓말이나 지키지 못할 약속 속에서조차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입가에 웃음을 띠며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려던 순간, 문득 다른 한 가지 생각이 스치듯 밀려들었다.
직원의 전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직원의 안부전화.
오늘 받은 선배의 전화는 27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퇴사 후 걸려온 첫 번째 새해 안부 전화였다. 그 사실이 불현듯 가슴 한구석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한때는 전국 영업 조직 전체를 책임 지던 부서장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낸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지방으로 내려와 생활하며 본사 직원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래, 본사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는 건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지방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마저도 새해 인사를 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남아 있을까? 퇴사와 함께 내 이름이 그들의 일상에서 지워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예상보다도 더 낯설고 조용히 아프게 다가왔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업무라는 무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그 무대 위에서 각자의 역할과 존재가 뚜렷하다. 그러나 무대를 떠나게 되면, 그 관계는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거나 희미해진다. 내가 그 무대를 떠난 지 이제 2개월 남짓. 그동안 나의 존재는, 그들의 삶 속에서 조용히 흐려지고 있었던 것일까.
어차피 이제는 남이다. 퇴사 후 안부전화 한 통을 받고 못 받고 가 나에게 큰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감정까지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순간, 나는 내 가슴 한가운데를 무겁게 누르는 먹먹함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과의 관계는 직장에서 맺어진 인연이었다. 업무라는 이름 아래 이어진 것이었으니, 직장을 떠나면 사라질 수도 있는 관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단칼에 끊어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은 내게 잔잔한 씁쓸함을 넘어 깊은 아픔으로 다가왔다.
어떤 동료와는 15년을 함께 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부딪히고 웃었던 그 시간들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또 어떤 동료에게는 내가 정말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아부었다. 그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함께 고민을 나누던 순간들. 나는 그 시간을 아낌없이 베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기억들조차도 쉽게 흩어져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나를 잊었을까? 아니면, 나의 이름이 그들의 일상에서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된 것일까?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과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단순하게 끊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며 문득 가슴 한편이 허전해졌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시간들이 분명히 무의미하지 않았다고도 믿고 싶었다.
그들과의 인연이 끝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보냈던 진심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누군가의 삶에서 더 이상 내가 중요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베풀었던 마음과 시간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그 순간 나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 것들이었다.
이제는 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내 안에서 이런 감정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과의 인연이 떠난 자리에는 공허함이 남았지만, 나는 그 빈자리가 나를 다시 나아가게 할 새로운 자리가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내 머릿속 한편에서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면 모든 고민은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먼저 안부를 묻고, 새해 인사를 건네면 그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런 복잡한 생각에 시간을 쏟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아직도 꼰대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서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후배들이 먼저 연락해 주는 걸 바라고 있었다. “선배님, 잘 지내시죠?”라는 단순한 안부 한마디가 왜 그리 듣고 싶었던 걸까. 그 한마디로 내가 과거의 직장에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걸까.
그렇지만 솔직히 인정하자면, 그런 기대 자체가 내가 여전히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만큼 아껴줬던 사람이라면 먼저 연락을 해주는 게 예의 아닌가?”라는 내 생각이, 실은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기준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때로 나 자신이 꼰대라고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그걸 깨닫는 스스로를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아직 내 사고방식의 굳은 틀을 완전히 깨뜨리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후배들에게 먼저 연락을 바랐던 건 내 고유의 기대였을 뿐이다. 그리고 기대라는 것은 대개 나를 위한 것일 뿐, 상대방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걸 인정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 모순된 감정과 싸우고 있다.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들이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먼저 연락하면 정말 무엇이 달라지는가?”
결국 중요한 건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하든, 그들이 먼저 연락을 하든, 우리가 함께 쌓았던 시간들이 가진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제는 먼저 연락하는 일에 담담해질 때가 온 것 같다. 그것이 내 안에 남은 기성세대적 사고와 작별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순간 신기하게도, 어제 읽었던 임경선 작가의 책 “어떤 비밀” 속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직장의 가족화는 프로답지 못하다. 공적인 관계를 사적인 분위기로 흐리는 것은 팀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다.”
그 문장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이런 팀장이었을지도 모른다. 10년 가까이 팀장을 맡으며, 나는 내 팀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그들에게 마음을 쏟았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게 좋은 리더십이라고 믿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프로답지 못한 팀장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임경선 작가의 이 문장을 통해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내 진심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관계를 무겁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떠올렸다. 그 깨달음은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만약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독서를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느낀 이 아쉬움은 무겁게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스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싸늘함 속에서도 나는 오늘 선배의 전화를 떠올렸다. 단 한 통의 전화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말들이 내게 힘을 주었다.
모든 관계가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그 무대 위에서 함께 나눈 순간들로 인해 여전히 서로를 잇는다. 그게 달콤한 거짓말일지라도, 오늘의 전화는 나에게 그런 연결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나는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관계의 무대에서 완전히 떠난다는 것은 결국 내 삶에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고요한 생각들이 밀려드는 아침이라면, 나는 그 무대를 더 단단히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