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막내의 졸업식이다. 평소 늦잠을 자던 녀석도 오늘만큼은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고, 나가면서도 늦지 않게 꼭 오라는 말을 여러 번 남겼다.
지 누나와 형에게도 꼭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그 말이 먹혔는지 첫째는 반차를 내고 둘째는 포항에서 하루 연차를 내 졸업식에 함께하기로 했다.
평소 만나기만 하면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길래 사이 좀 좋게 지내라고 몇 번이나 잔소리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괜한 걱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을 오늘도 실감했다. 겉으로는 투닥거려도 중요한 순간에는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걸 보니,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미 충분히 잘 지내고 있었던 것 같다.
딸을 데리러 가는 길에 화원에 들러 미리 예약해둔 꽃다발을 찾았다. 나는 꽃다발이야말로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이라 굳이 비싼 생화를 살 필요가 있느냐고 했지만, 며칠 전 딸은 졸업식에는 꼭 생화를 사가라고 조언했다.
평생 한 번 남을 사진인데 조화로 찍으면 오래도록 서운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말이었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 말이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라는 걸 깨달았다.
꽃다발을 보더니 예쁘다며 정말 잘했다고 말하는 딸의 표정 앞에서, 나는 이유 없이 미안해졌고 또 고마워졌다.
학교로 이동하는 길에 포항에서 둘째가 도착했다. 어제 당직을 서고 아침에 퇴근하자마자 바로 넘어왔다며 군복을 그대로 입고 나타난 녀석을 보며, 겉으로는 누가 군인 아니랄까 봐 그렇게 티를 내느냐고 핀잔을 줬지만 속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10시에 시작이라 해서 맞춰 갔더니 강당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후 졸업식이 시작됐고, 시작부터 내가 알던 졸업식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의 졸업식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의식에 가까웠다면, 요즘의 졸업식은 축제에 훨씬 가까웠다.
각 반의 영상이 상영되고, 댄스와 밴드 동아리의 무대가 이어지며 졸업생들 스스로가 서로를 축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전교회장인 막내가 졸업생을 대표해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는 모습을 보았고, 이어 선생님과 부모님, 친구들에게 답례사를 하는 장면에서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그 울컥함은 단순히 단상에 선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3이라는 시간 자체가 이미 충분히 무거운데, 전교회장이라는 자리까지 함께 짊어지고 1년을 보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늘 밝게 웃고, 뒤에서는 제 몫을 감당하며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을 그 시간을 생각하니, 잘 해냈다는 말보다 잘 버텨냈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공부와 책임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을 지켜온 모습이 고맙고, 그걸 끝까지 해낸 아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졸업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여기저기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연신 사진을 찍는 모습은 아직도 아이 같았지만, 밀가루를 뿌리거나 과한 장난이 없는 풍경을 보며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먼저 집으로 돌아왔고, 막내는 친구들과 여운의 시간을 더 갖기로 했다.
점심 무렵 예약해둔 식당에서 모두 함께 식사를 했고, 이후 딸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둘째도 내일 약속이 있다며 포항으로 내려갔다.
막내는 친구들과 거한 약속이 있다며 늦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집에는 결국 아내와 나, 둘만 남았다.
예전 같았으면 오늘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도 남을 하루였다. 서로에게 고생했다며, 막내가 잘 자라준 것을 축하하며 밤이 새도록 술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런 문화는 지난 시절의 추억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집 옆 대형마트에 들러 무알콜 맥주와 과일을 사고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다.
조촐한 다과상 앞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며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98년생, 00년생, 07년생.
세 아이 중 막내의 졸업식.
73년생 동갑내기였던 우리가 소꿉놀이하듯 살던 시절을 떠올리면, 어느새 세 아이의 의무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 졸업식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잘 키우겠다는 확신보다는 그저 그때그때 주어진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데에 더 가까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워왔다.
서툰 부모였고, 늘 정답을 아는 어른은 아니었지만,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며 아이들 곁을 지켜왔다는 사실만큼은 서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졸업식은 아이들을 잘 키워냈다는 자부심이라기보다, 여기까지 함께 버텨온 서로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에 더 가까웠다.
당신도 고생했고, 나도 고생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기 몫의 시간을 잘 살아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즘은 대학까지 의무교육이라고들 하니 막내의 입학 이후에도 신경 쓸 일은 많겠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졸업식은 우리 부부에게 분명 하나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오늘의 고통은 아픔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차분히 돌아보게 만든 계기였고,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