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지루한 부분이 커트된 인생이다.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가 지루한 부분을 커트한 인생과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위인전을 읽으며 그들의 인생이 마치 '영화 같다'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 같은 삶 이면에는 수백, 수천 배나 더 길었을 평범한 일상(밥 먹고, 낮잠을 자고, 친구를 만나고)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영화가 영화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편집 때문일 것이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의 주인공 벤자민은 노인의 외모와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 해를 거듭할수록 젊어져 가는 운명을 가졌다. 관객은 주인공의 85년 인생을 166분의 편집을 통해 보았다. 그가 겪었던 수많은 희로애락의 사건들은 짧은 장면으로 지나갔지만, 연인이었던 데이지를 만나 사랑하는 과정만큼은 가장 길고도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시간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시간의 질량만큼은 살아온 인생의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다.
프랑스어로 조립하는 것을 뜻하는 몽타주(montage)는 영화에서는 편집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편집을 정의하자면, 촬영된 숏(shot)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잘라낸 컷(cut)을 영화적 순서에 맞게 배열하는 작업을 말한다. 편집은 하나의 컷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의미를 컷의 연속에서는 새롭게 발견된다는 특징이 있다.
몽타주에 관한 연구는 1921년 소련의 쿨레쇼프 실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수프가 담긴 그릇, 죽은 소녀가 있는 관, 아름다운 여성의 숏 다음에,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배우의 클로즈업 숏을 각각 병치시켰다. 관객은 먼저 나왔던 숏이 무엇인지에 따라 배우의 감정을 배고픔, 슬픔, 애정으로 각각 다르게 느꼈다.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의 컷은 그 자체로써 완결된 것이 아니며, 이어지는 다른 컷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감독은 드디어 편집이라는 도구를 통해 영화에 창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몽타주는 목표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영화는 목표는 작가의 기획의도 속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컷은 질서 정연하게 한 방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앞서 몽타주는 컷의 배열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때 컷(cut)은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된다. 영화의 제작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배치할 예정인 컷(cut)만을 숏(shot)으로 촬영한다. 그리고 감독이 만족스러울 만큼 여러 차례 반복해 촬영한 숏(take) 중에서도 OK 된 컷만이 선택된다. 끝이 아니다. 앞뒤의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고 보일 부분만을 남겨야 진짜 컷(cut)이 된다. 이처럼 몽타주의 최소 단위인 컷(cut)은 세심히 다듬어진 뒤에야 비로소 배열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컷(cut)을 삶에 대조해보면 할 일(to do) 정도로 볼 수 있다. 인생 역시 주어진 시간과 돈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할 일은 단기 목표 중에서 선택과 집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숏을 컷으로 다듬어내듯 해낸 일에 대한 성과를 기록해두어야 한다. 독서를 했다면 감상문을 남기고, 운동을 했다면 달력에 표시라도 한다. 좀 더 거창한 버킷 리스트(bucket list)와 같은 일을 해냈다면 구체화된 포스트나 영상으로 남겨둔다. 블로그나 유튜브에 올리든지 책으로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렇게 선택과 집중되고 의미 있게 기록된 해낸 일은 비로소 컷(cut)이 된다. 인과관계가 없는 컷의 연속이 스토리 상 무의미한 것처럼, 기록되지 않은 해낸 일은 인생에 배열할 수 없고 새로운 의미로 엮기에도 무리가 있다. 인간은 얼마 전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할 만큼 쉽게 망각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목표나 방향을 금세 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벽돌을 쌓듯 경험들을 잘 기록해두면 인생의 컷들은 모이고 모여 화학적 반응을 하며 하나의 씬이 된다. 그리고 그 씬들은 모여 단락인 시퀀스가 되고, 시퀀스들은 마침내 영화라는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될 수 있다.
데이비드 핀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8.
김종완 외, 「고등학교 영화기술」, 동국대학교출판부, 2014.
벵상 피넬, 「몽타주 : 영화의 시간과 공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