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진실이라면 영화는 초당 24번의 진실이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59)로 유명한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인 장 뤽 고다르는 영화를 초당 24번 움직이는 생동하는 진실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영화란 영화라는 이름의 고유한 예술로서, 오로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표현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카메라와 음향의 실험을 통해 다른 예술은 시도할 수 없는 무한한 예술적 시도를 했고, 현재까지도 가장 열정적인 영화예술의 혁명가로 평가받는 인물 중 하나이다.
영화는 희로애락이라는 삶의 단면을 촬영(shooting)해 숏(shot)으로 기록한다. 마치 총과 같이 겨누어진 진실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24장의 프레임을 1초 동안 보여주기 때문에 생동한다. 매 프레임이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프레임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쉼 없이 달린다. 그 누구보다 역동적인 주인공과 함께.
누구나 스스로를 자기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주인공인 나에게 벌어지는 불행한 일들(예컨대 지루한 일상, 반복되는 실패, 여러 결핍 등)은 이따금씩 나는 주인공이 아닌 단역에 불과한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우리는 평소 어떤 놀라운 일을 보거나 직접 겪으면 영화 같은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의 주인공인 내게는 그러한 일이 잘 벌어지지 않기에 때로 허무하다.
세계는 일종의 연극 무대다. 자신이 자신을 연기하는 무대. 누구에게나 자신의 배역이 있고, 자신의 장르가 있다. 누군가에게 이 세계는 멜로드라마고, 누군가에게 이 세계는 코미디나 비극이고, 누군가에게 이 세계는 가면극이나 판타지 또는 부조리극일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동시에 서로에 대해 행인1, 행인2 이기도 하다. 「천국보다 낯선」 p.135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에는 단조롭기 짝이 없는 직장인 주인공 해롤드가 등장한다. 그는 어느 날 그의 행동 하나하나 설명하는 여자의 내레이션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누차 말하는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말은 사실로 밝혀진다. 주인공은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 뒤, 충격을 받아 이후의 삶을 전격 바꾸고자 한다.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들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곧장 실행에 옮긴다. 강박적으로 지켰던 삶의 패턴도 무시해본다. 큰 맘먹고 꿈꾸던 기타도 샀다. 그리고 짝사랑했던 여자에게 고백해 마음을 얻는다.
그러던 중 해롤드는 해설자의 목소리인 비극 소설 작가 카렌을 찾아내게 된다. 해롤드는 그녀의 원고를 본 뒤, 스토리 전개 상 주인공의 죽음이 교정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카렌 역시 해롤드가 눈 앞에 나타나자 딜레마에 빠진다. 그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인생 최고의 작품이 될 수도 있었던 소설의 결말을 수정하고, 해롤드의 인생을 그에게 맡기기로 한다.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면 해롤드가 맞이할 비극적인 죽음이야 말로 걸작의 종지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삶을 꿈꾼다고 해서 죽음이라는 결말까지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카렌이 결말을 포기하면서까지 해롤드를 살린 이유도 그가 자신과 같이 하나의 평범한 인생(기타를 치고, 연인을 만나고, 직장에 다니는)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같은 삶은 역설적으로 일상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누군가 영화 같은 삶을 살길 기대한다면 제일 먼저 영화 같은 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만약 비극 「햄릿」의 주인공처럼 운명적인 죽음을 소원한다면 예외일 수 있다. 대신 그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오늘보다 내일 더, 영화처럼 재미있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답일 수 있다.
'오늘보다 내일 더'라는 말은, 타인의 평가나 그들이 세워놓은 기준의 상대평가가 아닌 자신의 일상을 기준으로 현재와 미래를 절대평가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처럼 재미있게'라는 말은, 영화는 언제나 일상에 재미와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만약 지루한 일을 붙들고 버티는 일은 하품이 절로 나오는 영화를 억지로 보는 것과 같다.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은, 인간은 미래를 위해 일상을 계획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거창하진 않지만 소소한 슬기를 얻게 된다. 이처럼 이 글들은 오늘보다 내일 더 영화처럼 재미있게 성장할 수 있는 작은 방법을 제안한다. 또한 매 프레임이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 속 매일의 프레임 역시 역동적이길. 하나의 프레임처럼 정지된 삶이 아닌 매 순간 생동하는 프레임으로 사는 것이야 말로 진짜 영화 같은 삶이 아닐까.
이장욱, 「천국보다 낯선」, 민음사, 2017.
마르크 포르스터, <스트레인저 댄 픽션>,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