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남겨진 개들의 이야기
사직서를 내고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서던 날, 사무실 구석,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과 마주쳤다. 한때 반짝이며 내 발목에 장난을 걸던 그 눈이, 이제는 말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말 못 할 그리움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어느 날 신도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나타났다. 자기네 강아지가 낳은 새끼가 예쁘다며 스님께 선물이라고 안기고 간 것이다. 세 달 된 강아지는 손바닥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은 살아 있는 인형 같았다. 뒤뚱거리며 걷는 뒷모습은 태엽 인형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귀여움에 마음을 빼앗긴 스님은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지냈다.
그러나 1년쯤 지나 스님은 강아지를 남겨 두고 절을 떠났다. 남겨진 강아지는 사무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소소한 보살핌은 내가 했지만, 나는 주인이 아니었다. 처음 데려왔던 신도에게 돌려보내려 했지만 거절당했고, 다른 신도들에게 분양도 시도했지만 무산되었다. 사무실에 둘 수 없어 주로 내 방에서 지냈고, 병가 중일 때는 다른 직원들이 돌아가며 돌봤다.
한 달여의 병가를 마치고 절로 다시 갔을 때, 예전의 애교 많고 밝던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눈빛은 풀려 있었고 초점 없는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는 불안한 강아지가 있을 뿐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 없이 방치된 결과였다.
이미 집에는 강아지가 있었다. 데려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발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니 그 아이가 나를 따라 몇 걸음 나와 있었다. 그 순간 ‘이대로 두고 가면 이 아이는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나는 녀석을 두 팔로 안아 차에 태웠다.
사찰은 대부분 산속에 있으며 목조건물로 지어져 있다. 많은 경우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으며, 사찰 전체를 통제하는 출입문이 없다. 24시간 열려 있는 공간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사찰에서는 개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있다.
늦은 밤, 초에 불을 밝히고 마음속 소원을 기도하러 오는 방문객들도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작은 실수라도 생기면 대형 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 불조심은 모든 사찰에서 가장 신경 쓰는 일이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개를 두어 야간의 이상 상황을 빠르게 알아챌 수 있도록 한다. 개가 짖으면 스님과 직원들은 즉시 방에서 나와 경내를 살피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사찰의 개는 야간 지킴이나 다름없다.
차우차우 품종의 나이 많은 개가 있던 사찰이 있었다. 어느 날, 주지스님이 바뀌었고, 대형견 키우기가 부담스러웠던 새 스님은 결국 구청에 연락했다. 이후 전해 들은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사람마다 반려동물에 대한 시선은 다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키우던 개를 남기고 떠난 스님의 마음도, 구청에 보낸 스님의 입장도 모두 이해가 간다. 이런 일은 그 사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찰에 개가 살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안전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스님이 직접 키우기도 하고, 누군가 사찰에 버리고 간 유기견이 정착하는 경우도 있다. 동물을 정말 좋아하시는 스님은 다음 거처가 정해져 데리고 가기도 하고, 어떤 스님은 끝까지 돌봐줄 곳을 찾아 맡기기도 한다.
스님은 바랑 하나 메고 떠나면 되지만, 언제나 개는 혼자 남는다. 결국 사찰에 버려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님이 떠나는 순간 개의 주인은 사찰이 된다. 그러나 사찰은 개를 돌볼 수 없다. 개는 사람이 돌봐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키우던 사람이 떠난 후 누가 그 개를 책임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개의 운명은 달라진다.
사실, 집에 있던 강아지도 절에서 데려간 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절에 남겨진 두 마리 강아지의 반려인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반려인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간절했던 녀석의 눈빛을 떠올린다. 녀석은 18살이 되었고, 아직 함께 살고 있다.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매일 확인한다.
반려동물은 장난감이나 장식품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로 우리와 가족이 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끝까지 함께한다는 약속이다.
인연 있는 스님들의 사찰에 개가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언제나 같은 말을 한다. "스님, 절에서는 개 키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데려가지 못하시면 어떻게 해요.”
사찰이든, 길거리든, 어떤 곳이든. 그곳이 어디든 반려동물이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