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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침내 Jul 12. 2024

그렇게 엄마가 그립겠구나

해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엄마는 오이지를 담근다. 나는 4월부터 엄마에게 오이지를 외친다. 오이지는 엄마표를 이기는 맛이 없다. 다른 집 오이지는 아무리 아삭거려도 사람들이 모두 맛있다고 해도 내 입맛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한 젓가락 먹고 나면 다음 젓가락질을 안 하게 된다. 엄마표에 중독되었고 특히 오이지에 유별난 내가 있다. 나만큼 까다롭지 않지만 엄마표 오이지를 기다리는 동생들도 있다.


장마가 오기 전, 바통 주고받으며 이어달리기하듯 엄마는 오이지를 담근다. 언제나 오이지가 완성되는 시간보다 먹는 속도가 빠르다. 오이 한 접이 50개. 두 접을 담그면 100개. 두 접씩 만들어도 네 집이 나누면 한집에 돌아가는 개수가 많지는 않다. 요즘은 예전보다 오이 크기도 작아져서 한 번 무칠 때 10개씩은 무쳐야 한다. 그래야 며칠 두고 먹을 수 있다.



엄마집에 들러 노랗게 잘 삭은 오이지를 들고 왔다. 일단 10개를 꺼내 얄팍하게 썬다. 물에 오랫동안 담가두면 오이지 본래의 간이 사라지므로 조몰락조몰락 주물러 짠맛을 빼준다.  찬물에서 뽀득뽀득 씻으며 물로 몇 번 헹궈주면 짠맛은 빠지고 살짝 간은 살아있게 된다. 다른 간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손목 아픈 것쯤 참아내고 한 주먹씩 꼭꼭 짠다. 야채 탈수기는 음식의 맛을 확실히 떨어트린다. 고춧가루, 깨소금, 마늘, 청양고추, 파를 넣고 무친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은 먹을 때마다 조금씩 넣는 것이 좋다. 그래야 기름의 고소함도 살고 음식의 맛도 상쾌하다. 


여름 반찬으로 최고인 오이지를 무쳐놨으니 이제 며칠 동안 다른 반찬 없어도 살 수 있다. 딱 이맘때면 내겐 김치보다 중요한 먹거리다. 오이지, 곰국, 김밥, 김치 등 꼭 엄마표여야 하는 음식이 있다. 엄마의 맛이 있는 음식이다. 다른 사람의 음식은 절대 엄마 손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먹을 때마다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엄마 없으면 어쩌나... 점점 체력이 떨어지셔서 음식 하는 일도 버거워지고 언젠가 엄마의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잦아진다. 





얼마 전 신동엽의 유튜브에 가수 겸 배우 정은지가 나왔다. 그녀는 엄마와 재채기 소리가 닮아간다며 '나중에 재채기할 때마다 엄마가 그립겠다'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억은 오감으로 남는다고 한다. 그리고 시각보다는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의 기억들이 더 오래 남는다고 한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목소리는 기억나는 것처럼,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향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손끝으로 온기가 기억되는 것처럼.


정은지의 말을 듣고 내 기억 속에 남을  엄마를 생각해 보았다. 봄이 오면 오이지, 추워지면 곰국을 해달라고 했다. 지금도 아프면 콩나물국이 생각나고 고등어를 보면 고등어찜의 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모든 것이 엄마표 음식맛의 기억이다. 재채기를 하면 엄마가 그립겠다는 말처럼 나는 음식을 먹으며 엄마가 그립겠구나. 계절마다 엄마를 보채지 못하는 날에는 내가 그 음식을 만들며 엄마를 기억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겠구나. 나는 먹고사는 마지막 날까지 엄마를 그리워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가 그립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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