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그립겠구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엄마에게 '오이지'를 찾는다.
"엄마, 오이지. 오이지 언제 담가요? 지금 담글 때죠?"
"벌써 담갔지. 이거 다 익으면 한 번 더 담가줄게."
엄마는 언제나 내가 묻기 전에 오이를 사서 소금물에 담가놓으셨다.
나는 엄마에게 4월부터 오이지를 외친다. 지금까지 엄마표를 이기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집 오이지가 아무리 아삭거려도, 사람들이 모두 맛있다고 엄치척을 해도 내 입맛을 만족시키는 것은 엄마표뿐이다.
다른 집 것이 맛이 없다기보다 이상하게 한 젓가락 먹고 나면 다음 젓가락질을 안 하게 된다. 입에선 이미 다른 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표 오이지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나는 그 맛에 중독되었고,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오이지를 기다린다. 이맘때 만들어진 오이지는 가을까지 내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장마가 오기 전, 바통 주고받으며 이어달리기하듯 엄마는 오이지를 담근다. 두 번째 담근 것이 채 익기도 전에 처음 것은 이미 동이 난다. 언제나 오이지가 완성되는 시간보다 먹는 속도가 빠르다. 처음에 100개를 만들어도 동생네 까지 포함해 네 집이 나누면 한 집에 돌아가는 개수가 많지는 않다.
요즘은 예전보다 오이 크기도 작아졌다. 한 번 무칠 때 10개씩은 무쳐야 며칠 두고 먹을 수 있다.
엄마 집에 들러 노랗게 잘 삭은 오이지를 들고 왔다. 일단 10개를 꺼내 얄팍하게 썬다. 오랫동안 물에 담가두면 오이지 본래의 간이 사라지므로 조몰락조몰락 주물러 짠맛만 빼준다. 찬물에서 뽀득뽀득 씻으며 물로 몇 번 헹궈주면 짠맛은 빠지고 살짝 간은 살아있게 된다. 다른 간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손목 아픈 것쯤 참아내고 한 주먹씩 꼭꼭 짠다.
야채 탈수기로는 절대 낼 수 없는 맛이 손으로 짜낸 오이지에는 있다. 고춧가루, 깨소금, 마늘, 청양고추, 파를 넣고 무친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은 먹을 때마다 조금씩 넣는 것이 좋다. 그래야 기름의 고소함도 살고 오이지무침의 맛도 상쾌하다.
여름 반찬으로 최고인 오이지를 무쳐놨으니 이제 며칠 동안 다른 반찬 없어도 살 수 있다. 딱 이맘때면 내겐 김치보다 중요한 먹거리다. 오이지, 곰국, 김밥, 김치 등 꼭 엄마표여야 하는 음식이 있다. 간의 깊이, 양념의 농도까지 엄마만의 비율과 손맛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음식은 절대 엄마 손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오이지를 한 젓가락 입에 넣을 때마다 이 맛을 영원히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민다. 엄마 없으면 어쩌나... 점점 체력이 떨어지셔서 음식 하는 일도 버거워지고, 언젠가 엄마의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가수 겸 배우 정은지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엄마와 재채기 소리가 닮아간다며 "나중에 재채기할 때마다 엄마가 그립겠다"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억은 오감으로 남는다고 한다. 그리고 시각보다는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의 기억들이 더 오래 남는다고 한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목소리는 기억나는 것처럼.
정은지의 말을 듣고 내 기억 속에 남을 엄마를 생각해 보았다. 봄이 오면 오이지, 추워지면 곰국을 해달라고 했다. 지금도 아프면 콩나물국이 생각나고, 고등어를 보면 고등어찜의 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모든 것이 엄마표 음식 맛의 기억이다.
재채기를 하면 엄마가 그립다는 말처럼 나는 음식을 먹으며 엄마를 그리워하겠구나 생각했다. 엄마에게 보채지 못하는 계절이 오면 내가 그 음식을 만들며 기억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먹고사는 마지막 날까지 엄마를 그리워하며 기억할 것이다.